글쓰기 관련 서적이나 글을 보면 "개조식 문장"은 풀어쓴 글보다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쉽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걸 잘못 이해해서 기계적으로 반영하다 보면 잘못된 문장을 작성할 수도 있습니다.
* 개발자의 글쓰기 (김철수)
...여러 가지 요약 방법 중에서 서술식 문장을 개조식 문장으로 바꾸는 방법을 쓰면 내용이 자연스럽게 축약되고 의미는 더 분명해진다. 개조식 문장으로 만들려면 다음과 같이 불필요한 부사나 형용사, 조사나 어미를 없애고, 정확하고 적절한 단어로 대체하면 된다...
* 개발자들을 위한 테크니컬 라이팅 10계명
https://tech.kakaoenterprise.com/110
...테이블이나 간단한 안내 항목 등에서 '~다'의 종결 어미 대신 명사나 용언의 명사형(예: ~임, ~함)으로 문장을 끝내는 개조식과 글머리 기호 또는 하이픈 등을 적절히 사용하면 문서의 가독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다음 예시에서 처럼 문장이 길게 서술되어 있어 내용을 파악하기 힘든 경우, 개조식 형태와 하이픈을 사용해 가독성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개발자의 글쓰기"에 언급된 것처럼 "정확하고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개발자를 위한 테크니컬 라이팅 10계명"에 예시된 문장을 보면 "개조식"으로 수정했지만 이전 문장에서 반복되어 잘 보이지 않았던 부분을 명확하게 적절한 단어로 변경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술식 문장을 강제적으로 개조식 문장에서 바꾸는 과정에서 그 의미가 모호해지거나 달라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명사나 용언의 명사형(~임, ~함)은 일본에서 사용하던 권위를 표현하기 위한 문어 형태를 받아들인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 소통과 먼 ‘국정운영 5개년 계획’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1707301458001#c2b
...우리나라 공문서를 지배하는 개조식 글쓰기는 명사형으로 문장을 마무리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문장을 명사구로 대체하면서 동시에 많은 것을 갖다 버린다...
...문장을 명사구로 대체하면서 주술관계가 모호해지는 경우가 있다. ‘임무를 수행’ ‘시간 미확보’ ‘연속성 확보를 위한 수단’ 등과 같은 표현의 경우, 누가 수행하는지, 누가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이 수단이라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물론 맥락을 살피면, 주어를 복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모호함은 대체로 불필요한 오해를 초래하며, 때로 심각한 책임회피의 방편처럼 보인다...
...예컨대, ‘관행에서 탈피’라고 마무리한 구절에서 ‘탈피’하는 행위가 과거 사실에 대한 관찰인지, 현재 행위에 대한 보고인지, 아니면 미래 실천에 대한 약속인지 애매하다. 애초에 명사형 어미의 시제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문장의 기능이 애매한 채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역시 맥락을 살펴서 의미를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추론을 통해서만 명료하게 의미를 복원할 수 있다면, 공문서로서는 실격이다...
* 일제식 종결 문장투 ‘~함’ 이젠 고치자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010995.html#csidx4eff0be5e92aca4a8de44a8b479d4a4
...갑오경장 이후 일본의 영향력이 절대화하면서 공문서뿐만 아니라 일본의 법률이나 교과서 등 서적이 그대로 직역되는 등 일본의 문장방식은 전반적으로 이 땅에 이식되었다...
...그런데 이 개조식 문장은 지금도 그대로 공직 사회 보고서에서 사용되고 있다. 공직사회 보고서는 개조식이 관행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아예 개조식 문장으로 작성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개조식 문장은 그 자체로 완성되지 못한 문장으로 비문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문장간 논리적 연관성을 확인하기 어렵고 주어가 생략되면서 공직사회의 폐단인 책임 회피의 방편으로 이용될 소지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개조식 문장을 탄생시켰던 일본 문어가 원래 의도했듯이 철저히 '권위주의적'이다...
참고로 국어사전에서 개조식(個條式)은 "글을 쓸 때에 글 앞에 번호를 붙여 가며 중요한 요점이나 단어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번호 목록이나 비순서 목록을 사용해서 나열하는 방식이지 그 안에 담긴 문장을 바꾸어 써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