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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홍천 예술에 방문했을 때 대표님께 조만간 시음회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최근 양조장은 가보았지만 "시음회"라는 이벤트는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어떤 분위기일까 무척 궁금했습니다. 언제쯤 소식이 들리려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27일 페이스북에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이 가을, 예술에 취하다"라는 타이틀로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전통주조 예술의 첫 시음투어"



11월 10일부터 진행되는 일정입니다. 특정 장소를 임대해 진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점마다 특색에 맞게 진행되는 듯합니다. 첫 번째로 진행된 고양시 "부부0325"는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았습니다. 막걸리 능력자(김기호 님)의 페이스북에서 이날 분위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Bubu0325/posts/1311043388908127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713376408980796&id=1521143171537455


평일에 고양시까지 달려가기에는 좀 부담스러워서 일단 포기하고 다른 행사를 지켜보고 있는데 백곰막걸리에 행사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선착순은 아니지만 일단 응모를(댓글로) 하고 기다려봅니다. 워낙 신청하신 분이 많아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정말 행복하게도 초대를 받아 흥미로운 자리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테이블에는 미리 술과 시음잔, 테이블 텐트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테이블 텐트(table tent)는 보통 종이를 마치 텐트가 펴진 것처럼 접어서 테이블 위에 새로 출시된 메뉴를 소개하거나 특정 메뉴를 알리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예술에서 만든 것은 독특한 모습이라 "테이블 텐트"라고 표현하기는 좀 모호하지만 같은 용도입니다.



이날 시음투어는 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가 전체적인 진행을 맡아주셨고 양조장과 술에 대한 설명은 전통주조 예술 정회철 대표님이 해주셨습니다. 시음투어의 특성상 같은 술을 이야기하지만, 어느 곳에서 어떤 사람이 모이는지에 따라 술에 대한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을 듯합니다. 이번 투어에 참여하는 곳은 대부분 전통주에 대한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는 대표님들과 쉐프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입니다. 그냥 자리만 빌려 진행하는 행사는 아니라는 것이죠.



전통주조 예술에서 준비한 술은 

- 홍천강탁주(탁주/11%)

- 만강에 비친달(탁주/10%)

- 동몽(약주/17%)

- 무작(증류식 소주/53%)


백곰막걸리에서는 술의 종류에 따라 안주를 준비했습니다.

- 전복죽

(탁주)

- 서천 생물 간재미찜

- 야들야들 돼지고기보쌈과 향긋한 통영굴

- 속초 오징어 김치전

(약주)

- 삼천포 김부각

- 남해안 꼬지 소금구이

(증류식 소주)

- 서해안 흑모시조개탕

- 치즈&사과 컴포트



시음 행사가 진행된 시간이 막 저녁 식사 시간과 겹쳐서 일단 가볍게 배를 채우고 시작합니다. 전복죽은 숙취 해소 때문에 많이 찾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죽이라고 하지만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한 음식이죠. "죽"이 순우리말 같지만 "粥"이라는 한자입니다. "밥"은 순우리말인데 "죽"이나 "미음(米飮)"은 한자라고 합니다. 



이제 술과 함께 진행할 시간입니다. "홍천강 탁주"로 시작합니다. 여러 종류의 술을 마셔야 할 경우 어떤 술을 먼저 먹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단맛이 강한 술로 시작해서 묵직한 술로 넘어가야 하고 탁주로 시작해서 소주로 마무리한다는 등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개인별로 취향이 다르므로 뭐가 바르다고 할 수는 없겠죠. 의견이 분분할 경우에는 방문한 곳에서 추천해주는 방식을 따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이날 시음행사도 백곰막걸리 대표님의 가이드에 따라 시음을 진행합니다.



"홍천강탁주"와 같이 나온 안주는 "서천 생물 간재미찜"입니다. "간재미"는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등에서 쓰는 사투리라고 합니다. "가오리"가 정확한 표현이죠. 서천을 비롯한 충남에서는 "강게미"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간재미는 봄(4~5월)이 제철이라고 하는데 냉동이 아닌 생물을 쪄낸 것이라 그런지 입안에서 살살 녹는 맛이 정말 좋습니다. "홍천강 탁주"는 11%로 일반적인 막걸리에 비해 도수도 높고 단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간재미찜과 같이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안주와 딱 맞는 조합입니다.


* "간재미"라는 표현에 대해 아래와 같은 설명도 있습니다. "홍어"는 "참홍어"로 "간재미"는 "홍어"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하는데요. 쉽게 바뀌기는 힘들 듯 합니다.

...'간자미'는 '가오리 새끼'를 뜻합니다. 전라도에서 부르는 '간재미'는 '홍어'를 뜻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홍어류에 대한 분류학적 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아 혼란스러웠으나 이제 체계적으로 조사하여 우리가 부르던 '홍어'는 '참홍어'로 부르고, '간재미'는 '홍어'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따라서 '흑산 홍어'로 알려진 것은 '참홍어'로 부릅니다. '간자미'는 '가오리 새끼를 부르는 말이며, 전라도에서 '간재미'라고 부르는 '참홍어'처럼 생긴 어류는 '홍어'로 부릅니다...



