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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읽자

[제주에서 2년만 살고 싶었습니다] 멋모르는 도시것의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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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2년만 살고 싶었습니다 - 6점
손명주 지음/큰나무

제주에서 뭔가 낭만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책은 처음입니다. 묘한 느낌을 주는 제목과는 달리 제주에서 외지인이 자리잡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여러 감정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은 더 상황이 좋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올라가고 있고 살림살이는 더 어려워져서 저자가 겪은 어려움보다 더 힘든 삶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제목처럼 <제주에서 2년만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겁니다. 여전히 제주는 뭔가 낭만적인 삶을 던져줄 것 같으니깐 말이죠.

제주가 아니라도 시골살이는 도시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을겁니다.


...이 책은 제주 게스트하우스 창업기도, 제주 정착기도 아니며 친절한 여행 안내서는 더더욱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제주로망에 찬물을 끼얹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지만, 환상제주를 설파하느라 위선과 가식을 떨고 싶지는 않다. 자연의 품이라고 해서 안 먹어도 배부를 리 없고, 못벌어도 쪼들리지 않을 리 없다. 그리고 가장의 경제적 무능력이 합리화될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게스트하우스 공사를 위한 터를 구하고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마음 고생을 합니다. 맘 같아서는 혼자 스스로 하고 싶었겠지만 그러지는 못합니다. TV에서는 혼자서도 척척 멋진 집을 지어내는 분들도 있지만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건 아닌듯 합니다.

...철거 기술자는 오로지 힘이 아니라 집의 하중을 고려하여 구조물을 제거해야 하며, 설비 기술자는 허구한 날 땅만 파는 것 같아도 오수가 잘 내려가도록 물매를 맞춰 배관을 연결하는 섬세함이 필요하며, 목수는 단순히 나무를 다루는 것이 아닌 집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 같은 경이로움이 들었으며, 전기 기술자는 전선 하나하나에 연결된 화재사고의 책임감을 거지줄처럼 엮는 작업이었다. 그들은 학위와 자격증이라는 엄격한 분류 기준에는 부합하지 않을지라도, 오랜 기간 현장에서 습득한 기술력만으로 전문직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해 보였다...


게스트하우스를 성공적으로 운영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뭐 여러 상황이 있겠지만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공감하는 것이 잘 맞았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의 경우에는 섣부른 판단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하지만 뭔가 계속 삐걱거립니다.

...돈도 안 되고 밥벌이도 안 되는 글이나 쓰는 동안 최소한의 생활비를 조달하며 시골 생활의 여유를 누리는 데 작은 게스트하우스 하나면 충분하리라는 착각도 한몫했다. 그 모든 것이 멋모르는 도시것의 오해였다...


누구에게는 로망일지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는 그런 일을 해야한다는 것 자체가 곤혼일 수 있습니다.

...제주에 살면 취미로 목공을 하며 필요한 걸 직접 만들어서 참 좋겠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제주로 이주한 남자들 대부분이 그렇긴 하지만 모두 다 그럴거라는 건 오해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내가 제주에서 제일 하기 싫은 일 중 하나가 목공 작업이다...


시골살이에서 힘든 것 중 하나가 사람들의 시선이라고 합니다. 도시와는 다르게 어떤 행동을 하던지 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나기 어려우니깐요. 하지만 제주는 다른가봅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이주민이 많은 탓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면에서 제주는 참 좋다. 이 섬에 모여 사는 육지것들끼리는 호구조사를 하지 않는다. 갖가지 사연의 사람들로 넘쳐나는 제주 이주민 사회에서는 자녀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애잔한 사연의 축에 끼지도 않을뿐더러, 아이는 왜 안 갖느냐고 묻거나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강요하는 이도 없다. 남 일에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가치관이 제각각인 타인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것이다...


뒤로 가면서 뭔가 고민이 잔뜩 담긴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아무래도 가볍게 읽던 앞부분과 달라서 좀 불편합니다. 하지만 <제주에서 2년만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미리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같은 고민을 할지 모르니깐요.


마지막 저자와 함께 제주로 떠난 워니(작가가 남편)의 이야기를 에필로그로 더했습니다. 아예 1,2편으로 나누어서 같이 책을 썼다면 흥미로웠을텐데 말이죠.

...지겨우리만치 매일 같이 지내면서도 이 낯선 땅에 정을 붙였던 서로의 시간과 공간이 무척 다르다. 그걸 깨닫게 되면서 나는 내 의지로 살아야 하고, 좋은 것과 나쁜 것 모두 내 몫임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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