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양조장 SNS 기자단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많은 양조장을 가보았지만, 매번 기회를 놓쳐 방문하지 못했던 곳이 정읍이었습니다. "송명섭 막걸리"로 잘 알려진 "태인 양조장"이 있는 곳이죠. 물론 TV에서도 자주 등장해서 그 주변의 풍경은 마치 가본 것처럼 익숙하기도 하고 송명섭 명인 역시 몇몇 전시회에서 멀리서나마 본 적이 있어 직접 가봐야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아쉬운 건 아쉬운 거죠. 그러던 중에 식품명인체험홍보관에서 명인 체험 프로그램 주제로 "전라도 명인"이 정해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프로그램 중 2월 25일 식품명인 제48호 송명섭 명인 프로그램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식품명인체험관 프로그램은 네이버 예약 또는 전화로 예약을 신청받고 있는데 일단 네이버 예약 시스템을 이용해보았습니다. 입금을 따로 해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바로 참석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예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물론 예약 확정은 따로 처리됩니다. 아마도 담당자가 예약을 확인하고 확정 처리해주어야 하는 듯합니다).
4월, 5월 프로그램도 예약을 받고 있습니다.
4월 8일은 박재서 명인의 안동소주, 5월 13일은 박흥선 명인의 솔송주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30명 내외로 신청받기 때문에 늦으면 참석하고 싶어도 참석할 수 없습니다.
한국전통식품문화관 이음
전통주 갤러리, 식품명인체험홍보관은 "한국전통식품문화관 이음"이라는 공간 안에 모여 있습니다. 전통주 갤러리와 2층 카페 공간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3층 체험관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공간으로 사용합니다. 체험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에 대기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카페 옆에 마련되어 있고 "오늘의 차"를 체험해볼 수 있습니다. 방문한 날은 "입하차"가 오늘의 차였네요.
카페 공간은 야외 테라스도 준비되어 있고 강남역 부근이지만 혼잡스러운 공간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조용하게 시간을 즐길 수 있습니다. 식품명인의 차와 함께 한과도 같이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맘에 드는 제품은 직접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시작할 준비가 되면 3층으로 이동합니다. 3층은 강의와 실습을 같이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식품 명인들의 시연과 실습이 진행되기 때문에 조리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반가운 죽력고와 PET 병에 담긴 알 수 없는 술(아마도)의 모습이 보입니다.
소개를 받고 등장하시는 송명섭 명인님입니다. 곰이라고 불러달라고 말씀하셨는데 실제 태인합동주조 웹사이트에 곰이 그려져 있습니다. 저런 무시무시한 이미지는 아니고 부드러운 모습이십니다. 2015년 머니워크 기사를 보면 "...그의 주조장에선 직접 농사지은 쌀로 술을 빚는다. 정부미나 수입쌀로 빚으면 비용이 훨씬 절감되지만 이런 융통성을 발휘할 위인이 못된다. 그의 지인들이 그를 ‘곰 같은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유다..."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http://moneys.mt.co.kr/news/mwView.php?no=2015091619528039984
술을 빚는 온도는 따로 있는 걸까?
선생님의 강의는 간단한 질문을 던지시고 답을 하면 그게 정말 맞는 거냐는 질문을 다시 던지는 형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정월대보름에 귀밝이술을 마십니다. 귀밝이술은 아이들도 마시기 때문에(요즘은 모르겠네요) 1년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술을 마시는 날이라고 하네요. 귀밝이술은 동짓달에 빚는데 일반적으로 술을 빚을 때 적절한 온도는 23도 내외로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육 기관이나 책에서 언급하는 내용이죠. 하지만 지금처럼 보일러를 때서 모든 공간이 적절한 온도가 유지되지 않던 시절에 23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라는 것이 선생님의 첫 번째 질문입니다.
지금처럼 식구마다 자기 방을 가지고 있던 시절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죠(물론 지금도 식구마다 자기 방을 가지고 있는 집이 흔한 것은 아닙니다만) 예전에는 대부분 여러 식구가 같은 공간에서 생활했고 생활 공간 외에는 난방이 되지 않았습니다. 술독을 방안에 들여놓으면 적절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 생활공간에 술독을 들여놓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여유가 있는 집이라면 대청마루에 그렇지 않다면 부엌 공간이나 밖에 술독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그럼 동짓달에 23도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죠.