"만강에 비친 달"은 단호박을 부재료로 사용합니다. 고문헌에 호박을 사용해 술을 빚는다는 이야기는 없다고 합니다. 술을 빚는 데 사용하는 부재료는 전분과 잘 조합되어야 하는데 호박은 그런 성질을 가지지 못한 탓입니다. 하지만 "단호박"은 이런 점에서 호박과는 다른 특성이 있습니다. 부재료로서 적합하고 술에 은은한 단맛을 더해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정 대표님이 처음 술을 준비할 때 "만강에 비친 달"은 마구 마시는 술이 아니라 가볍게 식사하면서 즐길 수 있는 술을 빚은 것이라 합니다.



"돼지고기보쌈"은 막걸리 안주로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제철 굴과 함께 먹는 보쌈맛은 추운 날의 별미죠. 집에서 돼지고기를 삶을 때 냄새가 나지 않도록 막걸리를 넣는 방법이 공유되기도 합니다. 기름진 돼지고기의 잔향을 막걸리가 넘어가면서 깔끔하게 감싸주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싶네요. "만강에 비친 달"은 단맛을 가지고 있지만, 그 맛이 입안에 남지는 않습니다. 술을 넘기면서 입안에 단맛이 살짝 맴돌다가 사라져버리죠. 그래서 다른 안주를 즐기는 데 불편하지 않습니다.



예술에서는 우리밀로 직접 누룩을 만듭니다. 배양된 균을 사용하면 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품질을 쉽게 관리할 수 있지만, 누룩을 직접 만든다면 술 빚기 전에 해야 할 일이 훨씬 많아집니다. 하지만 직접 만든 누룩은 술맛의 깊이를 더해줄 수 있습니다. 지역마다 김치맛이 다른 것처럼 술맛도 달라지려면 누룩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재료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한계가 있거든요.


또한, 쌀도 홍천의 "대안" 품종을 사용하는데 매번 술을 빚을 때마다 바로 도정해서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싸라기(부스러진 쌀알)를 걸러내는데 1/10 정도가 걸러진다고 합니다. 쌀 자체도 일반미에 비해 비싼 가격인데 싸라기를 걸러내면 실제 단가는 훨씬 올라가게 됩니다.

사용하는 쌀에 따라 밥맛이 달라지는 것을 느껴보았다면 프리미엄 막걸리를 만들 때 재료에 신경 쓰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혼합곡을 사용하는 것보다 단일 품종을 사용하는 쌀이 비싸고 단일 품종이더라도 어떤 품종인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집니다. 전통주도 마찬가지로 주재료인 쌀이나 찹쌀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원재료 가격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 안주는 "속초 오징어 김치전"입니다. 김치전은 무조건 바싹해야 한다는 취향인데 정말 제 취향에 딱 맞는 김치전이었습니다. "전"과 "부침개"의 차이를 구분할 때 재료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면 "전"이라고 하고 재료를 잘게 썰어 지진 것은 "부침개"라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굴전, 고추전, 호박전 등의 전자이고 김치부침개, 녹두부침개 같은 경우는 후자입니다. 하지만 어떤 재료를 쓰든 "전"이라는 표현이 더 익숙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 백곰막걸리를 찾았을 때 나왔던 김치전(정확한 메뉴명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은 핑거푸드 스타일이어서 이쁘긴 하지만 남자들의 막걸리 안주로는 아쉬웠던 기억이 남아있는데 이번 김치전은 정말 제대로 맘에 드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바삭한 김치전 덕분에 "홍천강탁주"를 다시 찾습니다. 정 대표님은 "만강에 비친 달"을 흔들기 전에 맑은술 부분을 먼저 맛보라고 권해주셨습니다. 다들 그 맛에 감탄했는데 안 그래도 이미 많은 분이 맑은술을 따로 내어 판매하는 것은 어떠냐는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이제 약주 "동몽"입니다. 약주에 어울리는 안주는 매운 음식이라 생각했는데 백곰막걸리의 선택은 좀 달랐습니다. 삼천포 김부각입니다. 김부각은 반찬으로 나오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는데 바삭한 맛에 자꾸 손이 가더군요. 매운 음식은 술의 향을 가려버리는데 김부각은 "동몽"의 깊은 향과 부드러움을 그대로 전해주었습니다.



이 대표님이 김부각에 대해 뭔가 설명을 해주신 것 같았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네요. 먹느라 정신이 없어서 따로 기록도 남기지 않았고 ^^



"동몽"과 함께 하는 다음 안주는 "남해안 꼬지 소금구이"입니다. "꼬지"라고 해서 닭고기꼬치 같은 것인가 싶었는데 생선이었네요. 꼬지는 잡어로 취급하고 있어서 시중에서 보기 드문 생선이라고 합니다. 주로 남해 지역이나 부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네요. 이 대표님이 직접 노량진에 가서 재료를 준비하기 때문에 오를 수 있는 안주라고 합니다.



