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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읽자

[장서의 괴로움] 이러다간 집이 무너질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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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 6점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정은문고

이 책은 얼마 전에 읽었던 <책장의 정석>과 비슷한 스타일의 책이 아닐까 싶었는데 표지에서 느껴지는 모습이 그대로 글로 담겨져 있습니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는 말에서 읽을 수 있듯이 책이라는 건 마음에 담기기 전에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서면 집에서 버티기 힘든 분량이 됩니다. 오거서를 이야기한 중국의 시인은 어느 정도 넓은 서재를 가지고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현대에 와서는 다섯 수레에 담을만한 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저자 역시 장서의 괴로움을 가지고 있지만 책에서 소개하는 덕후 수준의 이야기는 머릿속으로 그려보아도 대단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주변에서 만화책을 수집하는 분들 이야기만 들어봐도 집에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별도의 서재 공간을 임대해서 사용하는 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 괴로움을 이 책에서 깔끔하게 해결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저 공감할뿐...


...이 사건은 요네자와가 생전에 쓴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소년 매거진>이나 <소년 점프> 같은 주간 만화 잡지도 결코 버리는 법 없이 모조리 모아두었고, 책들을 책장 없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벽을 따라 그대로 쌓아올렸다. 천장 가까이 쌓이면 책 무게 때문에 바닥이 약간 패이면서 천장과 책 사이에 틈이 생긴다. 그러면 그 틈에 또 잡지를 채워 넣는 식으로 자꾸 자꾸 쌓았더니 이사하던 날 바로 집주인이 올라와 불평을 했다는 얘기였다. 책의 무게로 틈이 생기다니 대단하다. 그렇게 쭉 그 집에 살았더라면 조만간에 방바닥이 뚫렸으리라. 어쩌면 일주일도 안 돼 쫓기듯 이사한 게 다행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려는 목적 외에도 책을 수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 역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같은 책을 여러 판본으로 수집합니다. 개정판이 아니라면 내용도 다르지 않지만 그냥 가지고만 있어도 뭔가 만족스러운 느낌입니다. 특히 남자들이 수집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의견이 책에 담겨져 있네요.


...잡지 취재 때문에 어느 심리학자에게 '남자는 왜 물건을 모으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수집가 심리'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수렵시대의 DNA'다. 석기시대에 우리 선조는 움막에 살며 식량을 스스로 조달했다. 가족 구성원 가운데 수컷의 역할이었다. 부인이나 아이 혹은 늙은 부모를 위해 사냥을 나가거나 해변에서 어패류를 잡았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 식량을 대비하여 되도록 많은 식량을 그러모으고 저장한다. 필요한 양보다 많은 식량을 미리 포획하고 가능한 많은 음식을 저장하려 했던 수컷의 역할이 혈관 깊숙이 흘러들어 지금도 남자는 물건을 모으고 저장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전자책을 사용하는 분도 많습니다. 저도 전자책을 이용하긴 하는데 전자책은 이동하면서 읽기 편한 용도로 쓰고 같은 종이책을 또 구매합니다. 전자책은 어떤 식으로는 영구하지 않다는 불안감 때문인듯 합니다. 뭐 종이책도 어떤 식으로든 사라질 수 있지만 그래도 언제든 눈 앞에 보이는 책이 있다는 것이 편안함을 줍니다. 책에서는 '자취'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마이니치 신문에 소개된 내용을 정리한 듯 합니다.


...제본된 책을 한 장씩 뜯어 컴퓨터와 연결된 스캐너에 집어넣고 전자 데이터로 보존해 읽는다. 자취는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속어로 '스스로 데이터를 빨아들이는' 이미지가 '밥 지을 취'를 떠올리게 해서 붙여졌다. 들고 다니기 편한 미국 애플 단말기 '아이패드'의 등장이 자취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사진 한장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일본식 주택에 대해 알고 있는 분들은 글만으로 상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좀 난감합니다. 물론 글에서 충분하 괴로움을 느낄 수 있지만 말이죠. 일본 아마존에서 책 미리보기를 살펴보니 원서에는 사진 자료가 조금씩 있는 것 같은데 판본이 다른 건지 국내 번역서는 사진 자료가 전혀 없습니다.




* 이 책이 눈에 들어온 첫 번째 이유는 표지입니다. 알라딘에서 나온 책배게도 가지고 있다는 ^^ 표지 일러스트를 그린 분은 김재슬님인데 최근 읽었던 <백미진수> 역시 같은 분이 그리셨더군요. 두 책 모두 흰 고양이가 나오는데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른 책도 찾아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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