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로주점 - 상 -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열린책들 |
"목로주점"이라는 제목은 뭔가 낭만적이고 멋있는 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말이죠. 사실 원래 제목과 다른 의미로 번역되면서 오해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어 번역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긴 합니다.
...<목로주점>을 뜻하는 프랑스어 assommoir는 원래 보통 명사로서 짐승을 도살하는 데 사용하는 <도살용 몽둥이>라는 뜻과 <불순한 술을 파는 술집 또는 술집 주인>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를테면 이 소설에서 l'Assommoir라는 제목은 <저급한 술집>과 <도살용 몽둥이>라는 두 가지 뜻을 두루 함축하여 <알코올로 사람을 죽이는 술집>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제목을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고 하더군요. 일본어판에서도 居酒屋라고 번역을 해놓았는데 역시 적절한 번역은 아니죠.
이 책의 문학사적인 가치는 이전의 문학과 다르게 민중의 언어를 그대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아마 그런 점도 번역에서 제대로 표현하기 힘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민중의 언어라는 것이 시대가 흐르면서 계속 변해가는데 그 느낌을 현대의 독자에게 그것도 전혀 다른 문화의 독자에게 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죠.
...졸라의말대로 목로주점에서 노동자의 체취가 물씬 풍긴다면, 그것은 바로 이 체험과 현장 조사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서문에서 밝힌대로 목로주점에 드리워진 진짜 민중의 냄새, 그 냄새의 바탕은 뭐니 뭐니 해도 민중의 언어에 있다...
작품의 스토리와 상관없이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이 책에서 묘사한 "목로주점" 내 증류 장치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집의 명물은 뭐니 뭐니 해도 참나무 횡목 너머 유리에 가려진, 안마당에 위치한 증류 장치인데, 기다란 관들이 달린 증류기라든가 땅속으로 내려가는 수많은 나선형 관이라든가 하는 부품들이 그 작동 방식을 보여 주는 증류 장치는 가히 악마의 부엌이라고 불릴 만한 것으로서, 저정뱅이 노동자들이 그 앞으로 와서 꿈꾸듯 바라보곤 했다...
주점 안에 증류기가 있다는 것이 쉽게 상상이 되질 않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영화나 다른 자료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제기랄! 얼마나 멋진 기계야! 저 뚱뚱한 배때기 안에는 일주일 동안 목구멍을 시원하게 적셔 줄 술이 있을 텐데. 그로서는 증류기의 나선형관 끝을 이빨에 용접해서 언제나, 언제나 작은 개울물처럼 뜨거운 독주가 몸속으로 흘러 발뒤꿈치까지 내러가길 바랐으리라...
...포도주라면 봐줄 만했다, 왜냐하면 포도주는 노동자들의 몸에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류주는 해롭기 짝이 없는 술이며, 노동자들에게서 일할 의욕을 빼앗아 가는 독이었다.원, 참! 정부는 이런 더러운 술을 만드는 걸 왜 막지 않는 거야!...
책에서 묘사하는 포도주는 질 높은 식사를 보장해주는 장치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주점에서 포도주를 마시는 장면은 보이지를 않는 듯 하군요. 아무래도 술을 취하기 위해 포도주를 마시기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가니깐요.
...문득 등 뒤에서 섬뜩한 불편함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알코올 증류기가 있었는데, 이 주정뱅이 제조기는 유리로 가린 안마당에서 지옥의 부엌인 양 묵직한 진동과 함께 작동하고 있었다. 밤이면 구리 증류기는 동그란 몸체 위에 커다란 붉은 별이 켜져 있어 더욱 음산해 보였다. 그리고 안쪽 벽에 비친 증류기 그림자는 꼬리 달린 끔찍한 형상들, 사람을 삼킬 듯 턱을 크게 벌린 괴물들을 그려 내고 있었다....
증류기에 대한 표현은 점점 더 괴물처럼 그려지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의식 세계에 따라 그 표현도 바뀌는 것이겠죠.
...쿠포의 몸속에서 곡괭이질을 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목로주점>의 싸구려 증류주였다. 온몸이 곡괭이질로 녹초가 되었다, 어휴! 곡괭이질이 다 끝나면 이 사람은 콩가루가 되어 파르르 떨면서 세상을 떠나겠지...
죽음의 순간 역시 증류주와 연결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미쳐 날뛰는 쿠포를 표현하기 위해 곡괭이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