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을읽자

[술로 만나는 중국, 중국인] 100년 이상 발효된 누룩

반응형
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 8점
모종혁 지음/서교출판사

얼마 전 아는 형님이 "수정방"을 술자리에 가져와서 마셨던 적이 있는데 귀한술이라 강조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향이 좋고 목넘김이 상쾌했습니다. 그 후 중국술에 대한 궁금함은 있었지만 제대로 술을 파고들기에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아쉬운대로 책으로 만나보았습니다.


저자가 꽤 오랫동안 취재한 글을 편집한 것이라 각 지역별로 글의 느낌이 다르긴 합니다. 어떤 글은 술을 중심으로 깊이 있는 취재가 이루어졌고 어떤 지역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쭈욱 나오다가 마지막에 살짝 술에 대한 언급이 되기도 합니다. 중국에서 대부분의 양조장이 국영기업이기때문에 취재가 어려운 부분도 있고 일부 제조기법은 기밀로 지정되어 있어 그렇다고 하네요. 그럼에도 중국술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배우고 싶다면 추천할만한 책입니다. 물론 중국의 역사와 문화까지 꽤 넓은 범위를 다루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읽기가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일단 한번 읽고 나서 나중에 중국술을 만났을때 다시 한번 새겨보면 좋겠네요.


...저는 중국 전체를 포괄하면서 한 도시나 마을을 깊이 있게 살펴 볼 수 있는 아이템이 바로 '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중국에는 각 지방, 도시, 마을마다 특색 있는 술이 있죠. 그 술 이면에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스토리가 담겨져 있고요. 저는 바로 이 점에 착안했습니다...


본문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남겨봅니다. 책을 읽으면서 어려웠던 점은 표기법인데요. 저자가 중국어 표기법을 지키느라 현실세계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술이름과 다른 점이 좀 아쉽긴 합니다. 


- 쓰촨 수이징팡

...때마침 수이징팡 유적이 발견되자, 취안싱은 새 술 양조에 필요한 곡식을 수이징팡에서 숙성시키기로 결정했다. 라이 부사장은 "과학적인 조사 결과 유적지는 풍부한 미생물의 보고로 판명됐다"면서...


무엇보다 수이징팡의 독특한 맛과 향은 중국 주당들을 열광시켰다. 수이징팡의 맛은 부드러우면서 입에 달라붙는 듯 했는데, 이는 다른 바이주에서 맛볼 수 없는 신선함이었다. 수이징팡은 병마개를 따면 코를 자극하면서 은은하고 향을 풍긴다. 이런 맛과 향으로 갖춘 경쟁력 덕분에 수이징팡은 중국 술시장에서 큰 돌풍을 일으켰다.


2012년 수이징팡은 회사의 주인이 바뀌는 변혁기를 거쳤다. 조니 워커, 베일리스 등을 생산하는 영국 주류업체 디아지오가 수이징팡을 사들였다. 디아지오는 잉성투자홀딩스가 보유하고 있던 주식 100%를 매입해 수이징팡 전체 지분의 39.71%를 확보하여 대주주가 됐다. 2005년 말부터 지분 투자를 시작해 7년을 공들인 성과다. 중국에서 외국기업이 국유 주류기업을 M&A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 쓰촨 젠난춘

지반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원주창고에 보관됐던 술독 대부분이 서로 부딪치고 깨졌다. 당시 13곳의 원주창고 항아리에 담겨져 있던 술이 쏟아져 나오면서 시가지는 1주일 넘게 술 냄새로 진동했었다.


고대 중국 술은 대부분 황주 계열이라 술 빛깔이 황록색을 띄었다. 이 색이 봄을 상징하는 데다 술을 마시면 기운이 나게 하는 효과에 착안해서, 중국인들은 춘을 더해 술 이름을 지었다. 특히 당대에 이런 작명법이 유행했다. 북송 시인 소동파가 "당대에는 '춘'자가 들어간 술이 많았다. 금릉춘, 죽엽춘, 곡미춘 등 한두 개가 아니었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 쓰촨 바오닝야주

이 술은 원액을 만들기까지의 제조 과정에서는 여타 증류주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양조할 때 첨가하는 누룩을 천마, 육계, 구기자, 반하, 대추 등 108개의 약재로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바이주가 아닌 약술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중국에선 이런 약술을 보건주라고 부른다.


- 쓰촨 염정방

중고가의 바이주는 술을 빚을 때 첨가하는 누룩의 발효 기간을 길게 하고 오랫동안 원주를 숙성해서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적게 발생한다. 염정방은 이 과정을 짧게 해도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도록 했다.


- 쓰촨 루저우라오자오

용천정 바로 옆에는 발효 저장고가 있다. 이 저장고에는 600여종의 미생물이 숨 쉬고 있다. 1573년부터 배합된 누룩이 바닥과 벽에 침투하면서 깊고 짙은 향과 풍부한 미생물을 생성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도시 밖에서 퍼온 황토와 용천정의 물로 반죽해 누룩 위에 바른 진흙은 미생물의 활동을 촉진한다. 바닥에 판 구덩이에 담긴 누룩은 짧게는 2~3년에서, 길게는 30년 이상 발효된다. 심지어 50~100년 발효된 누룩도 있다. 이렇게 오래된 발효 구덩이가 바로 라오자오다.


- 충칭 원수주

소곡주는 크기가 작은 쌀 누룩으로 빚은 술을 일컫는다. 충칭과 쓰촨 대부분의 바이주가 향이 짙고 깊은 농향형 대곡주인 현실과 차별된다. 


