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쿼리움은 세계 술 문화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2005년 중앙탑공원 옆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20여 년간 주류회사에 근무했던 박용환님과 이종기 현 오미나라 대표님 등이 뜻을 모아 박물관을 조성했다고 합니다. 1980년부터 1995년까지 국내 대표적인 주류 회사였던 두산에서 근무했는데 출장을 다니면서 술과 관련된 유물을 수집했다고 합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암포라도 출장길에 우연히 발견해서 구매한 것이라 합니다. 원래 도자기 판매장으로 사용했던 건물을 매입해 리모델링을 거쳐 박물관으로 만들었다고 하네요.
입구는 거대한 증류기 덕분에 사진을 잘 찍으면 무척 거대한 건조물처럼 보입니다. 특히 리쿼리움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은 그런 모습을 잘 표현해주고 있는데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실물은 좀 작아 보이네요. 워낙 기대치가 커서 그럴지도 ^^
1층은 박물관이고 2층은 아트홀과 야외정원이 있습니다. 1층이라고 하지만 약간 반지하 같은 느낌입니다. 2층은 시음 공간인데 개관 초기에는 맥주를 제공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오미자 와인인 오미로제나 충주 청명주를 시음주로 제공합니다.
이날 해설은 김윤경 교육팀장님이 진행해주셨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거대한 증류기입니다. 현업 시절 시바스 리갈 증류기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개관 당시에는 큰길에서 가로막는 건물이 없었는데 지금은 바로 앞에 관광안내소가 생겨 큰길에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발효된 맥즙(7%)를 1차 증류해서 약 25% 증류액을 생산합니다. 용량은 약 13,000mL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2차 증류를 거쳐 40% 정도의 제품이 생산됩니다.
홈페이지에는 목요일 휴관이라고 나와 있는데 입구에는 월요일과 목요일 휴관이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평일이라면 사전에 확인해보고 방문하시는 것이 좋겠네요. 운영시간은 10시부터 6시까지입니다.
입구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술의 신 바카스입니다. 이탈리아 화가인 카라바조(Caravaggio)의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물론 원화는 아닙니다만). 로마 신화에서는 바카스(Bacchus), 그리스신화 디오니소스(Dionysus)라고 했다고 합니다. 보통 신들은 월계관인데 술의 신은 포도관을 쓰고 있습니다. 카라바조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참고:
https://en.wikipedia.org/wiki/Bacchus_(Caravaggio)
http://www.imdb.com/title/tt0090798/
그 옆으로는 이집트 벽화를 재현한 모습이 보입니다. 약 3,500년 전 벽화로 포도를 수확하고 밟아 술을 만드는 모습과 토기(암포라)에 담아 왕에게 바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고대의 술은 누구나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제사를 지내거나 신에게 바치고 나서 왕이나 귀족층에서 소비했었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쉽게 술을 만날 수 있는 시절이 그렇게 오래된 건 아니라는 거죠.
일반적으로 와인을 설명할 때 등장하는 나크트(Nakht) 벽화와는 좀 다른 모습입니다. 뭐 어찌 되었든 그 당시에 저런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거죠.
참고:
https://en.wikipedia.org/wiki/TT52
http://www.metmuseum.org/collection/the-collection-online/search/548578
암포라(Amphora)는 지중해 바닷속에서 건져낸 유물로 바닥에 꼭지가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와인에서 만들어지는 주석산이나 효모찌거기가 침전되도록 설계된 것이라고 합니다. 암포라는 나무 통에 저장하기 시작한 기원전 7세기까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 유물과 함께 와인과 관련된 그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원본은 아니지만,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복제된 프린팅이 아닌 유화 형식의 모작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노아의 방주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묘사한 그림 역시 포도원에서 포도주를 만드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원본 그림과 비교해보면 스타일이 좀 차이가 있긴 하지만 박물관에서 보면 그럴 듯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Bedford_Hours
영화 '향수'에서도 등장했다는 브랜디 증류기도 볼 수 있습니다. 중간에 휘어진 관을 스완넥(swan neck)이라고 하는데 그냥 직선으로 통과하는 것보다 수분이 적어지면서 질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와인은 약 80도에서 끓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포도에 대한 설명도 자세하게 포스터 형식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와인을 만드는 포도는 일반적으로 접하는 식용 포도보다 훨씬 작다고 합니다. 대신 당도는 높은데 보통 측정하는 수치로 24 정도가 나온다고 합니다. 식용 포도의 경우 17 정도인데 집에서 포도주를 담근다면 포도 자체의 당만으로는 부족하므로 당을 추가해야 합니다.
