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는 예로부터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했답니다. 흰색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쌀"입니다. 상주시는 서북부 내륙지방에 위치하고 있어 삼한 사온이 뚜렷하고 넓은 평야와 적정한 강우량으로 농작물 재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쌀 품질이 좋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브랜드로 일품쌀과 삼백쌀이 있습니다.
나머지 두 가지는 누에고치, 곶감이라고 하네요. 원래는 목화, 누에고치였는데 목화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곶감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사실 상주라고 하면 곶감만 알았거든요. 상주시에서도 북쪽에 위치한 은척면 한가운데 은척 양조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양조장 이야기를 하면서 쌀 이야기를 먼저 한 것은 은척 양조장에서는 바로 이 명품쌀인 삼백쌀을 사용한다는 겁니다.
양조장이 그 지역 쌀을 사용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닙니다. 어떤 곳은 아예 농가와 계약 재배 형식으로 쌀을 전량 수매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은척 양조장은 그 지역의 쌀을 사용하는 것뿐 아니라 도정일자까지 신경을 씁니다. 미리 구입해놓은 쌀을 쌓아놓고 사용하지 않습니다. 은척 양조장은 일요일은 쉬고 월요일부터 술을 빚기 시작하는데 고두밥을 만들기 위한 쌀을 전주 금요일에 도정합니다. 그러니깐 도정한지 3일이 지난 쌀을 사용하는 겁니다.
일반 가정에서는 갓 도정한 쌀을 먹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가정용 도정기를 사용하는 집도 있지만 가격이 비싸고 매번 밥을 할때마다 도정기를 사용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술을 빚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번 갓 도정한 쌀을 가져와 술을 빚는 것은 보통 정성이 아닙니다.
은척양조장은 2005년 양조장 건물을 신축했습니다. 양조장의 역사는 1963년부터 이어져왔다고 합니다. 1963년에 이동녕 전 대표가 매형의 양조장을 인수했다고 하는데 그 전 시기부터 계산하면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 임주원 대표가 양조장을 이어받은 것은 1997년입니다. 은척 양조장은 규모면에서 그리 큰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양조장 건물을 신축하면서 작업공간을 여유있게 설계했고 클린룸에서 병세척 후 병입까지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보통은 클린룸 내에서 병입작업만 진행하는데 병세척까지 하는 것이 독특한 구조입니다.
임희주 부사장님은 임주원 대표의 동생입니다. 자매가 양조장을 같이 운영하는 것도 독특한 방식입니다. 은척양조장은 직접 만든 누룩을 사용합니다. 원래는 전국 4대 누룩 중 하나인 상주곡자에서 만든 누룩을 사용했습니다. 상주곡자는 송학곡자, 진주곡자, 부산산성누룩과 함께 전국 4대 누룩으로 알려져 있던 곳입니다. 2013년까지 생산을 했으나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상주곡자가 문을 닫을때 임주원 대표가 상주곡자의 기술을 전수받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누룩틀과 반죽기와 함께 누룩방을 신축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1966년부터 이어져온 상주곡자의 누룩이 사라진 것은 아쉽지만 그 기술이 남아 은척양조장에서 만드는 막걸리에 남겨져 있다는 것은 다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체적으로 누룩방을 가지고 있는 양조장의 대부분은 발로 디디지 않고 기계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은척양조장의 누룩은 전통방식으로 보자기에 싸서 누룩틀에 놓고 발로 디디는 방식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누룩을 생산하는 규모가 커지면 기계를 사용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사람의 힘만으로 만든 누룩의 향을 은척 양조장의 술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상주곡자 / 네이버 지도 / 2011년 9월
은척양조장에서는 생탁배기, 곶감 탁배기 2종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생탁배기는 쌀과 소맥분을 같이 사용합니다. 쌀로만 만드는 제품도 있지만 주로 생산되는 제품은 쌀과 소맥분을 같이 사용한 제품이라고 합니다. 주로 지역 내에서 소비되는 제품의 특징이 아닌가 싶습니다. 은척양조장에서는 프리미엄 제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숙성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놓았고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양조장에서 시음을 위해 가벼운 안주를 준비해주셨습니다. 겉모양만 보고 부추전인가 싶었는데 가죽나물을 사용해 만든 전이라 합니다. 가죽나물은 참죽나무의 여린잎을 부르는 이름이라 합니다. 부추전이 아니라 가죽나물장떡 또는 참죽장떡이라 부른답니다. 가죽나물을 4월이 제철이라 하는데 늦었지만 식감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은자골 생 탁배기는 5도입니다. 일반적인 막걸리가 6도이고 요즘에는 12도까지 도수를 올린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은척 양조장은 5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분들은 도수가 낮은 술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할 수 있지만, 5도 은자골 생 탁배기에 어울리는 음식을 찾아본다면 흥미로운 조합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날 양조장에서 체험한 음식 중에서 곶감은 정말 은자골 생 탁배기가 잘 어울렸습니다. 사실 곶감이라는 것이 달달한 맛이 강해서 술 안주로는 그렇게 어울리는 조합은 아닙니다. 곶감의 달달한 뒷맛이 사라지지 않으면서 입안을 깔끔하게 감싸는 탁배기의 은은한 향이 잘 어울렸습니다. 기회가 되면 또 한번 맛보면 좋겠지만 상주 곶감이 생각보다 비싸더군요 ^^
양조장 건물 옆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빨간 지붕(빨간색은 아니고 뭔가 독특한 색감을 가진 지붕입니다)이 게스트 하우스입니다. 은척 양조장이 위치한 은척면은 산이 둘러싸고 있어서 고즈넉한 공간입니다. 동네는 작지만 가까운 곳에 농협도 있고 치킨집도 있습니다. 성주봉 자연휴양림과도 가깝고 문경이나 속리산쪽으로 이동하는 것도 멀지 않습니다.
* 은척 양조장 홈페이지는 아래를 참고해주세요.
* 은척양조장에서 차로 10분 정도 가면 명주박물관이 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간다면 박물관에 들려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37629&cid=42856&categoryId=4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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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anmee.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20/201707200311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