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에서 "메밀꽃 필 무렵"이 원래는 "모밀꽃"이었다는 이야기를 보고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관련해서 여러 글이 있지만 논문 형식으로 작성된 것은 "이재춘 (1998). 문학작품 원본의 오류와 변개 양상-이효석의 모밀꽃 필 무렵을 중심으로. 우리말글, 407-429"라는 글이 있더군요.
해당 논문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 작품의 문제 뿐 아니라 30년대 이전 또는 방언을 사용한 작품이 교과서 등에 실리면서 현대국어로 변형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의도를 해치는 문제가 많다는 것입니다. 소설보다는 시에서 그런 면이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구요.
"메밀꽃 필 무렵"의 경우는 그런 문제도 있지만 원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오류를 잘못 해석해서 판본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로 바꾸어버리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조광, 1936) 장판은 벌서 쓸쓸하고 더운햇발이 벌녀놓은 전 휘장밑으로
(창미사, 1983)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려 놓은 전 휘장 밑으로
작가가 의도한 표현은 "벌이다"인데 꽤 많은 판본에서 "벌리다"라고 잘못 해석을 했다고 합니다. 위에서는 "벌여 놓은"이 올바른 해석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원본의 오기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뒤에도처음에도없는 단한번의 괴이한인연. 불평에다니기시작한 젊은
여기서 "불평"은 지명인 "봉평"의 오기라고 합니다. 작가가 그렇게 쓴 것인지 편집 과정에서 잘못 처리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최종적인 책임은 작가가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 글쓴이의 생각입니다.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오기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라는 겁니다.
방언에 대해서도 의도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면 표준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1933년에 제정된 맞춤법 통일안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고 있고 방언이 필요하지 않은(글쓴이의 생각에) 곳에서도 방언을 사용한 것도 문제였다고 합니다.
창미사에서 2003년 펴낸 이효석 전집에서는 "모밀꽃 필 무렵"이라고 제목을 고쳤습니다.
이런저런 텍스트를 찾아보긴 했는데 제목을 처음에 누가 어떤 의도로 건드렸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모밀꽃 필 무렵」의 정본화를 위한 고찰"이라는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오아영 석사논문에서는 제목의 문제에 대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be54d9b8bc7cdb09&control_no=2b1e88f6101a7595ffe0bdc3ef48d419
첫째, 고쳐서는 안 되는 부분인 방언․개인어․고어가 각 교과서마다 서로 다르게 수정 표기되고 있는데도 교과서 어디에서도 그에 대한 설명을 찾을 수 없다. 특히 제목의 경우 원본의「모밀꽃 필 무렵」이 교과서에서는 전부「메밀꽃 필 무렵」으로 변경 수록되고 있는데,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작가의 의도에 따라 ‘메밀’이 아닌 방언 ‘모밀’로 제목을 바꾸어 놓았는데 이는 원작자의 의도를 무시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모밀꽃 필 무렵」은 강원도 방언과 다른 지역의 방언이 어울려 구사되면서 작품 특유의 서정성이 도드라지게 표현되고 있다. 그런데 교과서에 싣기 위해 이들을 모두 표준어로 바꾼다면 작품의 맛이 사라지고 만다. 원본의 순수성이 훼손될뿐더러 방언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위키문헌에도 원본은 올라와 있지 않습니다.
https://ko.wikisource.org/wiki/%EB%A9%94%EB%B0%80%EA%BD%83_%ED%95%84_%EB%AC%B4%EB%A0%B5
초판본은 아래에서
여름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것만 장판은 벌서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녀 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지반 돌아간 뒤요 팔니지 못한 나무꾼 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들 있으나 석유ㅅ병이나 받고 고기ㅅ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벗티고 있을 법은 없다. 춥춥스럽게 날어드는 파리떼도 작란꾼 각다귀들도 귀치않다. 얼금뱅이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생원은 기어코 동업의 조선달을 낙구워 보았다.
-- 그만 걷을까.
-- 잘 생각했네. 봉평장에서 한 번이나 호붓하게 사 본 일 있었을까. 내일 대화장에서나 한 목 버러야겠네.
-- 오늘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될껄.
-- 달이 뜨렸다.
