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중에서 판매되는 막걸리는 대부분 쌀로 만드는 막걸리입니다. 하지만 쌀로 만든 막걸리를 1963년부터 1977년까지 14년 동안 만들 수 없었습니다. 양곡 소비 절약이라는 명목으로 금지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간동안에는 밀가루와 잡곡으로 만든 막걸리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시절을 살아온 분들에게는 밀막걸리가 유일한 막걸리였던 것이죠. 1977년부터 1979년까지는 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밀막걸리를 금지했다고 합니다.
국가기록원 - 쌀과 막걸리
http://theme.archives.go.kr/next/tabooAutonomy/kindOfTaboo07.do
서울 인근에서는 밀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 중 하나가 지평양조장이었습니다. 얼마전까지는 양조장 인근 지역에서만 판매했는데 최근에는 750mL 패키지로 밀막걸리를 출시하고 수도권 진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밀막걸리의 독특한 식감때문에 일부러 밀막걸리를 찾는 분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이원양조장에서도 "향수"라는 이름으로 작년에 밀막걸리를 출시했지만, 좋은 반응은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밀을 사용하는 것을 강조했지만, 다른 막걸리와 차별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원양조장의 "향수" 막걸리가 가성비 최고의 막걸리라며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자주 올라오더군요.
작년에 만났던 "향수"는 유리병이 아니었는데, 뭔가 바뀐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원 양조장으로 직접 방문해보았습니다. 오랜만에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던 날이었습니다. 이원양조장은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에 자리잡은 양조장입니다. 지방의 대부분 양조장이 그러하듯, 동네 이름이 양조장 이름입니다.
이원양조장은 1930년대 시작한 양조장이며 금강변에 자리잡았다가 잦은 홍수로 1949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라고 해도 70여년의 시간을 간직한 공간입니다. 그래서 양조장 시설 일부는 이전 상태를 가능한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수리해서 사용하고 있고, 일부는 전시 공간으로, 일부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놓았습니다. 그래서 이원양조장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지평양조장 같은 경우에는 춘천과 인근에 대규모 공장을 만들고 기존 양조장은 전시 공간으로 만드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양조 공간이라는 특성은 시간의 흐름을 간직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인 공간이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원양조장에서는 커다란 항아리(380~430리터)를 사용합니다. 양조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을 때는 사람의 힘으로 항아리를 다룰 수 있지만, 요즘에는 대부분의 양조장이 가족 구성원만으로 운영하거나 적은 수의 인원만 채용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커다란 항아리를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기는 힘듭니다. 이원양조장에서는 직접 항아리에 맞는 설비를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다고 하네요. 직접 만든 것이기 때문에 설비의 이름을 뭐라 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작은 아이디어로 항아리를 다루는 용도로 최적화된 것 같습니다.
아무 설명 없이 이 사진만 보면 로봇 생산 업체라고 오해할지도 모르겠네요. 저런 설비 덕분에 술독을 소독하는 것도 무척 수월하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제 향수 막걸리를 만나봅니다. 우리밀 100%. 금강밀을 사용합니다. 금강밀은 1986년부터 개발을 시작해서 1997년 장려품종으로 선정된 품종이라고 합니다. 시중에서는 우리밀 막걸리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일단 우리밀 자급률 자체가 0.7% 정도로 낮은 편이며, 가격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원 양조장의 향수는 우리밀을 사용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밀 함량이 23.18% 정도입니다. 일반적인 쌀 막걸리의 경우 쌀 함량이 10% 정도입니다. 프리미엄 막걸리로 분류되는 다랭이팜 영농조합의 "다랭이마을에 꽃이 핀다"의 경우 쌀 함량이 25% 인 것과 비교하면 이원양조장의 "향수"는 프리미엄급 막걸리와 비교해서 결코 밀리지 않는 스펙을 지니고 있습니다.
농사로 - 품종 정보 금강밀
http://www.nongsaro.go.kr/portal/ps/psb/psbk/kidofcomdtyDtl.ps?menuId=PS00067&kidofcomdtyNo=29102
누룩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밀 누룩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막걸리 가격이 걱정입니다. 하지만, "향수"의 가격을 들으면 깜짝 놀랍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성비, 가성비 이야기하나 봅니다. 대중적인 막걸리와 프리미엄 막걸리의 중간 정도의 가격입니다.
이원 양조장은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된 곳 중에서 체험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곳입니다. 7가지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도리뱅뱅 Tour"입니다. 체험 내용을 보면 "...90년 전통의 한국술 장인과 함께 양조장 견학을 실시하고 도리뱅뱅 쿠킹클래스를 함께 진행하는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체험..."이라고 나와있네요. 도리뱅뱅과 막걸리는 정말 만족스러운 조합입니다. TV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이영자님의 금강휴게소 도리뱅뱅 때문에 금강휴게소가 성지가 되었지만, 요즘에는 금강 주변의 식당에서 쉽게 만날 수 있더군요. 집에서 하기에는 부담스럽지만, 재료만 준비해놓았다면 쿠킹 클래스로 즐기기에도 어렵지는 않겠네요.
이원양조장 - 체험프로그램
http://www.iwonwine.com/new/activity_1.php
강현준 대표님은 페이스북에서 금강밀 재배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술빚기에 일부를 사용하고 체험 프로그램 중 "마스터 투어" 프로그램 코스 중 하나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원양조장에서 내년에 준비중인 제품 중 하나가 증류주입니다. 시중에 출시된 제품은 대부분 쌀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이원양조장에서는 밀막걸리를 증류한 소주를 내놓을 계획입니다. 밀 증류주는 홍천 두루 양조장에서 빚는 "메밀로" 제품이 있지만, 메밀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고 메밀과 쌀을 같이 사용하고 있어서, 우리밀만 사용한 증류주는 어디서도 만나보기 힘든 제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직은 개발이 완료된 것이 아니라서, 맛이 완성되지 않았지만, 내년 이맘때쯤에는 정말 겨울밤에 어울리는 증류주를 만나볼 수 있을 겁니다.
* B컷 모음
양조장에서는 현금이 없어도 카카오페이로 결제할 수 있습니다 ^^
찾아가는 양조장 스탬프 투어가 시작되었습니다. 찾아가는 양조장에 방문해서 스탬프를 일정 개수 이상 찍으면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스탬프 지도는 각 양조장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찾아가는 양조장 스탬프를 모아주세요!
http://thesool.com/20181201_03/
이원양조장의 또 하나의 특징은 우물과 지하수입니다. 물맛이 막걸리에 미치는 영향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전혀 관련이 없다고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지하수가 오염되어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양조장들이 많아지는 요즘에 좋은 물로 빚은 술을 만나는 것도 큰 복입니다.
이원양조장에 들리면 도리뱅뱅과 어죽을 먹으러 가지만, 오늘은 체험프로그램으로 도리뱅뱅을 만났기 때문에 묵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따끈한 묵밥이 쌀쌀한 가을 날씨에 잘 어울립니다.
양조장에서 가까운 정지용 생가에도 감이 열렸네요. 가을은 가을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