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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상 - 존 스타인벡 지음, 전형기 옮김/범우사 |
이 책의 스타일은 독특합니다. 마치 다큐와 현실이 교차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인물들의 이야기와 담담한 서술이 한 장씩 주고 받으면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김훈 작가의 소설이 주는 느낌과 비슷하기도 하고 마치 연극 대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고보니 이 책은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네요.
...은행이라는 괴물은 항상 끊임없이 이익을 먹어야 한다. 잠시도 그냥 기다릴 수는 없다. 그러면 죽게 되니까... 그렇다. 세금은 계속 밀어닥칠 것이다. 괴물은 잠시라도 성장을 중지하면 죽는다. 그래서 그것은 한 가지 크기로 남아있는 법이 없다...
제목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있는데, 포도라는 이미지가 소설의 첫 부분에서는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는데, 뒤로 가면서 분노의 형태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인제 우리도 곧 떠나겠구나. 거기만 가면 포도 덩굴에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서 길가에 매달려 있겠지.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할지 알겠니? 목욕통 속에 포도를 하나 가득 따 넣고 내가 그 통 속에 들어가 앉는단 말씀이야. 앉아서 깔고 뭉개는 거야. 그래서 포도 주스가 내 바지 아래로 죽죽 흐르도록 그냥 놓아두는 거야...
...국도 위에는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이동하면서 일을 찾아 헤맸다. 분노가 영글어 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에는 낭패의 빛이 떠오르고 굶주린 사람들의 눈에는 분노가 서린다. 사람들의 눈에는 분노의 포도가,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분노가 충만하고 그 포도 수확기를 위하여 알알이 더욱 무겁게 영글어 가는 것이다...
1930년대에 당시의 현실을 너무 실감나게 묘사해 큰 이슈가 되었다고.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는데, 그 만큼 많이 팔리기도 했다는 이야기.
...'우리는 우리의 땅을 뺏겼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두 남자는 한 남자처럼 고독하지도 않으며 당황하지도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그들이 '우리'라고 불렀을 때 거기에서는 더욱 무서운 것이 싹트는 것이다...
...농장주들은 이미 자기들의 농장에서 일을 하지 않게까지 되어버렸다. 그들은 서류상으로만 일을 했다. 그들은 땅을 잊었고 땅 냄새와 감촉을 망각했다. 단지 자기들이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기억했고, 그 땅으로부터 언제 소득을 올렸으며 언제 손해를 보았는가를 기억할 뿐이었다...
...학살과 테러를 해도 그들을 저지할 수는 없다. 자기 자신의 창자뿐만 아니라 새끼들의 뱃속까지 쪼르륵 소리가 나도록 굶기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겁을 줄 수는 없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런 사람들은 위협에 대해서만큼은 이미 초월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 은행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운명을 갉아먹고 있었으나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들에는 오곡백과가 풍성했고 곡창마다 가득 찼으나 굶주린 사람들은 길바닥에 깔렸고 가난한 집 아이들은 구루병에 걸렸다. 펠라그라 피부병이 만연해서 아이들의 옆구리엔 부스럼이 다닥다닥 일었다. 대재벌들은 기아와 분노가 결국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해가 더 길었으면 좋겠다. 아직 몇 푼이 안 된다. 어떻게 되든지 여하튼 이런 일이라도 오래 할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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