물론 술을 애완동물처럼 키운다면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http://webtoon.daum.net/league/view/13325
삼해주(三亥酒)도 발효온도를 10-15도 정도로 이야기하는데 예전에는 그 정도의 온도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합니다. 얼지 않을 정도로 0~5도 사이에 만들어지지 않았냐는 것이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를 증명하기 위해 0~5도 사이에서 숙성된 청명향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방안에서 빚은 술과 같이 비교할 수 있었는데 밖에서 숙성된 술은 2~3일 정도 시간을 더 주었다고 합니다. 추운 날씨에 효소가 전분을 분해하기 위한 시간이라고 설명해주셨는데 그 정도 차이라면 실내에서 빚은 술과 큰 차이가 없지 않나 싶습니다.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려놓으셨는데 발효실 온도가 0.5도입니다. 이 땅에서 술은 가양주 문화라고 합니다. 집집이 술을 빚는 환경이 달랐고 이에 맞추어 술을 빚었다는 이야기죠.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은 몇몇 문헌을 통한 것뿐인데 하나의 레시피가 모든 지역 모든 집에서 사용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668849673301131&id=100005283127105&pnref=story
낮은 온도에서 발효를 설명하시면서 동치미를 예로 들어주셨습니다. 동치미는 낮은 온도에서 서서히 익혀야 국물이 맑고 맛도 좋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설명조차 집집이 다른 것이겠지요.
죽력고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죽력고나 이강고가 다른 술과 다른 점은 술에 직접 약재를 넣지 않고 증류 과정에서 증류된 술이 중간 길목에 있는 약재를 지나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것은 간단한 증류 과정을 보여주는 장치인데 증류된 술이 지나는 둥근 공간에 약재를 채워놓았습니다. 죽력고를 내릴 때는 시루를 사용하는데 기본적인 원리는 같다는 설명입니다.
고두밥 만들기
고두밥을 짓고 식히는 일은 술 빚는 일 중에서 힘들어 보이는 작업 중 하나입니다. 빠르게 식혀야 하므로 힘도 들고 쉽지 않은 작업이지요. 선생님은 고두밥을 자연적으로 식히는 방법이 꼭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선생님이 어렸을 때 고두밥을 널어놓고 식히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적도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물로 식히는 겁니다. 물로 식히기 때문에 빠르게 작업할 수 있고 고두밥을 널어놓을 공간도 필요하지 않고 잡균이 침투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물의 온도만큼 식힐 수 있는데 고두밥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열 때문에 더 낮은 온도로 내려가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마치 비빔면처럼 말이죠.
이날 프로그램 주제는 "송명섭 명인과 함께 조상님의 현명하심을 느끼다"이었습니다. 현명(賢明)이라는 단어는 "어질고 슬기로워 사리에 밝음"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어쩌면 조상님의 현명하심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이를 조화롭게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추운 날에 술을 빚기 위해 인위적으로 따뜻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낮은 온도에서도 좋은 술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기다리고 배려해주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선생님의 마지막 요약에서도 술빚기에서 중요한 것은 정성(精誠)이라고 합니다. 정성은 "온갖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이라는 의미입니다.
* 술이란 무엇인가
...술은 바닷물이 얼어도 얼지 않는 것을 보면 그 성질이 몹시 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한의학에서 술은 여름 기운과 몹시 닮았다고 본다. 영양학자들은 증편은 쪄서 만들었기 때문에 더운 여름에도 쉽게 상하지 않고 오래 갈 수 있다고 한다...
大寒凝海 惟酒不氷 明其性熱
허허 동의보감 실천편 / 황인태
* 중간에 영상을 보여주셨는데 TBS 교통방송에서 제작한 "우리시대의 장인 혼"이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송명섭 명인 외 다양한 분야의 장인들을 취재해 만든 프로그램인데 지금은 다시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영상이 필요한 분은 선생님께 문의드려야 할 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