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실록 - 육경희 지음/BR미디어 |
동네에 다양한 식당이 있지만 대부분은 1-2년이 지나지 않아 없어지는 곳이 많습니다. 다른 식당이 들어오기도 하고 전혀 다른 휴대폰 판매점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런 중에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식당을 살펴보면 순대국밥집이 많습니다. 아마 다른 음식보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한 그릇을 만날 수 있어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순대국밥집이 아니더라도 분식점에서 따끈한 순대를 쉽게 만날 수 있고 가끔 찾아오는 트럭에서 판매하는 순대볶음도 밤에 즐기는 반가운 음식입니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 쉽게 자주 만날 수 있는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순대'라는 주제를 다루는 책 한권 없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수많은 프랜차이즈가 나름 차별화를 외치며 진입하고 있는 시장인데 '순대'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연구하거나 아니면 그 유래에 대해서라도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육경희 대표의 책은 '순대'라는 음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좋은 시작점을 만들어줍니다. "순대실록"이라는 제목이 저자가 운영하는 가게 이름이라 좀 불편하긴 하지만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순대의 유래와 현실을 담아냈다는 점에서는 적절한 이름이 아닌가 싶네요.
책은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에서는 순대라는 이름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원과 역사, 순대의 종류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순대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하고자 한다면 1장을 참고해서 시작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2장에서는 우리나라 순대 기행을 다룹니다. 맛집이 아니라 다양한 순대를 소개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냥 그 식당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가서 맛보고 만드는 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할 수 있다면 직접 순대 만드는 법을 배워보기까지 합니다. 3장에서는 우리나라 순대 기행을 넘어 세계 순대 기행을 시작합니다. 바다 건너에서 이렇게 비슷한 음식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더군요. 순대라는 것이 고기를 바로 조리해서 먹는 것도 아니고 창자 등의 내장을 사용해 그 안에 다양한 재료를 넣는 것인데 이런 방식이 서로 다른 문화에서 같은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대학로 순대실록에는 몇 차례 가보려했지만 항상 대기줄이 많아 포기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더 궁금해졌습니다. 다른 프랜차이즈처럼 체인점을 많이 늘리지는 않아도 직영점이라도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제주도의 전통 순대는 수애(수웨)라고 하는데, 돼지로 만들어서 돗수애라고 한다. 현무암이 많은 지역 특성상 쌀이 귀하여 쌀 대신 메밀가루와 선지를 섞어 만든 탓에 수분과 지방이 적어 식감이 퍽퍽하다. 현재 서귀포시 가시리에 그 명맥이 남아 있다. 현재도 몽골에 양의 창자에 선지와 메밀을 넣은 순대가 남아 있고 동유럽 국가인 폴란드에도 수애와 비슷하게 선지와 메밀이 들어간 음식이 있다...
나름 다른 지역의 순대를 많이 만나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지역에 따라 이렇게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었네요. 제주에 가면 고기국수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색다른 순대를 만날 수 있다는 건 몰랐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순대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것도 새삼 깨닫습니다.
...스페인에서 모르시야는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이 아니다. 고소하고 다양한 맛이 입맛을 돋워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에서 전채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순대는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음식이지만 코스 요리를 내는 고급 레스토랑이나 한정식집에서 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보틴처럼 유서 깊은 레스토랑에서 파는 순대 요리를 보니 부럽기도 하고 새로운 의욕이 솟는다. 음식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면 요리의 격도 달라지는 법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보틴에서 맛본 스페인식 순대 모르시야는 우리 순대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요리의 격에 대해서는 저자의 의견과 좀 다르긴 합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다루는 것과 요리의 격이 일치하는 것은 아닐겁니다. 요리의 격이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 BR미디어에서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전국 해장음식 열전"에 등장하는 음식점 중에도 순대를 다루는 음식점이 많이 등장합니다. 육경희 저자가 추천한 음식점과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좋겠네요. ^^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771033
* 어쩌면 이 책 자체가 "순대실록"이라는 브랜드의 차별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웹사이트에서 소개하는 연구비책 3가지가 이 책에 소개된 1,2,3장의 내용과 이어지거든요.
* BR미디어 블로그에서 모집한 "순대실록" 서평단에 참여했습니다. 이 책은 책만 읽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당장이라도 순대 기행을 떠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