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 김영란 지음/창비 |
법원이라는 것은 냉정하게 객관적인 판단을 할 것이라는 막연한 감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믿음은 사라져버렸습니다. 때로눈 영화보다도 현실 세계가 더 잔인하다는 이야기를 믿어야 하는 건지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이 책 역시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법이라는 것을 사람이 만든 것이고 그 속에서 현실적인 고민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럼에도 "다시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에 희망은 있는 듯 합니다.
한참 김영란법으로 떠들석한 시기에 책을 펴낸 것이 좀 그렇지만, 저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가고 있는 길에 따라 지나왔을뿐 뭐 다른 의도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의 내용도 자극적인 내용보다는 고민해볼 거리를 던져주는 것이라...
부제처럼 10가지 사건에 대한 배경과 대법원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판결을 내렸는지 설명하고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고민을 던져줍니다. 책을 읽은지 좀 시간이 지나 그때 줄을 그었던 문장들에 대한 고민을 이 글에 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개인의 '존엄하고 안락하게 죽을 권리'를 무조건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언뜻 당연해 보이는 권리 맞은편에는 한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입장이 있다. 이 대립되는 두 입장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표적인 예가 자살이다...
...'삼성이 먼저 연구하고 법이 뒤늦게 쫓아간다'는 항간의속설이 맞았다는 것이 증명된 사건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일 수도 있으나, 비슷한 방법으로 경영권 승계를 하려던 다른 기업들이 같은 방법을 사용하기가 어렵게 된 것은 성과라 하겠다...
...게시글로 인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가 떨어진 것보다 인터넷 이용자들의 자유로운 정보 및 의견 교환에 따른 이익이 더 크다고 보았다...
...두 권리 모두 사생활의 자유를 핵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혐연권은 사생활의 자유뿐 아니라 생명권과 건강권에까지 연결되는 권리로서 더 우선적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금연구역을 설정하는 등 흡연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합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기본권 사이의 우선관계가 명확하지 않을 때는 문제가 어려워진다. 이때는 충돌하는 권리들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모든 소송은 그 청구의 옳고 그름을 판단받기 전에 넘어야 할 고개가 하나 있다. 그 소송이 적법한 소송으로서 다루어지기 위한 요건을 먼저 충족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소송요건이라고 한다. 소송요건을 갖추지 못한 소송은 옳고 그름을 판단받기 이전에 적법하지 않은 소성으로서 각하된다...
...그들의 바람은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로부터 배제된채 외로운 삶으로 추방당라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법 앞에 평등한 존엄을 구하고 있다. 헌법은 이들에게 그러한 권리를 부여한다...
...식민지하에서 일본을 통해 이식된 독일식 근대법은 군국주의적 지배에 필요한 체계를 도입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시민법의 요소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특히 가족법은 조선시대의 관습과 일본의 가족법, 서양식 법이 뒤섞여서 어디까지가 전통이고 어디까지가 일본식 해석이며 어디까지가 서양 근대법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구별이 어려울 정도였다...
...판결은 본래 과거 사실에 대한 판단이거나 가치 판단이 대부분이다. 미래에 대한 판단, 특히 가까운 미래에 대한 판단은 다수의견에 섰건 반대의견에 섰건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처럼 매일매일의 변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사회에서는 대법원 또한 그 변화의 의미를 예의주시하여 놓치지 않아야 한다. 오랫동안 지속되어오던 제도라 해도 이를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 그 제도를 대체할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는 단계라면 그것을 제대로 정착시킬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대법원이 충분히 열려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