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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비즈니스 사용자 경험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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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비즈니스 사용자 경험 만나기

투비통 2014년 12월 http://tobetong.com/?p=3977


몇 년 전 겨울이었다. 강원도 어느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건너 편 자리에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남자 몇이 들어오더니 식사와 함께 막걸리를 주문했다. 잠시 후 주문한 막걸리를 살펴보더니 '이거 말고 엊그제 들어온 거 있을 텐데'라며 다시 확인해보라 했다. '이게 오늘 들어온 술인데…'라고 투덜거리며 종업원은 다시 술을 가지러 갔다. 같이 있던 일행이 '뭐 같은 술인데 아무것이나 마시면 어떠냐'고 하니 처음 말을 꺼낸 이가 '막걸리는 병에 담기고 3~4일 지나야 제 맛이 난다'고 말했다. 우리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막걸리를 다시 살펴보니 제조일자가 오늘이었다. 아마 오전에 출하된 막걸리가 아닐까 싶다. 정말 맛이 다른지 한 병을 더 시켜 마셔보고 싶었지만 다른 일정 때문에 식당을 나왔다. 

그때까지 막걸리뿐 아니라 먹는 음식은 신선해야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항상 표기된 날짜를 보고 식품 칸을 뒤져가며 가장 최근에 들어온 제품을 구매했다. 하지만 음식마다 '제 맛'이 따로 있고 맛이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신선해야 좋다는 상식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막걸리는 한국의 전통적인 술이다. 탁주(濁酒)의 일종으로 술을 빚은 후에 청주(淸酒)를 떠내지 않고 그대로 걸러 적당량의 물을 섞어 다시 거른 술이다. 탁주는 병에 담은 후에도 발효가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길지 않다. 생산 방식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보름에서 한 달 정도다. 과거에는 보관기간이 더 짧았다. 어른들이 어린 시절 술을 받아오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교통수단이나 보관기술이 없던 시절에는 술을 바로 만들어 소비해야 했다.

짧은 유통기한은 대량 생산과 유통에 어려움이 있어 살균 탁주가 등장했다. 65도 이상에서 가열 살균하고 밀봉 포장해 판매한다. 같은 품질을 유지하며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출시 이후 더는 발효가 안 되는 단점이 있다. 살균 탁주는 주로 수출용으로 생산되며 국내에서는 소매점에서 판매된다. 막걸리 병 라벨을 보면 '주류의 종류'가 표시되어 있는데 살균 처리를 거친 막걸리는 '살균 탁주'라고 표시되며 그렇지 않은 경우는 '탁주' 또는 '생 탁주'라고 표시한다.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몸에 좋은 영양소가 듬뿍 들어있는 막걸리는 '생 탁주'를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혹 소매점에서 구매할 때는 잘 구분을 해야 한다.

옛 방식으로 직접 막걸리를 만들어 판매하는 느린마을 양조장이라는 곳도 있다. 발효되면서 맛이 변하는 특징을 잘 살려 이름을 지었다. 발효 기간에 따라 1~2일 차는 봄, 3~5일 차는 여름, 6~7일 차는 가을, 8~10일 차는 겨울로 나누어 판매한다. 같은 이름으로 시중에 판매되는 막걸리에도 비슷한 설명을 라벨에 표시하고 있다. 

발효 일자에 따라 달라지는 맛을 표시. 출처: 느린마을막걸리 페이스북


발효란?

발효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김치일 것이다. 대표적인 발효 식품이기도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자주 노출되는 김치 냉장고 광고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근 광고를 보면 발효의 순간을 소리로 잡아내거나 특수 촬영을 통해 시각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발효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긴 설명이 보인다.


'효모나 세균 따위의 미생물이 유기 화합물을 분해하여 알코올 류, 유기산류, 이산화탄소 따위를 생기게 하는 작용. 좁은 뜻으로는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미생물이 탄수화물을 분해하여 에너지를 얻는 작용을 이른다. 술, 된장, 간장, 치즈 따위를 만드는 데에 쓴다. - 표준국어대사전'


설명을 읽다 보면 음식이 상한 상태를 표현하는 부패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세균이 뭔가 작용해서 원래 없던 뭔가를 만든다는 거 아닌가. 그럼 부패라는 단어의 설명을 찾아보자.


