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난주 옮김/열린책들 |
소세키를 만화로 먼저 읽어서 걱정이었지만 이 책에서는 만화에서 보여주었던 소세키의 모습을 떠올리며 읽을 수 있습니다. "도련님"에서는 사실 작가의 모습이 그렇게 드러나지 않았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거든요. 물론 화자가 고양이이지만 너무 자세한 상황 묘사로 인해 뒷 부분에서는 고양이의 모습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나름 고양이를 통해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모습도 있지만, 사람들의 모습 자체만으로 그 시대를 읽고 배울 수 있습니다.
인간이라고 해서 언제까지 번창할 리는 없을 것이다.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고양이의 시절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을 듯 하다.
해가 바뀌면서 고양이 처지에 다소 유명해진 덕분에 우쭐한 기분이 드니 고마운 일이다.
원래는 단편으로 끝낼 예정이었는데 연재 이후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 연재를 계속했다고 하네요. 그러다보니 전체적으로 뭔가 큰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고 작은 에피소드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오히려 그런 면이 이 책의 매력입니다.
우리 주인처럼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은 일기라도 써서 세상에 드러내 보일 수 없는 자신의 속내를 풀어 놓아야 하겠지만, 우리 고양이족은 먹고 자고 싸고 생활 자체가 일기이니 굳이 그렇게 성가신 일을 해가면서 자신의 진면목을 보존해야 할 것까지는 없다. 일기를 쓸 시간이 있으면 툇마루에서 잠이나 즐길 일이다.
인간이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써 입을 움직이면서, 재미있지도 않은 일에 웃고, 시답잖은 일에 기뻐하는 것밖에 재주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인생의 목적은 말이 아니라 실천에 있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일이 순조롭게 진척되면 인생의 목적은 달성되는 셈이다. 근심 걱정과 논쟁 없이도 일이 순조롭게 풀려 인생의 목적이 성취되면 그것이 바로 극락이다.
어쩌면 이 사회는 미치광이들의 집합소인지도 모르겠다. 미치광이들이 세포처럼 모여들어 서로에게 으르렁거리며 우격다짐을 하고, 물고 뜯고 싸우고, 욕하고, 빼앗으면서 쓰러졌다가는 다시 일어나고, 일어섰다가는 세포들 가운데 다소 세상 이치를 알고 분별력이 있는 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니까 정신 병원이란 곳을 만들어 가두고 못 나오게 하는 것은 아닐까?
관리에 대한 개념은 꽤 오래전부터 논쟁이었나 봅니다. 어느 순간 "권력"이라는 단어로 사용되는걸 보면 지금 시대에는 관리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리는 국민의 심부름꾼이다. 일을 대신 시키기 위해 일정 권한을 위임한 대리인 같은 것이다. 그런데 위임받은 권력을 내세워 사무를 처리하다 보면 그것이 자신의 권력이며 국민 따위는 이에 참견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착각하게 된다.
인간은 다른 속셈이 있으면 있을수록, 그 속셈이 화근이 되어 불행을 낳는 법입니다.
이 책에는 상당히 많은 역자 주석이 달려 있습니다. 뭐 그냥 넘어가도 될 만한 내용이지만 그런 것이 쌓이다보면 궁금해지는지라... 역자도 상당히 고민이 많았던 부분이었나 봅니다.
소세키가 "처음부터 소설을 쓸 요량으로 계획하고 시작하지 않은" 점에 있다. 즉 소설이 기본적으로 갗주고 있어야 할 "양식"이 없다는 것이다. 이 점은 고양이가 주로 주변에서 벌어지는 기이하고 재미나는 일들을 일화별로 기술한 것과도 관련이 크다.
지금은 하늘 어딘가에 있을 "나"가 그동안의 역자의 꼴을 내려바보았더라면 거참 기기묘효한 볼거리도 다 있다면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한학은 물론이요 영문학에도 조예가 없는 데다 당시의 사회상 내지는 시대상에도 무지한 터라, 그 식견이 도저히 고양이에 미치지 못하였으니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