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셰프의 전성시대라고 하지만 그들 못지않게 뜨거운 아이콘 중 하나가 맛 칼럼니스트입니다. 음식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전문적으로 음식을 다루는 칼럼니스트가 미디어에 자주 보이는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특히 '수요미식회'라는 프로그램이나 백종원 대표, 천일염 논쟁으로 자주 언론에 등장하는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가 이번 주 창의세미나 S 강사였습니다.
다른 곳에서 진행되는 공개 강의는 주로 맛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번 창의세미나 주제는 '글로 먹고사는 법'이라는 독특한 내용이라 참석했습니다.
* 전문적인 글쓰기 강의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 '끼니'에서 푸드 라이팅 과정이 10회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벌써 8기 과정이 진행되고 있네요.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링크 참고.
창의세미나 S의 특징 중 하나는 인디 뮤지션 공연도 볼 수 있다는 거죠. 이번 주에는 싱어송라이터 박준하 님이 찾아왔습니다. 90년대를 추억하는 분이라면 '너를 처음 만난 그때'의 박준하~를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박준하 님은 '닮은 사람'이라는 부드러운 감성의 노래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하네요.
기타리스트. 프렌치팝 감성의 싱어송라이터. 자칭 방구석 뮤지션
http://music.naver.com/musicianLeague/musician/index.nhn?musicianId=35
원래는 밴드와 함께 공연해야 하는데 밴드가 함께 하기에는 공간이 애매해서 조그마한 기기와 함께 공연을 ~
공연이 끝나고 바로 황교익 칼럼니스트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제목은 '황교익의 글로 먹고사는 법'입니다. 원래 주제는 '맛으로 세상 읽기, 맛있는 칼럼 쓰기'인데 아마 진행팀에서 제목을 좀 더 맛있게 꾸민 것이 아닌가 싶네요.
학창 시절에는 공부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마산에서 원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공부와 멀어지면서 그나마 책을 읽으면서 문학을 해볼까라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습니다. 대입에 실패하고 재수를 하는 중에 70년대 등장한 뉴저널리즘을 다루는 책을 읽게 되었다고 합니다. 객관적인 팩트만 다루던 언론이 기자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주제를 정하고 취재하고 보도하는 새로운 방식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자신의 길을 정하고 중앙대 신방과를 지원했으나 한국의 현실은 뉴저널리즘 따위가 파고들 틈이 없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대학 생활도 그냥그냥... 졸업할 즈음 한겨레 신문이 창간해서 지원하려 했으나 지원자가 너무 많아 포기하고 농민신문사에 입사했다고 합니다.
농민신문사는 다른 언론사에 비해 사업이 안정적이었고 취재 환경도 좋아서 뉴저널리즘을 펼쳐볼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고 합니다.
나는 필자다
푸드라이팅은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한 형식으로 발전한 분야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푸드라이팅은 이렇다~라는 다양한 정의가 있는데 황교익은 '음식을 통해 사람을 보고 사회를 이야기하는 것'을 푸드라이팅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글을 쓸 때 객관적인 제삼자 시점에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농민신문사에서 일할 때부터 '기자는'이 아니라 '나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자기주장을 이야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물론 데스크에서 수정하는 것을 다 반대할 수는 없었고 간혹 데스크에서 놓친 경우에 '나는'이라는 표현이 기사로 나갔다고 합니다. 지금도 칼럼을 쓸 때 '나는'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다면 같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러다 보니 쓴 글에 관해 주장이 강하고 날이 서 있다는 비판이 많은데 당연히 글은 그래야 한다고 합니다.
아름다움은 논리적 필연에서 온다
맛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개인의 기호가 있고 주관적인데 이를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비평하는 것은 저자의 의도가 책에서 드러나고 이를 분석해 비평할 수 있지만, 음식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황교익 칼럼니스트는 이런 점에서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름다움은 논리적 필연에서 온다'라는 문장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글을 쓸 때 각 요소가 왜 들어가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고민한다는 겁니다. 구두점이나 문장 부호 등을 쓸 때도 이것을 꼭 써야만 할까. 어디에 써야 하는 걸까~ 를 항상 고민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힘든 작업이라고 하네요.