'단백질이나 지방 따위의 유기물이 미생물의 작용에 의하여 분해되는 과정, 또는 그런 현상. 독특한 냄새가 나거나 유독성 물질이 발생한다. – 표준국어대사전'


의미를 넓게 보면 '유기물이 미생물의 작용으로 분해되는 과정'은 모두 부패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일반적으로 분해 과정에서 생성되는 현상이 사람에게 좋은 경우에는 발효(醱酵)라는 표현을 쓰고 사람에게 나쁜 경우에는 부패(腐敗)라는 표현을 쓴다.

부패라는 단어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정부는 무능하고, 자본은 부패했다.'라고 할 때 부패는 같은 한자를 쓰지만 다른 의미를 가진다.


'정치, 사상, 의식 따위가 타락함. – 표준국어대사전'


부패라는 단어가 이런 의미를 가지고 주로 신문 사회면에 자주 사용되다 보니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하지만 비슷한 작용이라도 발효는 사람에게 좋은 것이라는 점은 기억하자. 부패한 식품은 식품으로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상태지만 발효 식품은 잘 활용하면 몸에 유익하며 발효 방식이나 기간에 따라 다양한 경험을 선물한다.


미생물 균주

발효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미생물의 작용'이다. 같은 방식으로 김치를 담그지만, 집마다 맛이 다른 이유는 발효 과정에 참여하는 미생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담그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손맛이라고도 하지만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가정에서 만드는 음식은 맛이 조금 달라지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량 생산에 필요한 식품을 만드는 것이라면 같은 맛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런 고민이 쌓이면서 어떻게 하면 미생물을 제어할 수 있을까 연구했고 그 결과 미생물을 여러 차례 배양하면서 원하는 형태로 분리해낼 수 있었다. 이렇게 분리된 미생물을 '균주'라고 한다. 사전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순수하게 분리하여 배양한 세균이나 균류 – 표준국어대사전'


이렇게 분리된 미생물 균주는 대량으로 생산해 냉장 보관 후 유통된다. 막걸리 제조 과정에서 쌀이나 물도 중요하지만 어떤 균주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국내에는 약 600여 곳의 막걸리 제조 업체가 있는데 많은 업체가 일본식 누룩을 사용한다. 막걸리 맛이 지역에 따라 별 차이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자체적으로 전통 누룩을 만들어 사용하는 곳도 없지 않다. 전통 누룩을 사용해 만든 막걸리를 마셔보면 그 차이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전통 누룩. 출처: 경향신문 2009.10.28 '500년 전통의 산성막걸리 마을'

 

전통 누룩을 사용하는 막걸리 중 대표적인 제품이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다. 직접 갈 수 있다면 더 신선하고 맛있는 막걸리를 맛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택배로 주문할 수 있다. 10병 단위로 판매되는데 한꺼번에 마시면 안 된다. 2~3일에 한 병씩 천천히 마신다면 날마다 달라지는 술 맛을 느낄 수 있다.

발효 때문에 막걸리는 숙취가 심하다는 잘못된 소문도 있다. 80년대까지는 대량 생산 시 발효 기간을 줄이기 위해 카바이드(calcium carbide)라는 화학물질을 사용했다. 숙취의 원인은 발효가 아니라 잘못된 화학물질 때문이다. 그때 생긴 오해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식품에 직접 사용하지는 않지만 과일을 빠르게 숙성하기 위해 카바이드를 사용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과일 박스에 냄새가 나는 솜 같은 것이 있다면 카바이드로 숙성한 과일일 수 있다. 또 한가지 원인은 술자리에서 막걸리만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1차는 기분 좋게 막걸리로 시작하더라도 2~3차를 거치면서 다른 술이 섞이고 숙취가 남지만 기억 속에는 막걸리로 시작한 것이 남아 있어 오해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에도 균주가 있다면

발효는 같은 재료를 가지고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발효를 적용해본다면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용어 중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Use, OSMU)를 떠올릴 수 있다. 물론 OSMU는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부가적인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것으로 발효가 가져다 주는 가치와는 다른 개념이다. 하지만 균주를 사용해서 OSMU가 저절로 동작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나의 소스에 무언가 더해지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획서 작성 시 핵심 단어만 입력하면 알아서 숙성된 기획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꿈만 같은 일처럼 보이지만 이미 AP통신이나 LA타임스와 같은 언론사에서 기업실적기사나 스포츠, 날씨 등 정보성 기사는 로봇이 대신해 작성하고 있다. 사람처럼 생긴 로봇보다는 컴퓨터 알고리즘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주제를 주면 스스로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정해진 패턴에 따라 기사를 생성한다. 기사를 읽는 독자가 구분하기 힘들만큼 자연스럽게 글을 쓴다.

