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김대중 도서관을 방문해서 작성한 방명록 때문에 말이 많습니다. 꼼꼼하게 틀린 부분을 지적한 사진도 돌아다니는군요.
하지만 "지평선을 열다"라는 표현은 뭔가 그럴듯해 보여 정말 틀린 표현인지 찾아보았습니다.
일단 6월 이전에 같은 표현을 사용한 사례를 찾아보죠.
영문 사이트에서는 "MADE LIKE NO OTHER, TO RIDE LIKE NO OTHER"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국 측에서 표현을 번역하면서 좀 더 익숙한 표현을 사용하려 했나 봅니다.
어휘력이 부족한 담당자의 실수라고 한다면 이번에는 카이스트로 넘어가 봅니다. 이곳은 좀 더 똑똑한 분들이 많으니깐요.
저 카이스트가 우리가 아는 그 곳 맞겠죠. 이과지만, 국어 실력 또한 남다른 분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대학신문이라도 편집이나 교정 담당자가 있기 때문에 적어도 2명 이상이 검토한 글일 겁니다.
다시 단어의 뜻으로 돌아가 보죠.
지평선(地平線)은 "편평한 대지의 끝과 하늘이 맞닿아 경계를 이루는 선"이라는 의미입니다. "선"이라는 표현을 빼고 그냥 지평(地平)이라고 사용해도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하지만 "지평"이라고만 쓰면 1가지 의미가 추가됩니다.
"사물의 전망이나 가능성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그럼 "지평을 열다"는 되지만 "지평선을 열다"는 정말 안되는 걸까요?
"지평을 열다"라는 표현은 언제부터 쓴 걸까요?
같은 의미의 단어를 비유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면 "지평"이나 "지평선"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일본의 사례를 찾아보았습니다.
"地平線を開く"라는 표현으로 검색해보면 꽤 많은 검색 결과가 나옵니다.
"地平を開く"와 비교해보면 검색 결과 숫자에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적지 않은 곳에서 "지평선을 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어 사전에서는 "지평"에 대한 비유적인 의미를 "物事を考えたり判断したりする際の、思考の及ぶ範囲。「文学の新しい地平を開く」"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국어사전과 마찬가지로 "지평선"의 뜻풀이에서는 비유적인 의미를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중국어 사전에서도 비슷한 의미 "局面;前景。"를 담고 있는 걸 보면 동양권에서 어느 시점부터 사용한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뭐 결론은 "지평선을 열다"를 틀린 표현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좀 더 시간이 있다면 "지평"의 비유적인 표현이 언제부터 쓰였는지 찾아보겠지만, 이건 좀 어려울 것 같네요.
국립국어원에 어느 분이 질문을 남겼으니, 답변을 기다려보죠 ^^
* 6/18 업데이트
국립국어원 답변이 달렸네요. 뭐 예상했던 답변입니다.
보통 아예 틀린 건 "잘못된 표현입니다", "틀린 표현입니다"라고 하는데 "적절하겠습니다"라고 답변을 한 것은 100% 틀린 것은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평"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비유적으로 쓰여졌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이야기죠.
* 6/23 업데이트
"지평"이라는 단어의 유래에 대한 글을 추가했습니다.
https://koko8829.tistory.com/2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