이런 기준에서 음식을 평가하는 기준도 명확하다고 합니다. 어떤 음식이 올라왔을 때 이건 왜 이런 모양으로 잘랐을까, 음식 밑에 왜 자갈을 깔았을까? 장 위에 새싹을 꼭 올려놓았어야 할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논리적으로 접근한다고 합니다. 황교익이 생각하는 요리는 '식재료의 단점을 극소화하고 장점은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단맛에 대한 비판 역시 식재료의 장점을 끌어내지 못하고 단맛으로 덮어버리는 행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죠.
악식가의 미식 일기 / 한국일보
http://interview.hankookilbo.com/v/c607ba4cca144794a8a7caf36db10589/#1005
...개인적 기호가 맛의 판별 기준은 아니다. 내 입엔 맛없어도 맛있는 음식일 수 있는 거다. 객관화가 필요하다. 내가 정의하는 요리란 식재료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극소화하는 행위다. 음식 품평 때 우선 어떤 식재료를 선택했는지 본단 얘기다. 다음으로 식재료의 장단점을 파악해 거기 맞춰 요리했는지를 살핀다. 왜 그렇게 요리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논리적이면 높은 점수를 준다. 내 입에 맛있는지는 평가의 20~30%다. 이게 전문 평론가가 가져야 할 자세고 대중은 전문가 식견을 인정해야 한다...
문법 / 사전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지만 실천을 못 하는 겁니다. 그냥 고등학교 문법책을 구해서 한 번 정도 공부해보라는 추천입니다. 좀 더 깊게 알고 싶다면 참고서도 같이 본다면 좋고요. 사전은 하나를 정해서 쭉 읽어보는 겁니다. 영어사전처럼 모르는 단어가 많지 않으니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고 의미를 잘못 알고 있었거나 몰랐던 단어만 건진다면 공부가 된다고 합니다.
관찰 / 사색 / 직관
세 가지는 황교익이 생각하는 글쓰기의 자세라고 합니다.
관찰
음식을 먹는 것보다 현장에 있는 시간이 많다고 합니다. 식재료가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는지 관찰한다면 어떤 음식이 맛있는지 알 수 있다는 거죠. 맛있는 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다면 좀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농부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맛있는 쌀은 미리 수확해 가족을 위해 사용한다고 합니다.
전문가의 힘을 빌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기 힘들다면 관련 연구소나 기관에 문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하네요. 비교적 빠르게 정확한 자료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전문가의 힘을 빌리기 어려울 때는 문헌 읽기도 좋은 방법입니다. 요즘은 조선 시대의 문헌을 비롯해 많은 문헌이 번역되어 DB로 만들어져 검색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문헌을 찾아가며 식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다양한 줄기를 치면서 커다란 주제로 만들어지는 것이죠.
관찰을 위해서는 끈기가 필요합니다. 재래시장에 자주 가는데 한 번만 보면 뭔가 다른 것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3~4번 둘러보는데 그러고 나면 흥미로운 아이템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다 똑같은 것을 팔고 있는 것 같지만 뭔가 다른 것이 보이는데 그럴 때 소재가 발견된다는 것이죠.
사물을 볼 때도 단편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넓은 시각으로 보는 겁니다. 낫도 자세히 보면 지역마다 용도마다 다르게 만들어지고 사용됩니다. 하나만 보고 낫은 이런 것이구나. 라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관찰하면서 정리를 하는 것이죠.
또 하나 중요한 것이 같이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으면 좋다고 하네요.
사색
철학자 김영민 교수의 책 '진리·일리·무리'를 인상적으로 읽었다고 합니다. 황교익의 생각 역시 같다고 하네요. 학문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세대가 바뀌면서 바뀔 수 있죠. 과학 역시 그렇습니다. 뉴턴이 주장한 이론도 지금은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일리였다는 것이죠.
'일리'라는 표현이 그냥 들으면 어색한데 예를 들면 아~ 그 말이구나 싶을 겁니다.
예를 들어 '듣고 보니 네 말에도 일리가 있구나'같은 표현이죠. '일리'는 '어떤 면에서 그런대로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이치'라고 합니다. 누군가 '진리'를 이야기할 수는 없고 하나하나의 '일리'가 모여 더 나은 생각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타당한 이치가 없는 '무리'는 안된다는 것이죠.