절넝절넝 소리를 내며 조선달이 그 날 산 돈을 따지는 것을 보고 허생원은 말뚝에서 넓은 휘장을 걷고 벌려 놓왔든 물건을 걷우기 시작하였다. 무명 필과 주단 바리가 두 고리ㅅ작에 꼭 찼다. 멍석 우에는 천 조각이 어수선하게 남었다.
다른 축들도 벌서 거진 전들을 걷고 있었다. 약빠르게 떠나는 패도 있었다. 어물장사도 땜쟁이도 엿장사도 생강장사도 꼴들이 보이지 않었다. 내일은 진부와 대화에 장이 선다. 축들은 그 어느 쪽으로든지 밤을 새며 육칠십 리 밤길을 타박거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장판은 잔체 뒤ㅅ마당같이 어수선하게 버러지고 술집에서는 싸홈이 터져 있었다.
주정꾼 욕지거리에 섞여 게집의 앙칼진 목소리가 찢어젔다. 장날 저녁은 정해 놓고 게집의 고함 소리로 시작되는 것이다.
-- 생원. 시침을 떼두 다 아네. …… 충주집말야.
게집 목소리로 문득 생각 난 듯이 조선달은 비죽이 웃는다.
-- 화중지병이지. 면소 패들을 적수로 하구야 대거리가 돼야 말이지.
-- 그렇지두 않을 걸. 축들이 사족을 못 쓰는 것두 사실은 사실이나 아무리 그렇다곤 해두 왜 그 동이말일세 깜적같이 충주집을 후린 눈치거든.
-- 무어 그 애숭이가 물건 가지로 낙것나 부지. 착실한 여석인 줄 알었드니.
-- 그 길만은 알 수 있나. …… 궁리 말구 가 보세나 그려. 내 한턱 씀세.
그다지 마음이 댕기지 안는 것을 쫓아갔다. 허생원은 게집과는 연분이 멀었다. 얼금뱅이 상판을 처들고 대여 설 숫기도 없었으나 게집 편에서 정을 보낸 적도 없었고 쓸쓸하고 뒤틀닌 반생이였다.
충주집을 생각만 하야도 철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발 밑이 떨니고 그 자리에 소스라저 버린다. 충주집 문을 들어서 술 좌석에서 짜장 동이를 맞났을 때에는 어찌 된 서슬엔지 발근 화가 나 버렸다.
상 우에 붉은 얼굴을 쳐들고 제법 게집과 농탕치는 것을 보고서야 견딀 수 없었든 것이다. 녀석이 제법 난질꾼인데 꼴사납다. 머리의 피도 안 마른 여석이 낮부터 술 처먹고 게집과 농탕이야. 장돌뱅이 망신만 시키고 돌아다니누나. 그 꼴에 우리들과 한 목 보자는 셈이지. 동이 앞에 막아 서면서부터 책망이였다.
걱정두 팔짜요 하는 듯키 빤이 처다보는 상기된 눈망울에 부듸칠 때 결ㅅ김에 따구를 하나 갈겨 주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동이도 화를 쓰고 팩하게 일어서기는 하였으나 허생원은 조곰도 동색하는 법 없이 마음먹은 대로는 다 짓거렸다.
-- 어듸서 주서 먹은 선머슴인지는 모르겠으나 네게도 애비 에미 있겠지. 그 사나운 꼴 보문 맘 좋겠다. 장사란 탐탁하게 해야 되지 게집이 다 무어야 나가거라 냉콤 꼴 치워.
그러나 한 마듸도 대거리하지 않고 하염없이 나가는 꼴을 보려니 도리혀 측은히 역여젔다. 아직두 서름서름한 사인데 너무 과하지 않었을까 하고 마음이 섬짓해젔다. 주체도 넘지 같은 술손님이면서두 아무리 젊다고 자식 낳게 되는 것을 붙들고 치고 닦아셀 것은 무어야 원. 충주집은 입술을 쭝굿하고 술 붓는 솜씨도 거칠었으나 젊은 애들한테는 그것이 약이 된다나 하고 그 자리는 조선달이 얼버무려 넘겼다.
