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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읽자

[우리 음식의 언어] 우리 삶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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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식의 언어 - 8점
한성우 지음/어크로스

머리말에도 나와있듯이 댄 주래프스키의 "음식의 언어(The Language of Food: A Linguist Reads the Menu+Dan Jurafsky)"에 자극을 받아 나온 책이라고 합니다. 같은 출판사에서 기획한 것을 보면 이미 그 책이 나온 시점부터 저자와 모종의 협약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조사 방법의 차이는 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오랜 기간 연구해놓은 결과물 중 음식과 관련된 내용을 정리한 형식이고 댄 주래프스키의 책은 빅데이터 기술을 가져와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정리한 것이니깐요. 물론 우리 음식의 언어에 대한 부족한 데이터때문이기도 하지만...


'먹고사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보니 음식과 관련된 말에는 인간의 삶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우리의 말로 표현된 그 속에는 우리네 삶의 향기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의 재료들은 우리 땅의 풍토를 말해주고, 그것들에 우리의 손길을 가하는 갖가지 조리법은 우리 삶의 지혜를 말해준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 그리고 그 음식과 관련된 말은 우리의 정서를 대변해준다. 결국 우리 음식의 언어는 우리 삶의 말인 것이다.


음식의 언어는 삶의 말이라는 표현이 맘에 드네요. 


'국수'는 '麴讐'에서 온 것으로 말 그대로 풀이하자면 '누룩의 원수'란 뜻이다. 국수는 면麵(밀가루)으로 만든다. 면麵(밀)을 갈아 면麵(밀가루)을 만들고 나온 껍질을 밀기울이라 하는데 밀기울로 누룩을 만든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면麵(밀가루)이 귀해 메밀가루로 국수를 만든다. 메일을 갈아 나오는 껍질로는 누룩을 만들지 못한다. 밀을 갈아야 누룩 만들 재료인 밀기울도 나올 것인데 밀 대신 메일을 주로 가니 밀기울이 없어 누룩을 만들 수 없다. 그러니 누룩麴으로서는 메일이 원수讐이니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누룩의 원수, 곧 국수麴讐라 한 것이다.


조선 시대 문신으로 임원경제지를 쓴 서유구의 책 '옹희잡지'에 전해지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국수와 누룩의 관계에 대해 재미있게 표현했네요. 이런 식으로 우리 고유의 말이라고 생각되던 것도 한자에서 음만 따온 것이 있거나 여러 변화를 거치면서 정착된 경우도 있기 때문에 고유어라고 해서 우리의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전해진 말이라고 해서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요.


12장에서는 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막걸리 어원에 대해서 뭔가 깔끔한 정리를 해주실까 싶었는데 역시 근거가 미약하여 살짝 다루고 넘어가는 정도입니다.


빵의 발전에 맥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보리를 발효시키기 위해서는 효모가 필수적인데 맥주 양조장의 효모가 빵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그 결과 맥주와 빵이 발전하게 되니 둘은 아름다운 공생관계를 이룬다. 그런데 쌀은 사정이 다르다. 막걸리나 청주는 쌀로 '고두밥'을 지어 만든다. 때로는 술의 맛을 올리기 위해 쌀알을 반 이상 깍아내어 밥을 짓기도 한다. 밥이 되어야 할 것으로 술을 빚으니 이렇게 빚은 술은 밥과 공생할 수도 없고 밥을 대신할 수도 없다. 우리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된 금주령은 '광약' 혹은 '액체 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표면적으로 금주령은 '술 권하는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내려진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배고픈 현실에 어쩔 수 없이 내려진 결정일 경우가 많다.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는 마당에 '밥'으로 술을 만들어 배부른 이의 입을 즐겁게 하는 것은 할 짓이 아니다.


이렇게 만들어지기 시작한 소주는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으며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도수가 높으니 빨리 취하고 뒤끝이 깨끗하니 애주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그러나 밥 지을 쌀로 술을 빚는 것도 미움을 받는 데다 그렇게 빚은 술을 또 증류한 다음 나머지는 버리니 더 큰 미움을 받는다. 소주가 오랜 기간 동안 사치품 취급을 받은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재료가 귀하고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니 당연히 귀찮게 여겨지는 것이다.


책 중간중간에 방언을 취재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일본 영화 행복한 사전(舟を編む)에서 요즘 아이들의 언어를 수집하는 모습이 떠오르네요. 이래저래 언어라는 것을 연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음식에 대한 언어가 등장하고 있으니 한번쯤 읽어보면 흥미로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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