진리 일리 무리 인식에서 성숙으로 / 김영민 / 철학과현실사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50379
직관
직관은 어느 순간 저절로 열린다고 합니다. 앞에서 설명한 문법도 어느 정도 공부하면 체득해 저절로 나올 수 있죠. 물론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사진을 찍을 때도 어느 순간 빛이 보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마지막으로 하루키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양을 쫓는 모험'이라는 책 속에 푸드라이팅을 직업으로 가진 인물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의 말 중에 '문화적 눈 치우기'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 표현이 맘에 들었다고 하더군요. 지금 하는 일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아마 '댄스 댄스 댄스'를 잘못 이야기한 듯합니다. 주인공이 하는 일이 잡지사를 대신 해 음식점 소개나 평가를 작성하는 일이거든요).
...어느 여성지를 위해 하코다테의 맛있는 음식점을 소개한다는 기획이었다. 나와 카메라맨 둘이서 몇몇 가게를 돌며, 내가 기사를 쓰고, 카메라맨이 그 사진을 찍는다. 모두 5페이지. 여성지란 그런 기사를 요구하고 있으며, 누군가 그런 기사를 써야 한다. 쓰레기 치우기나 눈 치우기와 다름없는 일이다. 누군가 해야 하는 것이다. 좋고 싫고와는 관계 없이. 나는 3년 반 동안, 이러한 식의 문화적 우수리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문화적 눈 치우기란 말이다...
댄스 댄스 댄스 /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사상
...하지만 아직까지는 음식을 가볍게 보는 시선도 많다. 그래서 책 [황교익의 맛있는 여행] 말머리에서 자신의 일을 “문화적인 눈 치우기”라고 말한 건 자조적으로도 보인다.
황교익: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실제로 그런 대목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은 눈 치우기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는데, 동의한다. 음식에 대한 글은 진입이 아주 쉽다. 우리 모두 하루에 삼시 세끼는 먹으니까. 그런데 5~6년 쓰다가 다들 나가떨어진다. 글의 질을 유지하면서 계속 새로운 아이템을 내는 게 쉽지 않다. 유자차 하나도 지금 이 유자차의 재료적 특성부터 가공까지 들어가면 엄청 어렵다. 그런데 공부를 한 만큼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도 별로 없다. 영화평론가, 방송전문가와 더불어 사람들이 우습게 보는 영역 중에 하나다. (웃음) 누구든 할 수 있지만, 잘하긴 참 어렵다...
[수요미식회] 황교익 “우리가 한 끼라도 맛있게 먹으려면 정치를 건드려야 한다”
1시간 정도의 강연이 휙 지나가 버렸습니다. 질답 시간에도 마치 미리 준비한 것처럼 논리적인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질문 중 요즘 추천할 만한 음식으로 '생호두'을 추천해주셨습니다.
...과육을 갓 깨뜨린 호두의 살이다. 건조하기 전이라 속껍질이 연하다. 광덕 사람들은 이 상태를 ‘생호두’라고 부른다. 장기 보관을 위해 말린 ‘건조호두’와는 맛에서 큰 차이가 난다. 은근한 고소함이 있고 파파야 향기가 나는 듯도 하다. 건조하지 않고 냉장보관을 하게 되면 이 생호두 맛을 장기간 맛볼 수 있다. 상품화되어 있는 생호두는 없다...
팔도식후경 / 천안 호두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43&contents_id=1176&leafId=43
글쓰기에 대한 추가 질문에 대해 필사를 통해 그 사람의 '리듬'을 배우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추천하는 책으로 김훈 작가의 '풍경과 상처'를 언급했습니다.
풍경과 상처 / 김훈 / 문학동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097934
짧은 시간 동안 인상적인 강의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살짝 사인도 ^^
얼마 전 네이버 책 코너에 '황교익이 추천하는 음식, 요리에 관한 책 3권이 소개되었는데 그 중 한 권이 '감각, 착각, 환각'이라는 책입니다. 생각나서 그 책도 주문했습니다.
감각·착각·환각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보고, 맛보고, 꿈꾸는가? / 최낙언 / 예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