보기에는 무시무시하지만, 소금구이로 차려진 맛은 마치 전어구이 같기도 하고 살짝 과일 향이 느껴지기도 하는 묘한 맛입니다. 다른 블로그에서 찾아본 꼬지구이는 생선살을 발라내기 힘들게 구워내는데 백곰막걸리에서 준비된 꼬지구이는 젓가락으로 살짝 들어내어 맛볼 수 있게 조리됐습니다. "꼬지"라는 단어로 찾아보니 거의 검색되는 것이 없는데 표준명은 "꼬치고기"라고 합니다. 국내보다는 일본에서 더 많이 잡히는 어종이며 국내에서는 낚시하시는 분들이 바로 잡아 구워 먹는 인기 어종이라고 하네요.


[어류도감/루어낚시어종] 꼬치고기

http://slds2.tistory.com/773



이제 마지막 증류식 소주인 "무작"입니다.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술입니다. 누룩과 쌀맛으로 맛과 향을 내고 2년 이상 숙성된 술입니다. 초기 출시 당시 한정판으로 정 대표님의 서명이 들어간 술을 판매했습니다. 한정판을 구입하신 분들은 마시고 싶어도 한정판의 희소성 때문에 차마 병을 따지 못한다고 합니다.



"무작"과 함께한 안주는 "서해안 흑모시조개탕"입니다. 칼칼하면서 조갯살이 부드러워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느낌입니다. "무작"은 받은 잔 그대로 입안에 털어 넣어 목 넘김을 제대로 느껴야 한다고 합니다. 53%지만 다른 도수 높은 술과 달리 타는듯한 느낌보다는 시원한 기운이 넘어가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흑모시조개탕 국물을 살짝 넘겨주면 몸이 따뜻해지면서 "무작"의 향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술과 음식을 즐기는 동안 시간이 3시간이 훌쩍 넘어갔습니다. 이미 지방에서 올라오신 분은 예약했던 차를 포기하셨고 정 대표님도 다음 일정 때문에 자리를 일어나실 시간이 됐습니다. 예정에 없던 마무리 음식으로 "치즈&사과 컴포트"가 나왔습니다. 이 음식이 그런 것이라는 것은 나중에 이 대표님 페이스북을 보고 알았습니다. 컴포트(compote)라는 것은 시럽에 익힌 과일을 차갑게 해서 먹거나 과일을 쪄서 먹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 같은 후식은 술자리 뒤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컴포트는 속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듯 가볍게 먹을 수 있습니다.

그냥 마무리하는 것은 아쉽지만, 체력적인 한계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남은 몇몇 분들은 더 깊은 밤을 보내셨다고 하네요 ^^



정 대표님은 지난 4월 "하우스 막걸리"라는 책을 펴내셨습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 속에 하우스 막걸리가 무엇인지 주류제조면허는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전통주 양조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까지 설명해놓은 책입니다. 


하우스 막걸리 / 정회철 / 동문통책방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542017


...많은 사람들이 일단 '하우스막걸리'가 무엇인지 알게 하자. 그리고 당장 사업으로 뛰어들지는 못하더라도 준비는 할 수 있게 하자. 많은 사람은 아니더라도 한두 명씩 하우스막걸리 사업을 하게 되고, 그것이 장사가 잘 되면, 또 다른 사람들이 하우스막걸리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우스막걸리가 조금씩 확산되다 보면 우리 전통주도 덩달아 발전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부족하지만, 법학자이면서 양조실무 경험이 있는 내가 할 수 있겠다 싶어 출간했다...


간혹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식품회수 대상으로 올라오는 양조장을 보면 식품 자체의 문제보다는 법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이를 지키지 못해 영업정지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고 경험이 있는 양조장에서도 법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데 하우스 막걸리를 시작하는 분들에게는 더 어려울 수 있겠죠. 그래서 이 책에서는 첫 장부터 주세법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제목을 보지 않고 책을 뒤척인다면 법규 해설집인가 싶을 정도입니다. 


...술을 빚으면서 주의할 것은, 술빚는 것이 그리 고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술빚는 과정의 3분의 2가 설거지이고, 무거운 것도 들고 날고 해야 하는 고된 일이다. 그리고 단순노동이고, 기다리는 작업이다. 한 달에서 길게는 석 달까지 기다려야 술이 나온다. 그리고 실패할 때가 많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 물론 술이 잘 되어서 남한테 자랑하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실패를 많이 해야 술을 보다 잘 알 수 있고, 술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남이 맛있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그만큼 고생했다는 의미이다. 고생과 정성이 없이는 술이 나올 수 없다...


고생과 정성이 담긴 술과 음식 감사드립니다.


전통주조 예술

http://www.ye-sul.co.kr/

https://www.facebook.com/yangonso.yesul


백곰막걸리 & 양조장

https://www.facebook.com/whitebearmakgeolli

http://map.naver.com/local/siteview.nhn?code=38010707&_ts=1479305651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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