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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소설가 - 8점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민음사

이 책은 오르한 파묵의 책이 아니라 김영하 작가의 책을 읽다가 '소설과 소설가'에 언급된 이야기가 나와서 찾아보았습니다. 작가가 쓴 소설보다 내용이 가볍다고 느껴질만큼 쉽게 쓰여져있어서 혹 작가의 책 때문에 이 책을 꺼리신다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소설을 읽고 인식하는 방법은 개인의 취향이라고 하지만, 소설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글을 쓰는지 알게 되면 좀 더 소설을 읽는 시각이 넓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이 책에서 자주 언급하는 "안나 카레리나"는 그다지 재미가 없었고 2권 중반 즈음에 읽기를 그만두었거든요. 이 책을 읽고 나서 풍경을 읽는 방법으로 시도해본다면 다시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믿기 위해, 작가가 말하는 모든 것을 그가 원하는 만큼 믿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작가의 어떤 집요함, 고집, 그리고 강박관념이 옳지 않게 보일지라도, 책에 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계속 읽고 싶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이 풍경을 소설 주인공의 눈으로 볼 뿐만 아니라, 소설 주인공이 풍부한 풍경의 일부라는 것을 압니다.


Photo by Karim Ghantous on Unsplash



소설에 푹 빠져서 읽는 독자들은 톨스토이의 달력이 옳다고 생각하며 읽기 때문에 소설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작가와 독자가 이런 실수를 하는 것은 소설을 주인공들의 시간에 초점을 맞춰 쓰고 읽는 습관 때문입니다.


인위적인 기법이라고 하는데,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도 고양이가 독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던진 것 같습니다. 말하는 고양이라는 인위적인 면을 과장하는 방식이었나 봅니다. 소세키가 오르한 파묵보다는 더 이전 시대의 사람이니, 사실 이건 누군가의 아이디어라기보다는 오래된 관습이었던 것 같네요.


그래서 생소하기만 한 16세기 이스탄불의 일상 대화라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시대를 재현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실수로부터 소설을 보호하기 위해 오히려 그 인위적인 면을 드러내고 과장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가끔 주인공들이 독자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하고, 사물과 그림 들이 말을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와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 끼워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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