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사전 편찬자들 - 정철 지음/사계절 |
포털 서비스는 과거와 이어져 있지 않다는 느낌이지만, 일에 따라서는 과거와 긴밀한 끈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종이책이 몰락하지 않을 것이라 하지만 사전만큼은 그렇지 못합니다.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소설이나 다른 장르처럼 종이를 넘기는 느낌을 가지면서 보아야 하는 책은 아니기 때문이죠 (물론 사전을 한장한장 씹어먹으면서 외워야 하는 분들에게는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
포털에서 사전 서비스를 기획하고 고민하는 저자는 이전 책에서는 현재의 흐름을 정리해주었다면 이 책에서는 사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가지고 과거의 사람들을 찾아갔습니다. 이런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저자만은 아니겠지만, 이런 열정을 가지고 지식의 흐름을 정리하려는 노력을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을 듯 합니다. 특히 회사에 소속되어 현업에 있는 신분으로 말이죠.
2017/11/17 - [책을읽자] - [검색, 사전을 삼키다] 결의 차이
지금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다음에서는 위키백과와 협업을 통해 네이버 지식인 서비스에 올려지는 지식들을 위키백과 형식으로 정리하려는 노력을 했었습니다. 몇몇 정보들은 직접 편집(사실상 번역?)해보았는데, 이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한다는 것이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나는 새롭게 얻은 지식이나 정보를 위키백과에 편집/정리해놓고 필요할 때 참조한다. 위키백과는 모두의 백과사전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지식 창고, 정보 저장소로도 활용할 수 있다. 나는 한국어 위키백과를 내 두뇌의 확장형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에 많은 정보가 있지만 지식의 연관성을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것도 인터넷이기 때문에 그런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백과사전은 단순하고 단편적인 '지식'의 축적이 아닙니다. 지식의 그물망의 편제, 즉 항목의 편제 방식이 그 백과사전의 편집 방침입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단편인 채로 모아본들 백과사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의 연관을 어떻게 항목으로 편제해갈 것인가, 그것이야말로 백과사전의 최우선 편집 방침인데, 위키백과에서는 그것이 불명확합니다.
사전을 만드는 일에 대해서는 영화 <행복어 사전>에서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긴 합니다만. 혹 이 책이 궁금하신 분들은 영화를 먼저 보는 것을 추천해드립니다. 물론 영화에서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대충 이런 식으로 사전이 만들어지는구나라는 감을 잡을 수 있구요. 그리고나면 이 책을 읽으면서 사전을 만드는 일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자모별로 어휘를 분담하다 보면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가다'를 집필하는 사람과 '오다'를 집필하는 사람이 각각이면, 말이란 게 관련성이 있는 건데 그거 없이 따로따로 되는 거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제각각 풀이되는 거예요.
다른 문학 서적도 마찬가지지만, 9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책들이 이렇게 허술할 것이라고는 차마 생각을 못했습니다. 1956년 동아일보 기사의 내용을 인용한 글입니다. 설마 그럴리가 싶어 찾아보았더니 실제 기고된 글이더군요.
박모 씨의 편 영영사전을 보면 한국이라는 KOREA가 없고 일본이라는 JAPAN은 있으니 이 철면피적 편자의 처사는 일종의 증오와 분노를 금할 수 없다.한 일본 삼성당 발행인 최신 콘사이스 영화사전과 페이지 하나 행 하나 틀리지 않는 모사 편집부의 콘사이스 영한사전을 보면 그들의 행위가 너무 교활하다 아니할 수 없다.
번역 위주로 사전이 기획되어 왔고, 사전 편찬을 위한 자원이 부족하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긴다고 합니다.
그토록 영어 공부를 중요시하는 한국인들이 15-20년 전에 마지막으로 개정된 영어사전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아. 이 이야기는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았는데, 잘 기억이. 하여간 시대를 너무 앞서가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닌가 봅니다.
백과사전 CD롬도 언론에서는 브리태니커라는 공룡이 인터넷에 적응을 못해서 몰락했다고 썼지만, 그건 몰라서 그렇게 쓴 겁니다. 브리태니커는 CD롬과 디지털을 1980년대에 너무 일찍 추진했기 때문에 시장을 만나지 못했던 거예요. 뭘 하든지 장기적 관점에서 고민하고 전망하며 변화해온 회사가 바로 브리태니커입니다.
표준어, 순화어에 대해서는 국가의 지침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렇지만은 않더군요. 언어의 섬세한 결을 잃어가고 있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용어를 통일하는 문제는, 이게 마치 기술과학처럼 볼트 가져와 했는데 너트 가져가서 문제가 되는 그런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해결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리고 자기가 선택하는 표현이 자신의 이론과 개념에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하는 면이 있고요. 상이한 용어라고 해서 이해나 소통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말에서 표준어 규범은 너무 강력한 힘을 가진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표준어는 옳은 말이고 비표준어는 틀린 말이라며 O,X로 접근하는 방식이 오랫동안 우리의 언어관으로 자리 잡았어요. 저는 표준어에 대한 이런 인식에 변화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즉 표준어를 옳은 말로서가 아니라 공통어 또는 보편어로서 받아들이고, 방언을 틀린 말이 아니라 지역적인 제약이 있는 말로 받아들이자는 것이죠.
순화어는 특정한 상황에서만 사용 가능한 것일뿐 표준어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어려운 한자어는 쓰면 안되고, 순화어로 바꿔 써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해요. 그런 식의 접근은 오히려 언어 자원을 황폐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어려운 말이든 쉬운 말이든 모든 말은 각기 고유한 의미와 어감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다양한 층위의 말을 쉬운 말로 획일화해버리면 언어의 섬세한 결을 잃고 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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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활자를 가장 먼저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 영향력이 부족했다는 것은 뭐라 더 할말이 없습니다. 역사적인 시각에서도 기술을 그냥 먼저 만들어서 쓰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그 기술이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중요한 것이니깐요. 물론 고려의 기술을 서양 선교사들이 가져가서 만든것이라고 한다면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죠.
조선시대의 17~18세기에는 이익, 안정복, 서유구 같은 위대한 백과사전파 지식인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저작은 사회적 영향력을 얻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른 한편 동시대인 18세기 프랑스의 디드로, 달랑베르가 만든 <백과전서>는 크게 성공하여 말 그대로 "계몽의 시기"를 열어젖혔습니다. 그런 차이를 만든 요인의 하나는 출판의 뒷받침이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