너 녀석한테 반했지 애숭이를 빨문 죄된다 한참 법석을 친 후이다 맘도 생긴데다가 웬일인지 흠벅 취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허생원은 주는 술잔이면 거의 다 들여켰다. 건아해짐을 따라 게집 생각보다도 동이의 뒤ㅅ일이 한결같이 궁금해젔다. 내 꼴에 게집을 가로채서는 어떻걸 작정이였우 하고 어리석은 꼴딱서니를 모질게 책망하는 마음도 한 편에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얼마나 지난 뒤인지 동이가 헐네벌떡어리며 황급히 불으러 왔을 때에는 마시든 잔을 그 자리에 던지고 정신없이 허덕이며 충주집은 뛰여나간 것이였다.
-- 생원 당나귀가 바를 끊구 야단이예요.
-- 각다귀들 작란이지 필연코.
즘생도 즘생이려니와 동이의 마음씨가 가슴을 울녔다. 뒤를 따라 장판을 다름질하려니 개심츠레한 눈이 뜨거워질 것 같으다.
-- 부락스런 여석들이라 어쩌는 수 있어야죠.
-- 나귀를 몹시 구는 녀석들은 그냥 두지는 안는걸.
반평생을 같이 지내온 즘생이였다. 같은 주막에서 잠자고 같은 달빛에 젖으면서 장에서 장으로 걸어다니는 동안에 이십 년의 세월이 사람과 즘생을 함께 늙게 하였다. 바스러진 목 뒤 털은 주인의 머리털과도 같이 바스러지고 개진개진 젖은 눈은 주인의 눈과 같이 눈꼽을 흘녔다.
몽당비처럼 짧게 슬니운 꼬리는 파리를 쫓으랴고 기ㅅ것 휘저어 보아야 벌서 다리까지는 닷지 않었다. 달어 없어진 굽을 몇 번이나 도려내고 새 철을 신켰는지 모른다. 굽은 벌서 더 자라나기는 틀녔고 달어 버린 철 사이로는 피가 빼짓이 흘넜다. 냄새만 맞고도 주인을 분간하였다. 호소하는 목소리로 야단스럽게 울며 반겨한다.
어린 아해를 달내듯키 목덜미를 어루맍어 주니 나귀는 코를 벌눔거리고 입을 투르러거렸다. 코ㅅ물이 튀였다. 허생원은 즘생 때문에 속도 무던히는 썩였다. 아해들의 작란이 심한 눈치여서 땀 배인 몽동아리가 부들부들 떨니고 좀체 흥분이 식지 안는 모양이였다. 굴레가 버서지고 안장도 떠어젔다. 요 몺을 자식들 하고 허생원은 호령을 하였으나 패들은 번서 줄행랑을 논 뒤요 몇 남지 않은 아해들이 혼령에 놀래 비슬비슬 멀어젔다.
-- 우리들 작란이 아니우. 암놈을 보고 저 혼자 발광이지
코흘리개 한 녀석이 멀니서 소리를 첬다.
-- 고 녀석 말투가.
-- 김첨지 당나귀가 가 버리니까 왼통 흙을 차고 거품을 흘니면서 및인 소같이 날뛰는걸. 꼴이 우수워 우리는 보고만 있었다우. 배를 좀 보지.
안해는 앙도라진 투로 소리를 치며 깔깔 웃었다. 허생원은 모르는 결에 낯이 뜨거워젔다. 뭇 시선을 막으랴고 그는 즘생의 배 앞을 가리워 서지 않으면 안 되였다.
-- 늙은 주제에 암새를 내는 셈야. 저놈이 즘생이.
아래의 웃음소리에 허생원은 주춤하면서 기어코 견딀 수 없어 채ㅅ죽을 들더니 아해를 쫓았다.
-- 쫓으랴거든 쫓아 보지. 왼손잡이가 사람을 때려.
줄다름에 다라나는 각다귀에는 당하는 재조가 없었다. 왼손잡이는 아해 하나도 후릴 수 없다. 그만 채쭉을 던젔다. 술끼도 돌아 몸이 유난스럽게 확근거렀다.
-- 그만 떠나세. 녀석들과 어울리다가는 한이 없어. 장판의 각다귀들이란 어른보다도 더 무서운 것들인 걸.
