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적어놓았던 내용인데 아무래도 나중에 찾기 어려울 듯 해서 이곳에 옮겨 적습니다.
막걸리에 대한 이야기 중에 아래와 같은 글이 있습니다.
출처가 없는 경우가 많지만 2000년에서 2001년 사이에 이규태 논설고문의 글을 인용한 내용이 많습니다. 인용 과정에서 '자제'를 '제자'로 옮겨 쓰면서 내용이 좀 달라진 경우는 있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막걸리는 한국사람의 체질에 가장 알맞은 술이다. 조선조 중엽 이씨성의 한 판서가 집에 좋은 소주와 가양주가 많은데 굳이 막걸리만 찾아 마시는지라 자제들이 그 이유를 물었다. 이에 판서는 소 쓸개 세 개를 마련시키더니 담즙을 쏟아버리고 그 쓸개 주머니에 소주·약주·막걸리를 따로 따로 담아 매달아 두었다. 며칠 후 열어 보니 소주 쓸개는 구멍이 송송 나고 약주 쓸개도 많이 상했는데 막걸리 쓸개만이 오히려 두터워져 있었다 한다...
출처가 궁금해서 잠시 찾아보았는데 비슷한 글을 조선 말기의 문신 이유원(李裕元)이 편찬한 '임하일기(林下筆記)'에서 찾았습니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스토리가 좀 다르네요.
이규태 논설고문이 참고했던 자료가 어떤 것인지는 여전히 궁금하네요.
...금석(金石) 이공 존수(李公存秀)는 늘 술로 산다고 온 나라에 소문이 났다. 과거에 대부인(大夫人)이 그가 술로 건강을 상할 것을 염려하여 소 창자에 여러 가지 술을 담아 시험해 보니 탁주에는 살이 찌고, 청주에는 손상되고, 소주에는 헐어 터졌다. 이것으로 인해 주의를 주면서 탁주를 먹게 하였다. 공이 이에 절제하지 않고 늘 만취하였으며, 심지어는 종들과 대작하면서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술에 취하면 반드시 팔짱을 꼈는데, 걸어다닐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늘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팔짱 낀 상공[袖手相公]’이라 불렀다. 시골의 선비가 공의 집을 방문하여 일찍이 ‘이 팔장(李八藏) 댁’이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팔장’은 ‘공수(拱袖)’의 방언이니 직함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