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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인가, 제자인가 - 10점
카일 아이들먼 지음, 정성묵 옮김/두란노

제목부터 무척 인상적인 책입니다. 저런 관점으로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본문을 읽으며 뜨끔한 부분이 너무 많더군요.


미국 교회 이야기를 하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델이 미국의 대형 교회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일부러 사례를 찾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관계 중에 스타와 팬의 관계는 없다. 그런데도 미국의 많은 교회가 성전에서 스타디움으로 변질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매주 팬들이 스타디움으로 우르르 몰려와 예수님을 응원하지만 그분을 진정으로 따르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문젯거리는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리스도를 따를 생각은 추호도 없는 팬들이다. 온갖 혜택을 바라며 예수님의 주위로 몰려드는 팬들은 있다. 하지만 자신을 희생할 만큼 그분과 가깝지는 않다.


번역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져서 원문을 찾아보았습니다. 마지막 문장의 him이 조던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번역이 맞는 것이었네요.

중학교 시절에는 마이클 조던의 포스터 옆에 예수님 사진을 걸어 놓기도 했다. 당시 이 사진은 예수님과 나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증거물이었다. 나는 조던의 팬인 동시에 예수님의 팬이었다. 나는 예수님에 관한 기록과 통계를 완벽히 외우고 있었지만 정작 그분을 알지는 못했다.

I was a fan of Jesus, like I was a fan of Mike. I had memorized his records and knew his stats, but I did not know him.


본문 각 장마다 사례가 등장합니다. 자녀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교회라는 테두리에 안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부분을 잘 찍어주고 있습니다.

딸애를 교회 안에서만 키웠지 그리스도 안에서 키우지 않은 탓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딸애를 겉만 멀쩡하게 키웠지 내면에 관해서는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모든 규칙을 지키라고만 했을 뿐 관계에 관한 이야기는 해 주지 못했습니다. 잘못하면 무조건 혼을 내어 죄책감을 심어 주었을 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깨닫게 해 주지 못했습니다'라는 말이었다.


나태로 번역된 단어는 '아시디아(acedia)'다. 내가 볼 때 '아시디아'는 나태로 번역하는 게 그리 적절치 않아 보인다. 초대 교회 지도자들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영적 무관심'으로 번역하는게 옳지 않나 싶다. 영적인 문제에 대해 '아무래도 상관없어'라고 말한다면 보통 심각한 죄가 아닌 셈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아들을 보내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셨다. 덕분에 우리는 죄를 용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무표정한 얼굴로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마는 것, 이것이 아시디아이며 팬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죽음의 질병이다.


Photo by Samuel Zell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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