조선달과 동이는 각각 제 나귀에 안장을 언꼬 짐을 싫기 시작하였다. 해가 꽤 만히 기우러진 모양이였다.
드팀전 장도리를 시작한 지 이십 년이나 되여도 허생원은 봉평장을 빼논 적은 드물었다. 충주 제천 등의 이웃 군에도 가고 멀니 영남 지방도 헤매이기는 하였으나 강능쯤에 물건하러 가는 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군내를 돌아단였다. 닷새만콤 식의 장날에는 달보다도 확실하게 면에서 면으로 건너간다.
고향이 청주라고 자랑삼아 말하였으나 고향에 돌보러 간 일도 있는 것 같지는 않었다.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산이 그대로 그에게는 그리운 고향이였다. 반 날 동안이나 뚜벅뚜벅 것고 장터 있는 마을에 거지반 가까웠을 때 거친 나귀가 한바탕 우렁차게 울면 -- 더구나 그것이 저녁녁이여서 등불들이 어둠 속에 깜박어릴 무렵이면 늘 당하는 것이것만 허생원은 변치 않고 언제든지 가슴이 뛰놀았다.
젊은 시절에는 알뜰하게 벌어 돈푼이나 모아 본 적도 있기는 있었으나 읍내에 백중이 열닌 해 호탕스럽게 놀고 투전을 하고 하야 사흘 동안에 다 털어 버렸다. 나귀까지 팔게 된 판이였으나 애끗는 정분에 그것만은 이를 물고 단념하였다. 결국 도로아미타불로 장도리를 다시 시작할 수밖에는 없었다.
즘생을 데리고 읍내를 도망해 나왔을 때에는 너를 팔지 않기 다행이였다고 길까에서 울면서 즘생의 등을 어루맍었든 것이었다. 빗을 지기 시작하니 재산을 뫃을 렴은 당초에 틀니고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러 장에서 장으로 돌아다니게 되였다.
호탕스럽게 놀았다고는 하야도 게집 하나 후려 보지는 못하였다. 게집이란 좀 쌀쌀하고 매정한 것이였다. 평생 인연이 없는 것이라고 신세가 서글퍼젔다. 일신에 가까운 것이라고는 언제나 변함 없는 한 필의 당나귀였다.
그렇다고는 하야도 꼭 한 번의 첫일을 잊을 수는 없었다. 뒤에도 처음에도 없는 단 한 번의 괴이한 인연. 불평에 다니기 시작한 젊은 시절의 일이였으나 그것을 생각할 적만은 그도 산 보람을 느꼈다.
-- 달밤이였으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지금 생각해두 도모지 알 수는 없어.
허생원은 오늘 밤도 또 그 이야기를 꺼집어 내랴는 것이다. 조선달은 친구가 된 이래 귀에 못이 백이도록 들어 왔다. 그렇다고 실증을 낼 수도 없었으나 허생원은 시침을 떼고 되푸리할 대로는 되푸리하고야 말었다.
-- 달밤에는 그런 이야기가 격에 맞거든.
조선달 편을 바라는 보았으나 물론 미안해서가 아니나 달빛에 감동하야서였다. 이즈러는젔으나 보름 가제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흔붓히 흘니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녀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즘생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니며 콩포기와 옥수수 닢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왼통 모밀밭이여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곰을 뿌린 듯이 흠웃한 달빛에 숨이 막켜 하얗었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 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낭딸낭 모밀밭게로 흘너간다. 앞장 선 허생원의 이야기 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적히는 안 들녔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 멋에 적적하지는 않었다.
-- 장 선 꼭 이런 날 밤이였네. 객주집 토방이란 무더워서 잠이 들어야지. 밤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까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나 보이는 곳마다 모밀밭이여서 개울까가 어듸 없이 하얀 꽃이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도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아깐으로 들어가지 않었나. 이상한 일도 많지. 거기서 난데없는 성서방네 처녀와 마조첬단 말이네 봉평서야 제일 가는 일색이였지.
-- 팔짜에 있었나부지.
