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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읽자

[대한민국 동네 빵집의 비밀] 빵은 살아 숨쉬는 식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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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동네 빵집의 비밀 - 10점
최세호.정진희 지음/거름

동네빵집이라는 이름이 최근 뉴스를 통해 자주 전해지고 있습니다. 파리바게뜨(SPC 그룹)과 대한제과협회와의 논쟁은 연일 뉴스에 올라오지만 소비자들은 몸으로 체감하기가 힘듭니다. 동네에 빵집이라고는 프랜차이즈 빵집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죠.


저자는 동네빵집과 프랜차이즈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동네빵집의 원칙은 매장의 전 제품을 밀가루 상태의 재료들부터 배합하기 시작하여 완제품을 구워내기까지 그 매장에서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동네빵집이다.'


수타 짜장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면을 가지고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밀가루 상태에서 면을 직접 뽑아내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빵은 발효라는 과정이 필요한데 냉동생지를 사용하게 되면 이 과정이 심각하게 왜곡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프랜차이즈 업체에서는 최신 기술을 사용해 냉동 상태에서도 영양학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다고 설명합니다. 


국내 잘 나가는 제빵왕 비결 알고 보니…

http://www.jhealthmedia.com/news/articleView.html?idxno=4967


'SPC그룹 식품생명공학연구소 박정길 소장은 "제빵의 명인이 국내 7~8명 정도로 희소하고 오늘과 내일 맛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며 "전국 3000여 매장에서 휴면 생지를 이용해 균일한 품질과 맛의 빵을 맛볼 수 있는 점이 파리바게뜨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이 책의 구성은 독특합니다. <좋은 아침>이라는 빵집을 경영하는 최세호 대표가 방송작가인 정진희님에게 직접 책을 만들자고 제의를 해 쓰기 시작한 책이라고 합니다. 1부에서는 프랜차이즈 빵집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우리나라 빵의 역사와 작지만 강한 동네 빵집을 소개하고 있고 2부에서는 저자가 동네빵집을 경영하는 이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마케팅을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직접 체험하고 실패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자신만의 동네빵집 마케팅 노하우를 전하고 있습니다.


동네빵집의 문제에 대해서 어느 것이 좋은지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좋은 음식을 접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그것이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유통기한이 있고 첨가제가 들어있는 빵을 무조건 좋지 않다라고 이야기하고 건강한 먹을거리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또 다른 계층적인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http://www.womanlife21.co.kr/Article/view.asp?Board=Society&Gubun=1&Code=357


* 책에도 나와있지만 좋은아침은 맛있는 빵집 뿐 아니라 기부 사례로도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다면 한번 찾아가보세요.


안산점 - 안산시 상록구 이동 716-12번지

화성점 - 화성시 봉담읍 와우리 31-6번지

청주점 - 청주시 흥덕구 사창동 222-7번지 / http://blog.naver.com/kyre1

안성점 - 안성시 연지동 105번지

진주점 - 진주시 평거동 190번지

울산 방어진점 - 울산광역시 동구 화정동 173-11번지 (울산은 옥교동점도 있고 방어진점도 있나 보네요. 음. 책에 나와있는게 모든 지점이 나와있는게 아니구나..)

죽전점 -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484-4번지 / http://rosemari1224.blog.me/40152759267


* 국내에 처음 빵이 소개된 것은 일본이 아닌 프랑스인 선교사를 통해서라고 합니다. 1834년 모방 신부와 사스땅이 최초로 빵을 전했다고 이야기되고 있고 1856년 입국한 베르뇌(Berneux)가 숯불 화로를 만들고 구워 만든 '우랑빵'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좀 더 정확한 역사가 궁금해 찾아보니 월간 베이커리 2008년에 특집으로 실린 자료가 있더군요.

http://mbakery.co.kr/main/main_view.asp?intNum=155


'그렇다면 서구식 양과자가 최초로 유입된 것은 언제부터라 할 수 있을까? 1794년 밀입국한 주문모 신부가 천주교 혼배성사 의식에 썼던 면병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한편에서는 서구식 빵 첫 도입지를 제주도로 보고 있다. 1628년 제주에 표류했던 화란인 박연 일행은 항상 마른떡을 먹었고, 하멜표류기를 보면 1653년 하멜 일행은 배급받은 밀가루로 탈출용 빵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공식적인 기록은 1991년 발간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우랑떡의 유래를 인용함으로써 오늘날 우리나라 빵의 기원을 설정했다. 조선말엽 1830년대에 천주교 신부가 시루를 엎어 놓고 그 위에 빵 반죽을 올린 다음 오지자배기로 뚜껑을 덮어씌워 구워낸 빵 모양이 마치 우랑(牛囊)과 같다하여 우랑떡이라 불렀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양과자다운 양과자가 우리나라에서 자리 잡게 된 것은 고종 황제의 역할이 컸다. 고종의 총애를 받던 손탁이 1902년 한국최초의 호텔 ‘정동구락부’를 세우고 러시아의 각종 양과자와 고급사탕 등을 제조 판매하게 되었다. 여기서 만들어진 빵은 ‘면포(麵包)’라 했고, 카스텔라는 눈덩이 같이 희다하여 ‘설고(雪羔.)’라 불렀다. 이 무렵에 조선호텔, 본정호텔, 경성호텔 등이 개업함으로써 서구식 음식과 빵, 양과자 등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비록 상류층을 상대로 한 영업이지만 인구 30만인 서울 장안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보는 http://enkorea.aks.ac.kr 에서 '빵'으로 검색하면 인용된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 나라에는 조선 말엽에 비밀리에 입국한 선교사들에 의해 알려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 선교사들이 숯불을 피워 구운 것이 마치 우랑과 같다고 하여 우랑떡이라고 불리었다 한다. 1884년 한로통상조약체결 이후에 러시아인 웨베르공사의 처제인 손택(孫澤)이 공관 앞에 정동구락부를 개설하고 우리 나라 최초의 빵을 선보였다. 이 때에는 중국식 이름을 써 면포(麵包)라고 불렀다. 한일합방을 전후하여서는 주로 일본인 제빵기술자들에 의하여 제빵업소가 만들어졌다.'


* 가까운 동네 빵집이 마인츠돔이었는데.. 작년말 카페베네에서 인수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동반성장위원회 결정에 최대 피해자라는 뉴스도 나오더군요. 음. 그럼 마인츠돔은 동네 빵집인지 대기업 프랜차이즈인지 애매해지네요. ㄷㄷ 동네에 있는 마인츠돔 바로 길 건너에는 카페베네가 있던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2/13/2013021302884.html

아직 최종 인수 결정 계약이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http://www.newsway.kr/view.php?tp=1&ud=2013020615493609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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