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양조장 기자단의 2017년 첫 번째 목적지는 부산입니다. 도로상황이 원활일 경우 사당역에서 자동차로 4시간 40분이 걸리는 곳입니다(찾아가는 양조장 기자단은 서울 사당역 근처에서 출발합니다). 발대식에서 누군가 농담처럼 부산은 비행기로 가는 거 아닌가요? 라고 했지만 현실은 버스로 이동합니다. 장마철이라 대문을 나서는데 장대비가 쏟아집니다. 부산 지역은 다행스럽게도 비가 내리지는 않는다고 하네요. 그래도 수도권을 빠져나가기까지 쉬운 여정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도 무더운 날씨보다는 좋지 않은가 하고 위안을 삼아봅니다.
부산에 도착해서 금정산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부산시에서 금정산성의 끊어진 성곽 복원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산성 지역을 관광상품화하는데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서 시티투어버스가 금정산성 지역으로도 확대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산에 방문하면 주로 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하는데 금정산성 지역까지 코스가 확대되면 외국인들도 좀 더 접근성이 좋아질 듯 합니다.
아침 7시에 출발하는 일정입니다. 중간에 휴게소에 두 차례 쉬었다 가긴 합니다. 부산에 도착 예정 시간은 1시라고 합니다.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가를 반복하다가 예정보다 일찍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12시 조금 넘어 도착한 것 같네요. 양조장에 들르기 전에 점심부터 먹습니다. 금정산성 주변에는 산책로가 있고 음식점이 많아서 들어오는 버스도 많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더라도 양조장에 오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부산은 다양한 먹을거리가 있는데 금정산성 주변에는 흑염소와 오리고기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지금은 건물들이 들어서있는데 예전에는 산성 주변 들판에서 흑염소와 오리를 키웠다고 하네요. 식당 이름은 "유대감"이라는 곳입니다. "유대감"이라는 이름이 좀 생뚱맞은데 금정산성토산주 대표님이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합니다.
이날은 오리고기 숯불구이가 주 메뉴였습니다. 장거리 여행에 힘들어서 그랬는지 뭐든지 맛있었을것 같습니다. 식당에서는 바로 전날 병입한 신선한 막걸리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배송과정을 거치면서 추가적인 발효가 일어나기 때문에 아무래도 부산에서 먹는 것과는 맛이 다르다고 합니다. 물론 계절적인 영향도 있지만 이날 식당에서 맛본 금정산성 막걸리는 요거트 같은 느낌이더군요. 질감 자체가 상당히 무겁고 맛은 부드러웠습니다.
식당 뒷편에 창고처럼 보이는 곳에 누룩의 고향이라는 의미의 "麴之鄕(국지향)" 글씨가 붙여져 있습니다. 이전에 양조장에 왔던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곳이 금정산성 누룩이 만들어지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부산까지 내려온 이유 중 하나가 금정산성 누룩방을 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언론이나 다른 여행자가 찍어온 사진을 보면 거대한 누룩방이 무척이나 멋져보였거든요. 하지만 생각보다 작은 공간에 살짝 실망했습니다(사진의 힘일지도 ^^). 식사를 마치고 나와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유청길 대표님이 내려오셨습니다.
누룩은 날곡류 자체가 함유하고 있는 효소와 여기에 '리조푸스(거미줄 곰팡이 Rhi-zopus)', '아스퍼질러스(국균 Aspergillus)', '무코르(털곰팡이 Mucor)'등의 사상균과 효모 기타 균류가 번식하여 각종 효소를 생성 분비하고 있는 발효제로서, 많은 야생효모를 지니고 있으므로 밑술(주모)의 모체 역할을 한다. / 누룩꽃이 피었습니다 (금정산성 토산주)
전통 누룩은 공장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곰팡이가 자연스럽게 번식하면서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지역마다 술 맛이 달랐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죠. 이런 전통 누룩의 맥을 그대로 이어오는 곳이 이곳, 금정산성 토산주입니다.
예전에 금정산성에는 5-600가구가 있었는데 집집마다 누룩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 명맥이 다 사라지고 말았지만 금정산성 토산주가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조선주조사에서도 금정산성 지역의 누룩에 대한 언급이 있다고 합니다.
...산중 사찰들이 재정 확보를 위해 누룩을 제조했는데, 산성마을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누룩을 제조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금정산성 누룩은 다른 곳보다 훨씬 큰 크기가 특징입니다. 최근 전통 방식으로 누룩을 만드는 곳도 보통은 사각형 누룩틀을 사용하는데 금정산성 누룩은 틀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넓은 원형에 얇은 스타일을 유지합니다. 인위적인 방법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통밀을 거칠게 빻은 상태에서 밀기울과 밀가루를 사용해 반죽을 만든다고 합니다. 피자 도우처럼 중간이 얇고 테두리가 두꺼운 것은 균이 골고루 퍼질 수 있는 형태인데 이곳의 누룩은 오래 전부터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산성누룩은 베보자기에 반죽한 밀을 싸서 발로 둥글고 납작하게 디딥니다. 이렇게 디뎌진 누룩은 누룩방의 선반 위에다 해장죽을 깔고 1주일 정도를 열이 나게 띄웁니다. 누룩방의 온도는 48-50도 정도까지 올라갑니다. 그 후 누룩에 곰팡이가 피면, 건조실로 옮겨집니다. 누룩은 건조실에 들어가 2달 정도 숙성이 되고 나면, 가장 좋은 상태가 됩니다... / 전통 누룩으로 빚은 금정산성 막걸리 (금정산성 토산주)
해장죽은 술 마시고 다음날 먹는 죽이 아니고 해장죽(海藏竹)이라는 이름처럼 바닷가에서 나는 대나무라고 합니다. 충남 이남, 경북, 일본 등에서 나는 식물입니다.