모바일 시장이 확대되면서 OSMU는 UX 관점에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애플리케이션 개발자에게 모바일 시대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사용자가 어떤 식으로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사무실 책상 위에서 업무를 할 때와 이동하면서 접하는 업무 환경은 전혀 다르고 이 모든 요구사항을 맞추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것은 너무 큰 숙제로 다가온다.

반응형 웹이니 적응형 웹과 같은 이야기들은 콘텐츠를 읽기만 하면 되는 경우에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콘텐츠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보기 좋게 배치만 살짝 바꾸어주면 어느 정도 해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무를 수행하려는 목적이라면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단순히 보이는 것만 바꾸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용자가 현재 접하는 환경에 맞게 숙성된 애플리케이션이 만들어져야 한다. 화면 크기만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제대로 된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의 맛을 낼 수 있는 균주가 필요하다.


REAL OSMU

충분한 시간과 자원이 있다면 최적화된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기기에 따라 만들면 된다.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가 등장했을 때는 별도의 프로젝트로 단말기에 최적화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었다. 기업에서 대량의 PDA를 구매하고 하나의 기종만 사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더 이상 그런 지원은 통하지 않는다. 사무실에서는 노트북이나 데스크톱 장비를 사용하지만 이동 중에는 태블릿을 사용하고 집에서 급하게 업무를 처리할 때는 스마트폰을 사용하기도 한다.


"기업용 시스템은 데이터를 다루잖아요. 레이아웃 변경은 다양한 기기에 대응하는 해답이 될 수 없어요. PC 버전에서 그리드 컬러링이 있었을 때, 모바일 기기서 반응형 웹을 적용, 레이아웃을 변경한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리드 열 개짜리가 두 개, 세 개밖에 안 보이면 사용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투비소프트와 서울대 융합연구소가 추구하는 건 ‘다른(Different) UI, 같은(Same) UX’다. PC에서의 캘린더와 스마트폰에서의 캘린더의 모습은 달라야 한다고 본다. – 출처: 월간 웹 2014. 5월호"


'다른(Different) UI, 같은(Same) UX’라는 표현은 주어진 환경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당장 수익을 내야 하는 솔루션 업체로서는 제대로 맛을 내기 위한 균주를 만들기 위한 투자를 하기 힘들다. 어떤 느낌인지는 알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서 같은 사용자 경험을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 자체적인 연구 개발 노력뿐 아니라 학계와 정부 기관과 같이 나아가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마치 전통 누룩을 만들어내기 위해 지역 내 다양한 지식 자원을 활용하는 양조장의 모습과 닮았다.


"당사는 2013년 초 독자적인 UX 방법론을 정립하고 2014년 초 OSMU를 실현하고 UX 컨설턴트 및 프로젝트 관련자와 고객 간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BUX Model을 정립한 상태이다. 2014년 2Q부터 관련 업계와의 협업을 통해 실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실용화 및 수준을 높일 예정이며, 더불어 넥사크로플랫폼에 이 개념을 실현할 수 있는 기능의 확장과 UX 모델링 도구와 UX 프로토타입 도구의 구현 및 무료 배포를 통해 시장을 확대할 예정이다. 그리고 모델링 단계의 산출물이 실제 개발단계의 소스로 자동 작성되는 일련의 개발도구들의 개발을 단계별로 병행할 계획이다. '넥사크로플랫폼'은 이미 구축된 응용프로그램의 수정 없이 상기 기능을 지속적으로 추가하여 제공받게 될 것이다. – 출처: 투비통 2014. 5월호"


REAL OSMU. 출처: 투비통 2014.5월호

 

아직 아무도 제대로 된 OSMU의 맛을 보지 못했다. 아직은 누룩방에서 빛을 볼 날을 기다리고 있다. 누구나 쉽게 제대로 된 REAL OSMU를 구현할 수 있는 균주가 등장하기를 기다려본다.


참고자료

- 막걸리, 넌 누구냐 / 허시명 / 예담 / 2010

전통 술 평론가, 막걸리학교 교장 허시명님이 지은 막걸리 바이블

- [소읍기행]500년 전통의 산성막걸리 마을, 부산 금정구 금성동 / 경향신문 / 2009.10.28

민속주 1호로 등록된 산성막걸리에 대한 취재 기사 

- Real OSMU! / 투비통 / 2014. 5월호

http://tobetong.com/?p=1060

OSMU 진화 단계를 쉽게 풀어 설명한 인포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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