와인을 만드는 조건을 떼루아(terroir)라고 합니다. 국내에서는 드라마 제목으로도 쓰여서 많이 알려졌다고 하네요. 한국의 위도는 지중해와 비슷하지만 강수량 차이 때문에 포도를 재배하기 적합한 환경은 아니라고 합니다. 여름에 강수량이 많아지면 그만큼 당도가 떨어지기 때문이죠. 지중해 연안 포도는 키가 작고 대신 뿌리를 3m 이상 깊게 내립니다.
전시관은 와인역사, 문화관 > 오크통관 > 맥주관 > 증류주관 > 전통주관 > 동양주관 순으로 연결됩니다. 그중에서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은 오크통관입니다. 실제 오크통 내에서 숙성되면서 와인이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0, 12, 17, 21 순으로 향을 맡아볼 수 있는데 어떤 것이 좋다는 평가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고 하네요. 모든 술이 오래된 것이 좋은 건 아니고 술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며 30년 이상 지나면 큰 차이는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30년 이상 되었다고 하면 상상할 수 없는 가격에 거래되기도 하죠.
오크통 안에 있는 와인이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드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오크통 특성 상 자연적으로 연5% 정도 증발한다고 합니다. 와인 숙성 시에는 오크통을 가득 채워놓아야 하기 때문에 줄어드는 양만큼 새로 채운다고 합니다. 오크통은 참나무로 만들고 보통 가격대가 150~300만 원 정도입니다. 참나무 벌목 후 잘린 안쪽만 사용하므로 생산량이 많지 않고 2~3년간 뒤틀림을 막기 위해 건조한 후 접착제나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맞춘 후 조여서 사용합니다. 향과 살균 작용을 위해 내부를 불로 그을리는데 그 방법 자체가 기술이라고 하네요.
맥주 전시관에서는 수많은 맥주잔(Jug)을 만날 수 있습니다. 뚜껑이 있는 것이 특징인데 유럽에서 석회 성분이 많은 물 때문에 직접 물을 먹지 않고 맥주를 만들어 마셨다고 합니다. 맥주가 물 같은 음료처럼 소비된 것이죠. 그래서 천천히 시간을 두고 마시기 때문에 뚜껑이 필요했다고 하네요. 국내에서는 무조건 알코올이 들어가면 술로 분류되지만, 해외는 알코올 도수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되고 판매된다고 합니다.
전통주관에는 향음주례와 같은 고문헌 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전통주를 만들고 주막에서 판매하는 모습을 꾸며놓았습니다. 와인 자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통주 자료는 적은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래도 전통주 관련 자료는 국내 다른 전시관에서도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2층 아트홀로 이동하면 시음을 제공합니다. 그 외 관련 도서도 판매하는데 리쿼리움 자체에서 발간한 '와인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구하기 힘든 자료입니다. 전시관 내 전시된 자료에 대한 일종의 도록 같은 것인데 와인과 관련된 내용만 담겨 있습니다.
전시관 관람료는 대인 5,000원, 소인 4,000원이고 시음을 하는 경우 비용이 추가됩니다. 그 외에도 발효과학체험 프로그램도 제공하는데 홈페이지에서 내용 확인 후 원하는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사전 지식이 어느 정도 있다면 관람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는 암포라라는 것을 책에서 읽었는데 어떤 것인지 궁금해하다가 직접 보는 뭐 그런 기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