아무렴 하고 응답하면서 말머리를 애끼는 듯이 한참이나 담배를 빨 뿐이였다. 구수한 자지빛 연기가 밤 기운 속에 흘러서는 녹았다.
-- 날 기다린 것은 아니였으나 그렇다고 달리 기다리는 놈팽이가 있은 것두 아니였네. 처녀는 울고 있단 말야. 짐작은 대고 있었으나 성서방네는 한창 어려워서 들고 날 판인 때였지. 한 집안 일이니 딸에겐들 걱정이 없을 리 있겠나. 좋은 데만 있으면 시집도 보내련만 시집은 죽어도 실타지. …… 그러나 처녀란 울 때같이 정을 끄는 때가 있을까. 처음에는 놀나기도 한 눈치였으나 걱정 있을 때는 눅으러지기도 쉬운 듯해서 이럭저럭 이야기가 되였네. …… 생각하면 무섭고도 기막힌 밤이였어.
-- 제천연지로 줄행랑을 놓은 건 그 다음 날이였나.
-- 다음 장도막에는 벌서 왼 집안이 사라진 뒤였네. 장판은 소문에 발끈 뒤집혀 고직해야 술집에 팔녀가기가 생수라고 처녀의 뒷공론이 자자들하단 말이야. 제천 장판을 몇 번이나 뒤젔겠나. 하나 처녀의 꼴은 꿩 궈 먹은 자리야. 첫날 밤이 마즈막 밤이였지. 그때부터 봉평이 마음에 든 것이 반평생을 두고 다니게 되였네. 평생인들 잊을 수 있겠나.
-- 수 조왔지. 그렇게 신통한 일이란 쉽지 않어. 항용 못난 것 얻어 색기 낳고 걱정 늘고 생각만 해두 진저리나지. …… 그러나 늙으막바지까지 장돌뱅이로 지내기도 힘드는 노릇 아닌가. 난 가을까지만 하구 이 생애와두 하직하랴네. 대화쯤에 조고만 전방이나 하나 버리구 식구들을 불으겠어. 사시장천 뚜벅뚜벅 걸기란 여간이래야지.
-- 옛 처녀나 맞나면 같이나 살까. …… 난 걱구러질 대까지 이 길 것고 저 달 볼 테야.
산길을 벗어나니 큰길도 티워젔다. 꽁무니의 동이도 앞으로 나서 나귀들은 가로 늘어섰다.
-- 총각두 젊겠다 지금이 한창 시절이렸다. 충주집에서는 그만 실수를 해서 그 꼴이 되였으나 설게 생각 말게.
-- 처 천만에요. 되려 부끄러워요. 게집이란 지금 웬 제격인가요. 자나깨나 어머니 생각 뿐인데요.
허생원의 이야기로 실심해한 끝이라 동이의 어조는 한풀 숙으러진 것이었다.
-- 애비 에미란 말에 가슴이 터지는 것도 같었으나 제겐 아버지가 없어요. 피부치라고는 어머니 하나뿐인 걸요.
-- 돌아가섰나.
-- 당초부터 없어요.
-- 그런 법이 세상에.
생원과 선달이 야단스럽게 껄껄들 웃으니 동이는 정색하고 욱일 수밖에는 없었다.
-- 부끄러워서 말하지 안으랴 했으나 정말예요. 제천 촌에서 달도 차지 않은 아해를 낳고 어머니는 집을 쪼껴났죠. 웃우운 이야기나 그러기 때문에 지금까지 아버지 얼굴도 본 적 없고 있는 고장도 모르고 지내와요.
고개가 앞에 놓인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나렸다. 둔덕은 험하고 입을 버리기도 대견하야 이야기는 한동안 끊겼다. 나귀는 건듯하면 미끄러젔다. 허생원은 숨이 차 몇 번이나 다리를 쉬지 않으면 안 되였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나히가 알녔다. 동이 같은 젊은 축이 그지없이 부러웠다. 땀이 등을 한바탕 쪽 씿어 나렸다.
고개 넘어는 바로 개울이였다. 장마에 흘러 버린 널다리가 아직도 걸니지 않은 채로 있는 까닭에 벗고 건너야 되였다. 고이를 벗어 띄로 등에 얽어매고 반 벌거숭이의 웃읍광스런 꼴로 물 속에 뛰여 들었다. 금방 땀을 흘닌 뒤는 뒤였으나 밤 물은 뼈를 찔넜다.