금정산성 토산주는 1979년 산성막걸리 양성화 제도가 마련되면서 유한회사를 설립했습니다. 1980년 생산을 시작했고 유청길 대표님은 1998년 대표로 취임했다고 합니다. 금정산성 토산주 사무실이 있는 공간은 원래 목욕탕을 만들려고 했던 곳이라는 군요. 유 대표님의 아버님은 동래온천 물관리를 담당하던 공무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산성마을에 목욕탕을 만들어볼까 생각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계곡이 있는데 목욕탕이 무슨 소용이냐~라고 해서 추진이 되지 않았다 합니다. 대신 그 자리에 양조장이 들어선 것이죠.
...일반 막걸리보다 도수도 2도가 높은 순도8도의 이 막걸리는 "산성토산주"로 이름지어 한되 6백20원에 시판되어 하루 평균 7백리터의 생산을 기본으로 삼고 산성유원지에 놀이객이 많이 몰려드는 봄, 가을에는 1천2백리터를 생산, 연간 7백여만원의 이익을 낼 계획이다... / 동아일보 1980년 9월 2일
금정산성 막걸리는 2곳에서 만들어집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금정산성토산주"를 검색하면 나오는 주소가 처음 양조장이 시작된 곳이고 2공장은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금정산성 막걸리 레이블을 보면 1공장으로 표기된 것이 있고 2공장으로 표기된 것이 있습니다. 공장이 따로 등록되어 있어 레이블을 따로 표기해야 된다고 합니다.
두 공장 사이의 맛이 다른가? 라는 질문에 대해 같은 재료와 누룩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렇지는 않다고 설명하셨지만, 제조 방식이 1공장은 수작업으로 술을 빚고 2공장은 자동화된 방식으로 클린룸 안에서 생산이 된다고 합니다. 생산 물량 자체가 80%정도는 2공장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1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만나는 것도 일종의 행운이 아닐까 싶습니다.
2공장이 있던 곳 역시 누룩을 만들던 공간이라고 합니다. 산성마을에서 처음으로 술 공장을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당시 사진이나 기록이 따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어르신들은 황해도 사리원에서 배로 실어온 밀을 당나귀에 실어 옮겨왔던 기억이 있다고 하네요. 원래 있던 가옥의 구조는 그대로 남겨 놓고 공장을 확장한 형태입니다.
1공장에서 10분 정도 올라가면(지도 상에서는) 산성막걸리 박물관이 나타납니다. 양조 관련 사진이나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시음 행사장으로 사용하는 공간입니다. 산 아래 풍경이 멋지게 펼쳐지는 곳입니다. 멀리 보이는 곳은 "파리봉"이라고 하네요. 파리는 날아다니는 벌레가 아니고 순우리말로 유리나 수정을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산성막걸리 박물관에서는 일정기간 숙성 후 청주 스타일로 담아낸 술을 시음했습니다. 산성 막걸리의 시큼한 맛은 남아있지만 더운 날 높은 산을 올라 그런지 시원하고 깔끔하게 느껴졌습니다. 유 대표님은 막걸리를 숙성한 후 라이스 와인 형태의 제품을 만드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양조장에서 식초를 만드는 곳은 일부 있지만 이를 와인 형태로 숙성 가공하는 것은 아직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시도입니다. 전통 방식으로 누룩을 만드는 금정산성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양조장 벽에 그려진 제조과정이나 술 이야기도 정겨운 풍경입니다. 포털 사이트 거리뷰로 보면 그림이 흐려지면 다시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금정산성을 방문하는 분들이 1공장에서 막걸리를 잔뜩 구입하고 양조장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양조장 입구까지 버스가 들어오기 때문에 접근성도 나쁘지 않습니다. 부산 시내나 바닷가와 떨어져 있긴 하지만 부산에 방문했을때 관광 코스로 잡아도 괜찮습니다. 2011년부터 진행해온 "금정산성 역사문화축제" 기간에 방문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듯 합니다. 올해는 5월 26일부터 3일간 진행되었는데 막걸리를 주제로 이렇게 큰 행사가 열리는 것도 흔하지 않은 경험인 듯 합니다.
금정산성 역사문화축제
1공장 옆에는 전통누룩방이 있습니다. 1980년 생산을 시작하면서 만든 공간인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전 누룩방의 양식이 남아있는 공간이라 그대로 유지하고 지금은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통누룩방은 입구와 건물 옆에 숨구멍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지금이야 습도와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장비를 사용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숨구멍만으로 누룩이 만들어지기 최적인 환경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 금정산성 토산주는 다른 양조장과 달리 막걸리 1종만 판매합니다. 심지어는 용량도 1가지 입니다. 수도권에서는 백화점 식품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고 전통주점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려면 금정산성 토산주 웹사이트에서 바로 구입할 수 있습니다.
* 금정산성 토산주 안내문을 보면 영양과 향균능력에 대한 근거로 부산광역시 보건환경연구원보 12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해당 논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지방민속주(산성 막걸리)와 일반탁주의 품질특성 비교연구
https://www.busan.go.kr/PageDownload.do?savename=d12-5.pdf
* 관련기사 :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상주 은척 양조장', 외국인 및 민간기자단 대상 전통주 시연회 진행
http://danmee.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20/201707200311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