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 - 한동일 지음/흐름출판 |
서점에서 쓰윽 보고 진짜 라틴어를 배우는 건가 싶어서 그냥 넘어갔던 책입니다. 라틴어를 다루긴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강의 노트 보다는 저자가 경험했던 생각을 라틴어라는 도구를 통해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라틴어는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언어에 대한, 유럽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우며 배울만한 이야기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실제 저자의 강의가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언어는 사고의 틀입니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수평성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가 로마인들의 사고와 태도의 근간이 되었을 겁니다.
강을 건너고 나면 배는 강에 두고 가야 한다.
이미 강을 건너 쓸모없어진 배를 아깝다고 지고 간다면 얼마나 거추장스럽겠습니까? 본래 장점이었던 것도 단점이 되어 짐이 되었다면 과감히 버려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어려움이 닥치고 나서야 한때의 장점이 거꾸로 저를 옭아매는 단점이 되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스스로의 발전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남보다' 잘하는 것이 아닌 '전보다' 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유럽 대학의 평가방식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잘 계산다면 잘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
당신이 잘 있으면, 나는 잘 있습니다.
'그대가 잘 있으면 나는 잘 있습니다'라는 로마인의 편지 인사말을 통해 생각해봅니다. 타인의 안부가 먼저 중요한, 그래서 '그대가 평안해야 나도 안녕하다'는 그들의 인사가 문득 마음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가끔 저는 라틴어를 연구하다 보면 우리 언어도 이런 수평적 성격이 발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어의 수평적 성격이 발달하면 회의나 모임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사고나 사회구조도 좀 더 유연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문제는 욕망하는가 아닌가에 있지 않고, 무엇을 욕망하는가에 있지 않은가 하고요.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을 위해 달릴 때 존재의 만족감을 느끼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나를 충만하게 하는 욕망이 필요한 때입니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만이 아니라 그 시대를 상징하고 그 시대의 가치관과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매개가 됩니다. 언어를 공부하다보면 단어 하나도 시대와 사상에 따라 그 의미가 변해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도 참 수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꿈꿨구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 사실은 결국 그만큼 힘든 삶의 조건이 인간의 모든 세대마다 있었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희망이 없는 현실 가운데에서 희망을 말하고 희망을 꿈꾸는 존재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마다 꽃피는 시기가 다르고, 저마다의 걸음걸이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당장 노력에 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내가 언제 꽃피울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저 그때가 찾아올 때까지, 돌에 정으로 글씨를 새기듯 매일의 일을 조금씩 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