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 8점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김영사

뭔가 거대한 서사시를 쓴 것 같지만 워낙 책이 두꺼워서 읽다가 앞 부분을 놓쳐버리는 것이 아쉽네요. 챕터를 나누어 책을 펴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행복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해봅니다.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행복"뿐 아니라 여러 개념들이 상당히 머리 아픈 개념들입니다. 그 실체를 무언가로 정의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행복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개념이고 절대적인 크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삶에는 한계가 있고 모든 것을 다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삶의 형태를 다 경험할 수 없다면 누구도 이를 평가할 수 없겠죠.

...또 다른 흥미로운 발견은 질병과 행복의 관계다. 질병이 단기적인 행복감을 낮추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행복감을 감소시키는 것은 두 가지 경우뿐인데, 하나는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병이 사람을 쇠약하게 만드는 지속적인 고통을 주는 것이다.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으로 진단을 받은 사람은 단기간 우울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만일 변이 더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사람들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한다. 이들이 평가하는 주관적 행복은 건강한 사람과 같은 수준이다...



다른 거대한 담론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뒷담화이론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나중에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찾아봐야겠네요.

...인간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소문을 이야기하고 수다떨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뒷담화이론은 농담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무수히 많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의사소통의 대다수가 남얘기다. 이메일이든 전화든 신문 칼럼이든 마찬가지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우리의 언어가 바로 이런 목적으로 진화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가상의 문화 이야기도 계속 나옵니다. 책 앞부분에 "회사"라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결국에는 실체가 없는 "회사"에 종속되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죠. 어느 강연에서는 "AI"에 대해서도 가상의 실재인 "AI"에 종속되어 가는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었구요.

...사피엔스가 발명한 가상의 실재의 엄청난 다양성 그리고 그것이 유발하는 행동 패턴의 다양성은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의 주된 요소가 되었다. 일단 등장한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 발전했으며, 그 멈출 수 없는 변화를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인지혁명이란 역사가 생물학에서 독립을 선언한 지점이었다...


그러한 가상의 실재때문에 문화라는 것도 어쩌면 누군가의 설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의심들이 합리적이라는 것이구요.

...농업혁명 이래 인간사회는 점점 더 규모가 크고 복잡해졌다. 그동안 그런 사회질서를 지탱하는 상상의 건축물 역시 더욱 정교해졌다. 신화와 허구는 사람들을 거의 출생 직후부터 길들여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특정한 기준에 맞게 처신하며, 특정한 것을 원하고, 특정한 규칙을 준수하도록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수백만 명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해주는 인공적 본능을 창조했다. 이런 인공적 본능의 네트워크가 바로 '문화'다...


관념, 개념이라는 것이 실재가 아니라면 정말 머리 아파지는 일이네요. 이 책의 묘한 점은 텍스트 자체로는 그렇구나 싶은데 막상 그 텍스트를 받아들이고 나면 그럼 현실은 어떻게 되는거지?라는 거대한 질문이 남습니다.


...'협력'이란 말은 매우 이타적으로 들리지만 항상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평등주의적인 경우는 드물었다. 인간의 협력망은 대부분 압제와 착취에 적합하도록 맞춰져 있었다...


...평등이나 권리, 유한회사와 마찬가지로 자유란 사람들이 발명한 무엇이고,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이라는 우리의 관념은 생물학이 아니라 기독교 신학에서 온 것이다. '자연스러움'이란 말의 신학적 의미는 '자연을 창조한 신의 뜻에 맞는다'는 뜻이다...


농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물론 과거의 이야기는 절대적인 증거는 부족하기 때문에 작가의 상상력이 일부 더해진 것이지만 말이죠. 그 과거의 증거 마저 엘리트들이 만들어낸것이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모두 믿을 수 없다는 것도 또 하나의 함정입니다.


...사피엔스의 평균 뇌 용적은 수렵채집 시대 이래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증거가 일부 존재한다. 그 시대에 생존하려면 누구나 뛰어난 지적 능력을 지녀야 했다. 하지만 농업과 산업이 발달하자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기술에 더 많이 의존할 수 있게 되었고 '바보들을 위한 생태적 지위'가 새롭게 생겨났다. 별 볼 일 없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으며, 물품을 배달하거나 조립라인에서 단순노동을 하면서 그 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의 대형동물 중 인간이 초래한 대홍수에서 살아남는 것은 오직 인간 자신과 노아의 방주에서 노예선의 노잡이들로 노동하는 가축들뿐일 것이다...


...농업 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이 책의 단점은 모든 이야기가 너무 그럴듯 하다는 것이죠.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마치 시대를 관통하는 바이블처럼 인식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국주의에 대한 옹호와 관련된 비판도 나타나는 것 같고요.


...그러면 왜 역사를 연구하는가? 물리학이나 경제학과 달리,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가령 유럽인이 어떻게 아프리카인을 지배하게 되었을까를 연구하면, 인종의 계층은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며 세계는 달리 배열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그외 소소한 이야기들.


...심지어 오늘날에도 주화와 지폐(은행권)는 화폐의 유형으로서는 드문 것이다. 세계 전체의 화폐 총량은 약 60조 달러지만 주화와 지폐의 총액은 6조 달러 미만이다. 돈의 90퍼센트 이상, 우리 계좌에 나타나는 50조 달러 이상의 액수는 컴퓨터 서버에만 존재한다...


...1880년 영국 정부는 영국의 모든 시간표는 그리니치를 따라야 한다는 법률을 제정했다. 이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한 나라가 국가 시간을 채택하고 국민들에게 현지 시각이나 해가 뜨고 지는 주기 대신에 시계에 맞춰 살기를 강요한 것이다. 이처럼 대수롭지 않았던 시작은 결국 몇십 분의 일 초까지 똑같이 맞추는 세계적 시간표 네트워크를 낳았다...


...모든 평화상을 종식시킬 노벨 평화상은 원자폭탄을 개발한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그의 동료들에게 주어졌어야 할 것이다. 핵무기는 초강대국 사이의 전쟁을 집단 자살로 바꾸어놓았으며, 군대의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시도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만일 중국이 캘리포니아를 침공해 샌프란시스코 해변에 1백만 명의 병사를 상륙시키고 내륙으로 돌격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들이 얻을 것은 별로 없다. 실리콘밸리에는 실리콘 광산이 없다. 부는 구글의 엔지니어들과 할리우드의 대본가, 감독, 특수효과 전문가의 마음속에 있다. 이들은 중국의 탱크가 선셋대로에 진입하기 전에 인도의 방갈로르나 뭄바이로 향하는 첫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을 것이다...


나미야 잡화점에서도 언급되는 이야기지만 정말 인터넷이 이렇게 세상을 바꾸어나갈 것이라고는 아무도 몰랐겠죠. 미리 알았다고 해서 


...스푸트니크 위성과 아폴로 11호 우주선이 세계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을 당시, 사람들은 앞다투어 20세기 말이 되면 우리가 화성과 명왕성에 건설한 우주 식민지에 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이런 예측 중에서 실현된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한편 인터넷의 존재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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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열이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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