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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문서

여전히, 사람을 향합니다

열이아빠 2017.09.14 13:45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성경 속에 나오는 혼인 잔치 이야기에서 하객 접대를 위해 준비한 포도주가 떨어지자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마시는 와인은 포도를 수확해 파쇄하고 즙을 내어 발효 과정을 거쳐 알코올을 생성하고 여과 과정과 일정 숙성기간을 걸쳐 만들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고 원재료가 되는 포도가 자라는 환경과 제조 과정의 노하우에 따라 마트에서 저렴하게 판매되는 와인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천만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는 와인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한정판으로 거래되는 와인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러기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것은 기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수천 년 동안 기적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얼마 전 현실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아바(Ava) 와이너리라는 곳에서 1973년산 와인을 복제하면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술은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와이너리라고 하지만 아바 와이너리는 마치 화학 실험실과 같은 공간입니다. 와인이라는 것은 결과적으로 수백 가지의 화합물이 조합된 상태인데 이를 그대로 복제해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맛이나 색 뿐 아니라 향까지 그대로 복제할 수 있다는 겁니다. 카트리지 형태로 제공되는 식재료를 3D 프린터를 통해 식품으로 만들어내는 기술은 이미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SF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작은 알약만 먹고 살아가는 일이 멀지 않아 보입니다.


마법의 키워드. 4차 산업혁명

금년 1월 세계경제포럼(다보스 포럼)의 주제는 ‘4차 산업혁명의 이해(Mastering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이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제조업과 ICT(정보통신기술)를 융합하는 차세대 산업혁명이라고 합니다. 포럼에서 다루어진 내용이 새로운 것은 아니었고 사물인터넷이나 3D 프린터, 빅데이터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것이어서 국내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가 주목 받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3월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알파고”가 예상을 뒤엎고 결코 이기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이세돌 9단과의 승부에서 이기면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불안감 속에 뭔가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월 클라우스 슈밥 다보스포럼 창립자가 방한하면서 다시 한 번 “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고 나니 이제는 어디를 가나 ‘4차 산업혁명’ 이야기입니다. ‘혁명’이라는 단어를 역사가 아닌 누군가 정의한다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반론도 있지만, 요즘의 흐름은 ‘혁명’이라는 용어가 적절할 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Photo by Alex Knight on Unsplash


주변 사용자 경험?

‘4차 산업혁명’은 ‘소프트파워를 통한 공장과 제품의 지능화’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딱 와 닿는 표현은 아닌데요. 좀 더 우리에게 익숙한 ‘UX’와 연결해서 찾아본다면 가트너에서 발표한 10대 전략 기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주변 사용자 경험(Ambient User Experience)이라는 용어가 등장합니다. 용어를 번역하지 않고 ‘앰비언트 UX’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앰비언트(Ambient)라는 단어가 ‘주변의’라는 의미도 있지만 ‘은은한’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앰비언트 UX는 이 두 가지 의미를 다 가지고 있는데 한국어에서는 두 가지 의미를 포괄할만한 표현이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전의 UX는 사용자 중심으로 독립된 서비스나 제품, 애플리케이션에 국한된 리서치를 수행하고 사용자 경험을 만들어갑니다. 앰비언트 UX를 언제 어디서든 하나의 경험으로 충족시키는 것이라는 설명도 있는데 이 설명만 본다면 ‘심리스(Seamless) UX’와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 개념의 차이는 IoT입니다. ‘심리스 UX’는 모바일 디바이스가 등장하면서 데스크톱과 모바일 간의 사용자 경험에 집중하고 있는데 앰비언트 UX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간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유럽의 의료기기 제조업체인 위딩스(Withings)에서 만든 오라(Aura)는 수면보조기기입니다. 사용자의 수면패턴에 따라 조명의 밝기를 조절하고 몇 가지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못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기의 덩치도 커져야 하고 가격도 비싸지겠죠. 하지만 IoT 시대에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사용자가 잠이 깨려고 할 때 주변기기에게 정보를 전달합니다. 난방을 조절하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기에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당하는 기기에서 수신된 정보에 따라 자신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4차 산업혁명”에서 이야기하는 “소프트파워”를 통해 각 서비스가 “지능”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소프트웨어 시장의 강자가 서비스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 ‘플랫폼’입니다. 전통적인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의 강자인 투비소프트의 변화도 이런 측면에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회사가 어느 순간부터 서비스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핀테크, IoT, O2O 분야에서 다양한 사업자와 협력관계를 맺고 관련 시장에 진출한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를 더는 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도 나옵니다. 하지만 ‘플랫폼’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전혀 다른 모습이 보입니다. 예전에는 각각의 서비스가 독립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다양한 서비스를 하나의 서비스처럼 연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업무용 PC만 가지고 일을 하던 시대는 벌써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하나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단지 다양한 크기의 디바이스에서 보이는 화면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든 모든 기기와 연결된 하나의 경험’이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와인을 복제하겠다는 아바 와이너리는 포도를 생산하는 농가와 와이너리에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와인을 비롯한 땅의 산물은 정형화된 화학적인 반응으로 정의하기에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같은 해에 수확한 포도라도 다 같은 것은 아니며 같은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도 숙성 과정에서 맛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와이너리에서는 제품을 출시할 때 이런 차이를 조절하기 위해 블렌딩 과정을 거칩니다. 어떻게 보면 ‘4차 산업혁명’은 오래 전부터 자연 속에서 이루어졌던 것을 조금씩 흉내 내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땅과 물과 포도가 어떻게 서로에게 정보를 주고받는지 온전하게 알아내기 전에는 복제된 와인이 오리지널 와인을 뛰어넘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 듯합니다. ‘앰비언트 UX’ 역시 전문가의 경험과 통찰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요리하는 로봇을 만든 몰리 로보틱스 설립자인 마크 올리니크는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을 도와 삶을 윤택하게 할 수는 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모 통신 회사 광고 문구처럼 기술의 지향점은 여전히 “사람을 향합니다”.


투비통 2016년 12월 http://tobetong.com/?p=6814


참고자료

1. Ava promises to clone high-end wines without using any grapes

https://techcrunch.com/2016/07/14/ava-wants-to-molecularly-replicate-high-end-wines-no-grapes-necessary/

2. Aura and Nest Integration: How It Works

http://blog-admin.withings.com/2015/03/02/the-specifics-of-the-aura-and-nest-integration/

3. 클라우드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 클라우드 슈밥 / 새로운현재 (2016)

4. `로봇 셰프` 개발한 마크 올리니크, “로봇이 인간 대신할 수 없어… 더 나은 삶 도울 뿐”

http://www.etnews.com/201509140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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