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서 찾아보는 핀테크
투비통 2016년 6월 http://tobetong.com/?p=6255
읽히는 글에서 보이는 글로
2000년대 초 인터넷 통신망이 가정으로 확산되면서 콘텐츠에 대한 욕구도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천리안이나 하이텔과 같은 PC 통신 업체가 인터넷 포털사이트로 전환하면서 개인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각 업체는 간단한 설정만으로 ‘나만의 홈페이지’가 만들 수 있으며 직접 HTML 문서를 ‘공개할 수 있는 기능도 제공했습니다. <장미나라의 태그교실> 같은 카페가 시작되고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것도 비슷한 시기입니다. 이 당시 만들어진 홈페이지를 보면 알록달록한 이미지와 다양한 폰트를 사용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있었습니다. 커뮤니티 형태의 카페나 블로그도 등장했습니다. 내가 작성한 글을 돋보이게 하려고 진지한 궁서체에 빨간색을 입히거나 깜빡이는 텍스트를 사용하는 것은 거의 필수적이었습니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에 글을 쓴다는 것은 빈 종이에 글자를 채우는 것입니다.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글을 읽기 위해서는 조판과 인쇄라는 과정이 필요했고 레이아웃을 지정하고 어떻게 표현할지는 그 과정에서 결정됩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고민하는 일은 인쇄 전문가의 일이었죠. 하지만 인터넷 공간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종이에 인쇄하는 과정이 없이 모니터에서 바로 읽을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여기에 위지위그(WYSIWYG: What You See Is What You Get)라는 개념이 더해지면서 내용과 더불어 어떻게 글이 보일지 까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문서 배포의 새로운 바람
지난 5월,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운 기술 문서 시스템에 대한 소개의 글을 올렸습니다. 이전에는 기술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MSDN이나 테크넷과 같은 별도의 사이트가 존재했습니다. 특정한 에디터가 글을 쓰고 정해진 형식에 따라 기술문서가 배포되는 형식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문서 시스템에서 글 쓰는 도구는 오픈소스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깃헙(github) 사이트에 텍스트만으로 작성하고 공개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스타일이 입혀집니다. 인터넷 시대에 자동화된 조판 과정이 추가되는 것이죠.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런 결정은 모바일 사용자의 증가로 인한 피드백에 대한 조치입니다. 많은 사용자가 모바일 기기를 통해 문서를 찾는데 이전에 작성된 문서는 데스크톱에서 웹브라우저를 사용하는 상황에 맞춰 고정된 형식이라 문서를 읽기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문서 콘텐츠와 문서가 보이는 스타일을 분리한 것입니다.
프로그래밍에서 변수는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값을 할당하고 계속 사용하는 것입니다. 변수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개발자는 모든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값을 예측하고 그 값을 할당해주어야 합니다. 오래전에 어떤 회사가 사명을 바뀌면서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모든 문서를 수정해주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모든 문서를 다 열어보고 찾아야 하므로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해당하는 값을 변수로 처리했더라면 1분 이내에 끝날 작업이었습니다. 구조적인 문서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콘텐츠와 다른 영역을 분리해놓는다면 나중에 다른 변경 사항이 생기더라도 콘텐츠 자체를 건드리지 않고 원하는 결과를 얻거나 기능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개념은 CCMS(Component content management system)라는 개념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연구되고 있습니다. 콘텐츠를 문서라는 개념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단락 하나 화면에 보이는 회사 로고 단위까지 레고 블록처럼 컴포넌트로 분리해 관리합니다.
이런 분위기는 이미 많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에서 2015년 공개한 스마트에디터 3.0은 ‘내 글에 디자인을 더하다’라는 타이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얼핏 들으면 글 쓰는 이가 디자인을 더 고민해야 하는 건가 싶지만 실은 디자인에 신경 쓰지 않아도 시스템 내에서 알아서 처리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용자가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을 간결화하고 다양한 디바이스에서 자동으로 최적화된 화면을 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협업을 돕는 문서 작성 시스템
일반적인 문서 작성을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구는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워드’일겁니다. ‘워드’에는 생각보다 많은 기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스타일을 지정하는 것입니다. 이 기능을 사용하면 콘텐츠와 모니터에 보이는 방식을 분리할 수 있습니다. 지정된 스타일을 사용하면 팀 내 모든 구성원이 만든 문서가 같은 형식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많은 경우 이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제각각 다른 형식으로 보이는 문서를 만들어냅니다. 같은 문서가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스타일을 사용하는 것이 강제적인 사양은 아니고 문서를 편집하는 누구나 강력한 권한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문서라면 전반적인 형식의 제어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업을 강조하는 문서 작성 시스템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온라인 기반의 문서 작성 소프트웨어가 그런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쓰리래빗츠 북’이라는 소프트웨어는 ‘구조적인 문서 편집’을 강조합니다. ‘네이버 스마트 에디터’나 ‘워드의 스타일’ 역시 구조적인 문서 편집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협업 중심의 소프트웨어는 아예 기능 자체를 분리해놓고 있습니다. 작성자는 콘텐츠에 집중하고 배포 과정에서는 소프트웨어가 알아서 스타일을 입히거나 다양한 디바이스에 배포할 수 있는 문서를 생성합니다. 실시간으로 협업을 진행하면서 일관성 있는 문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온라인 기반의 문서 작성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수정된 이력을 추적하고 문서 버전을 관리하는 기능을 제공합니다. 온라인상에서 문서를 바로 볼 수 있으므로 예전처럼 메일로 파일을 주고받을 필요도 없고 최종본으로 작성한 파일이 어떤 것인지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용자는 문서 작성에만 신경을 쓸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기업 업무 환경을 생각해보죠. 문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디바이스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기업 내에서 사용하는 업무 애플리케이션도 콘텐츠와 서식이 분리되어야 합니다. 투비소프트는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이런 기능을 점진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서를 다루는 것과는 난이도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닙니다. MLM(Multi Layout Management) 기능도 그 목적은 사용자가 콘텐츠에 집중하고 공통된 서식은 따로 분리해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프로젝트의 규모가 더 커질수록 이런 구조적인 분리는 더욱 중요해지고 환경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NASA 머큐리 프로젝트에서 운영 체제를 개발하고 컴퓨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원년 구성원인 제럴드 와인버그는 ‘자연석 기법’ 글쓰기를 조언해줍니다. 다양한 돌을 수집하고 돌담을 쌓는 것처럼 다양한 글쓰기 소재를 수집하고 구조적으로 쌓아 올리면 멋진 글이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꽤 오래전부터 구조적인 문서를 만드는 비결은 우리의 DNA 속에 감춰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참고자료
- [한국의 스타트업 (67)] 쓰리래빗츠 김세윤 대표
http://www.venturesquare.net/1786
- 제럴드 와인버그의 글쓰기책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289397
- Introducing docs.microsoft.com
https://docs.microsoft.com/teamblog/introducing-docs-microsoft-com/
- Component content management system
https://en.wikipedia.org/wiki/Component_content_management_syst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