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8점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민음사

학교 도서관에 밀란 쿤데라 전집이 들어와서 읽었던 기억이 남아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읽은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하여간 최근 다시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했는데 역시 영화가 책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함이 많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책에서 묘사한 상징적인 텍스트가 영상으로 보여지면서 그 느낌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중간중간 철학적인 의미가 담긴 텍스트가 남겨져 있습니다. 서사의 흐름만을 따라가기에는 이 책의 무거움을 이해하기는 힘들 듯 합니다.


...영원한 재귀의 생각은 사물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보게끔 하는 시각을 우리에게 열어준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시각에서는 사물이 그것이 갖는 무상의 완화적 상황을 상실하고 나타난다...


책과 별개로 개인적으로 마음에 딱 와닿았던 구절. 예전에 드라마에서도 들었던 대사 같기도 한데 말이죠.


...그녀는 음악이 끝 없는 침묵의 설원에 핀 장미와 같았던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시대를 생각한다...


키취란 말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 이 책인가 봅니다. 일상에서 쓰는 의미는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좀 달라져버렸지만...


...너무 자주 사용한 탓으로 이 말이 지닌 원래의 형이상학적 의미는 없어져버렸다. 즉 키취는 똥의 절대적 부정이라는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말 그대로의 의미 및 전의적인 의미에서 키취란 인간존재에서 본질적으로 수락할 수 없는 것은 모두 그것의 시야에서 제외시킨다...


...어떤 개념을, 그것이 근거하고 있는 어떤 이론적인 원칙의 근거에서 정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음에 더 이상 놀랄 만한 일이 못된다. 즉, 정치운동은 합리적인 태도에 근거하지 않고 전체로서 이런 혹은 저런 정치적 키취를 형성하는 표상, 이미지, 단어, 원형 등에 근거한다...


* 편집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담긴 글을 보면 체코어판을 송동준 선생이 번역했었는데 밀란 쿤데라가 프랑스로 망명하면서 프랑스어로 다시 작품을 쓰고 번역 자체를 바꾸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재룡 선생이 다시 번역했다고 합니다. 원래 두 권을 다 구해서 비교해보려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송동준 선생의 번역으로만 읽었습니다. 책은 가지고 있으니 나중에라도 다시 ^^


...그 후 쿤데라는 체코어 판이나 독일어 판에서 번역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자신의 모든 책을 프랑스어에서 다시 번역해 줄 것을 요청했다. 결국 송동준 선생이 번역한 판본은 수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그 자리를 이재룡 선생의 번역판이 대신했다. 그 후 신작인 『향수』『정체성』을 비롯하여 『농담』 『불멸』 등 이전에 번역된 모든 작품이 민음사로 서서히 모이기 시작했다...

http://bookedit.tistory.com/180


신고
댓글
  • 프로필사진 강태호 무상의 완화적 상황이란 무엇을 뜻하는지요? 소설 읽다 이해가 안되어 댓글 남깁니다ㅠㅠ 2017.08.14 01:13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koko8829.tistory.com 열이아빠 아마 저도 이 글을 쓸 때 책을 읽고 바로 이해되지 않던 부분을 남겼던 터라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다. 문구는 송동준 교수의 번역이구요.

    댓글을 보고 궁금해서 찾아보니 2006년 이화여대 수시 논술문제 중에 해당 문구가 논제로 나와있는데 번역이 다르더군요. 이재룡 선생의 번역인지는 다시 확인해봐야 할 듯 합니다 (저녁에 집에 가서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논술문제의 주제가 완화적 상황은 아니라서 해설이 자세하게 나와있지는 않습니다. '2006년 이화여대 수시 논술'로 검색하시면 문제 자료는 여기 저기 많이 있습니다.

    하여간 본문은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
    영원한 재귀(再歸)는 아주 신비스러운 사상이다. 니체는 이 사상으로 많은 철학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그 언젠가는 이미 앞서 체험했던 그대로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는 것! 이 어처구니없는 신화가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프랑스 혁명이 영원히 반복되도록 되어 있다면 프랑스의 역사 기술은 로베스피에르를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역사 기술은 반복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피비린내 나던 혁명의 세월은 그야말로, 다양한 이론 및 토론으로 변했다. 그것은 깃털보다 더 가볍게 되어 아무에게도 두려움을 불어넣어 주지 못한다. 역사에서 단 한 번 등장했던 로베스피에르와, 프랑스 사람들의 목을 베기 위해 영원히 재귀하는 로베스피에르 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잔혹한 전쟁이나 무서운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시간이 흐르면 무서움을 잊어버리곤 한다. 이 완화적(緩和的) 상황은 우리가 어떤 판결을 내릴 수 없게끔 한다. 무상한 것을 어떻게 심판할 수 있단 말인가? 저녁노을에 비치면 모든 것은 향수의 유혹적인 빛을 띠고 나타난다. 단두대까지도 그렇다. 이와 달리 영원한 재귀의 시각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물에 대해 가지게 되는 완화적 상황이 사라지게 된다...

    어떤 사건에 대해 시간이 흘러가면 잊혀져야 하는데(잊혀지는 것을 '완화'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재귀적 상황에서는 그 사건을 다시 접하기 때문에 잊혀지지 못한다는 것이죠. 즉 '완화'되어야 하는 것이 '완화'되지 못한다는 의미인듯 합니다.

    톰크루즈가 출연했던 '엣지 오브 투마로우'에서의 타임루프 같은 상황이 아닌가 싶네요. 그냥 잊어버리고 싶지만 다시 같은 상황에 계속 빠져버리는...
    2017.08.14 09:42 신고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