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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읽자

[진중권의 테크노 인문학의 구상] 서사에 대한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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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시대를 읽기 시작한 계기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저자의 "미학 오디세이"를 만화로 읽다가 힘들어서 포기한 경험이 있어서 조금은 두려운 책이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대중적인 강연을 엮은 책이다 보니 좀 더 쉽게 풀어서 설명한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되면 "미학 오디세이"도 다시 도전해봐야겠네요(만화라서 더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뭔가 스토리가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읽으면서는 공감했던 부분이 막상 읽고 나니 어떤 식으로 스며들었는지 모르겠넹. 하여간 인문학에 대한 정의부터...

...내가 보기에는 인문학의 위기는 표면이 아니라 심층에서 나온다. 컴퓨터 작업에도 다양한 층위가 있다. 기계어로 하는 작업, C언어로 하는 작업, 매뉴얼로 하는 작업 등등. 인문학도 마찬가지다. 그 모든 깊이와 표면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 다 인문학이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세대에 따라 가치관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요즘 읽고 있는 "사피엔스"에서는 정치, 자유와 같은 가치는 상상의 산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세대를 관통하는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죠.

...우리에게 '히스토리(histroy)'인 것이 젊은 세대에게는 '스토리(story)'인 겁니다. '역사'에서는 참, 거짓을 따지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역사 왜곡'을 그토록 경계하는 거죠. 반면 '이야기'에서 참, 거짓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과거에는 거짓말하는 자를 나쁜 놈이라 불렀죠. 요즘 나쁜 놈은 거짓말하는 자가 아닙니다. 오늘날 죄인은 거짓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루한 사람입니다. 다른 건 다 용서해도 지루한 것만은 용서 못 한다는 거죠. 설사 거짓말이라도 재미만 있으면 된다는 겁니다. 참이냐 거짓이냐의 구도가 재미있냐 지루하냐의 구도로 변해버린 겁니다...


고전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해보게 됩니다. 몇년전만 해도 고전 외에는 읽을 거리가 없었습니다. TV 역시 콘텐츠가 부족했고 그 자체로 서사적인 가치를 찾기 쉽지 않았죠. 하지만 요즘이라면 저자의 설명대로 고전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고전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을 배울 수 있을 듯 합니다. 어느 것이 더 좋은 가치인가는 누구도 정의하기 힘들겠죠. 그럼에도 고전을 읽는 것은 이전에 읽지 못했던 추억에 대한 아쉬움일지도.

...요즘 학생들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이나 발자끄의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서사에 대한 감각을 익힙니다. 또 다빈치의 회화를 보고 미감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의 디자인을 보고 디자인 감각을 느낍니다. 말라르메의 시를 읽고 시정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음유시인'인 광고의 카피를 보면서 시적 감동을 느낍니다. 그들에게 아무리 인문학 이론을 들려줘봤자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거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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