- 원난 장미술

화훼 재배농이 대량 생산에 집착하면서 농약을 무분별하게 사용함에 따라 깨끗하고 신선한 장미꽃을 생산하던 [핑]술공장이 문을 닫았다. 현재는 작은 양조장 두어 군데가 근근이 명맥을 잇고 있다.


- 구이저우 둥주

1920년대 후계자 청밍쿵은 다른 지방을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혔다. 귀향한 뒤 청씨 양조장의 전통에다 다른 지방의 제조기술을 더해 새로운 양조법을 개발했다. 청밍쿵은 무엇보다 누룩 제조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쌀 누룩에는 100가지 약초를 밀 누룩에는 동물성 약재를 가미해 각기 다른 구덩이에 넣어 발효시켰다. 일정한 기간이 지난 뒤 누룩을 배합해 술을 제조했다.

중국정부는 "둥주의 양조기술과 배합방법은 과학기술 기밀보호항목에 속한다."며 "대외에 참관은 허용하되 소개하거나 사진 찍는 것은 철저히 금지하라."고 통보했다.


- 산시 바이수이두강

지금의 두강주는 옛날의 두강주와 전혀 다르다. 즉, 술을 양조한 전통은 수천 년간 이어왔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양조 기술은 수백 년간 지속됐을 뿐이다. 이는 중국 내 다른 바이주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바이주는 고태 발효법을 이용한다. 고태 발효법은 중국이 개발한 기술로, 누룩을 고체로 만들어 구덩이에 넣은 뒤 발효시킨다. 이 누룩에서 얼마나 특색 있고 다양한 미생물이 생성되느냐에 따라 술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


- 닝샤 서하왕

중국은 2014년 와인용 포도 재배면적에서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 2위에 올라섰다. 포도 경작지는 79만 2,000ha로 스페인(102만ha) 다음으로 많다. 2000년 전 세계 4%에서 14년 만에 10.6%로 급증했다. 세계 와인산업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것이다.


- 신장 마유주

무슬림인 카자흐인이 알코올이 함유된 마유주를 마시는 이유는 술이 아닌 음료라 여기기 때문이다. 유목민은 마유주를 마시면 몸을 따뜻하게 해서 감기를 이겨내고 식욕을 돋운다고 해서, 아이들에게도 마시도록 한다. 그야말로 초원에서 살아가는 유목민에게 딱 알맞은 술인 셈이다.


- 후베이 황학루주

긴 세월 황학루주는 우한 술시장의 70~80% 이상 점유했지만, 다른 지방에서는 판매량이 많지 않았다. 오랫동안 중저가로 고착된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지난 10여 년간 고급 술이 주도했던 중국 바이주시장에서 어필하지 못했다. 그러나 2012년 말부터 시진핑 국가주석이 부패와의 전쟁을 일으키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최근 중국 술시장은 관공서와 기업이 주도했던 고가주의 소비가 급격히 줄고, 중저가 술이 인기를 끌고 있다. 맛좋고 저렴한 황학루주의 앞날이 밝은 것은 이런 시대상에 기인한다.


- 베이징 얼궈터우주

얼궈터우주의 원료는 밀, 수수, 옥수수 등이다. 이를 일정한 비율로 잘 분쇄한 뒤 솥에 넣고 물을 부어 찐다. 원료가 익혀지면 효모를 섞어 발효 구덩이에 넣는다. 보통 닷새 뒤 꺼내서 술을 받는데 이것이 이궈다. 솥에 남은 원료를 꺼내 소루 뭉치지 않게 가래로 흩어서 식힌다. 여기에 다시 새 원료와 효모를 넣어 섞은 뒤 발효시킨다. 닷새 후 꺼내 술을 받으면 얼궈가 된다. 오늘날에는 이런 전통적인 양조술을 변형해 여러 회사마다 약간의 차이를 두면서 생산하고 있다.


- 산둥 칭다오 맥주

이런 명성과는 달리 현재 중국 내 맥주시장의 판매량 1위는 칭다오맥주가 아니다. 우리에게 낯선 화룬쉐화가 8년 연속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화룬쉐화는 중국 최초로 맥주 판매량 1,000만kL를 돌파한 기업이다.


- 저장 샤오싱주

샤오싱에선 황주와 관련해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옛날 샤오싱 외곽에서 한 부부가 살았다. 어느 날 아내가 임신하자 남편은 아이가 태어날 때 마실 술을 빚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딸이 태어나자 화가 나서 술을 마당 한편 나무 밑에 묻었다. 딸은 장성해 용모가 아름답고 효성이 지극했다. 그런 딸이 시집을 가게 되자, 아버지는 이전에 묻어 놓았던 술이 생각났다. 땅을 파서 꺼내보니 술은 맛있게 숙성되어 있었다. 그 술을 '뉘얼홍'이라 불렀고, 그 뒤 샤오싱에서는 딸을 낳으면 술을 빚어 땅에 묻어놓는 관습이 생겼다.


- 저장 싼바이주

청대만 해도 우전에는 20개가 넘는 양조장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지방의 명주와의 경쟁에서 도태되면서 지금은 가오궁성, 궁성, 타오푸창 등 몇 개만 살아남았다. 그나마 전통방식대로 술을 빚는 양조장은 가오궁성이 유일하다. 한때는 황실 진상품으로 지정될 정도로 술맛이 좋다지만, 중국 각지의 명주를 맛본 나에게 그리 확 와 닿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숙성이 문제였다. 술 항아리를 노천에 두어 너무 짧은 기간에 숙성시키다 보니 맛에 깊이가 없었다. 또한 중국술답지 않게 술 마신 다음날 아침 숙취를 느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