-- 그래 대체 기르긴 누가 기르구.
--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의부를 얻어 가서 술장사를 시작했소. 술이 고주래서 의부라고 전 막난이예요. 철들어서부터 맛기 시작한 것이 하론들 편한 날 있었을까. 어머니는 말니다가 채이고 맞고 칼부림을 당하곤 하니 집 꼴이 무어겠소. 열여덜 살 때 집을 뛰여나서부터 이 짓이죠.
-- 총각 났세론 섬이 무던하다고 생각했드니 듣고 보니 딱한 신세로군.
물은 깊어 허리까지 채였다. 속 물살도 어지간히 세인데다가 발에 채이는 돌맹이도 미끄러워 금시에 훌칠 듯하였다. 나귀와 조선달은 재빨리 거의 건넜으나 동이는 허생원을 붓드느라고 두 사람은 훨선 떠러젔다.
-- 모친의 친정은 원래부터 제천이였든가.
-- 웬걸요. 시원스리 말은 안해 주나 봉평이라는 것만은 들었죠.
-- 봉평. 그래 그 애비 성은 무엇인구.
-- 알 수 있나요. 도모지 듣지를 못했으니까.
그 그렇겠지 하고 중얼거리며 흐려지는 눈을 까물까물하다가 허생원은 경망하게도 발을 빗듸덧다. 앞으로 꼭구라지기가 바뿌게 몸채 풍덩 빠저 버렸다. 허부적어릴수록 몸을 것잡을 수 없어 동이가 소리를 치며 가까히 왔을 때에는 벌서 퍽으나 흘넜었다. 옷채 졸짝 젖으니 물에 젖은 개보다도 참혹한 꼴이였다. 동이는 물 속에서 어른을 햇갑겨 어불 수 있었다. 젖었다고는 하야도 여윈 몸이라 장정 등에는 오히려 가벼웠다.
-- 이렇게까지 해서 안 됐네. 내 오놀은 정신이 빠진 모양이야.
-- 염려하실 것 없어요.
-- 그래 모친은 애비를 찾이는 안는 눈치지.
-- 늘 한 번 맞나고 싶다고는 하는데요.
-- 지금 어듸 게신가.
-- 의부와도 갈나저 제천에 있죠. 가을에는 봉평에 모서 오랴고 생각 중인데요. 이를 물고 벌면 이럭저럭 살어갈 수 있겠죠.
-- 아무렴 기특한 생각이야. 가을이 됐다.
동이의 탐탁한 등어리가 뼈에 사모처 따뜻하다. 물을 다 건넜을 때에는 도리혀 서글픈 생각에 좀 더 엎혔으면도 하였다.
-- 진종일 실수만 하니 웬일이요. 생원.
조선달은 바라보며 기어코 웃음이 터젔다.
-- 나귀야. 나귀 생각하다 실족을 했어. 말 안 했든가. 저 꼴에 제법 색기를 얻었단 말이지. 읍내 강능집 피마에게 말일세. 귀를 쫑굿 세우고 달랑달랑 뛰는 것이 나귀 색기같이 귀여운 것이 있을까. 그것 보러 나는 일부러 읍내를 도는 때가 있다네.
-- 사람을 물에 빠지울 젠 따는 대단한 나귀 색기군.
허생원은 젖은 옷을 웬만큼 짜서 입었다. 이가 덜덜 갈니고 가슴이 떨니며 몹시도 추웠으나 마음은 알 수 없이 둥실둥실 가벼웠다.
-- 주막까지 부즈런히들 가세나 뜰에 불을 피우고 훗훗이 쉬여. 나귀에겐 더운 물을 끄려주고. 내일 대화장 보고는 제체이다.
-- 생원도 제천으로.
-- 오라간만에 가 보고 싶어. 동행하려나 동이.
나귀가 것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쭉은 왼손에 있었다. 오래동안 아둑신이같이 눈이 어둡든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이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했갑고 방울 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녔다.
달이 어지간이 기우러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