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을읽자

[백미진수] 때때로 소설을 쓰는 요리 선생님

반응형
백미진수 - 6점
단 카즈오 지음, 심정명 옮김/한빛비즈

저자인 단 카즈오는 소설가인데 국내에 처음 소개된 책은 음식 관련 에세이군요. 일본 아마존에서도 저자 프로필을 조회해보면 이 책 외 다른 음식 관련 에세이가 먼저 보입니다. 저자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미식가로서 알려진 분인듯 합니다.


아들인 단 다로가 후기처럼 쓴 <아버지의 요리>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소개를 받은 여인이 이렇게 말했다. 요리 선생님인데 때때로 소설도 쓰신다는 대목이 무척 유쾌했기에 도쿄에 돌아가자마자 아버지에게 당장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씁쓸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슬쩍 보였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하하하. 기분 좋네. 눈물이 날 것 같아. 여보, 부인. 세상 사람들은 인정하는 거요! 내가 세계적인 요리사라는 걸. 더 떠받을어 줘야지. 안 그러면 당신 조만간 벌 받을게요."...

음. 뭐 이런 분위기라면 <백미진수>라는 책이 한국에 먼저 소개되었다고 해서 섭섭해할 일은 아닌듯 합니다.


이 책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걸쳐 즐길 수 있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번역서에는 각 이야기에 나온 지명을 지도에 표시해주고 있는데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일부러 편집해놓은 것처럼 일본 전역에 걸쳐 음식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책으로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검색을 해보면 1972년 한일친선낚시대회에 참가해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한 기사가 있습니다. 역시 인터뷰에서도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나오고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나오네요.


<매일경제 1972년 7월 18일>

...세계낚시대회에는 많이 참가했지만 막상 낚시는 할 줄 모른다는 그는 그러나 잡은 고기를 요리하는데는 일류조리사를 빰칠정도라고 그의 일행들은 그를 가르켜 말했다...



에피소드 중에 <탁한 술을 탁하게 마시고>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달의 계수나무'라는 탁주에 대한 이야기인데 국내에도 많이 알려져 있는 술이라고 합니다.


<사케의 고장 교토 후시미(伏見)의 대표 술 "쓰기노 가쓰라(月の桂)">

http://cu.edaily.co.kr/News/NewsRead?Kind=All&NewsId=01079126609469288

...일본에는 여러 종류의 사케가 있지만, 그 중 우리나라 막걸리와 같은 탁주인 니고리 자케가 있다. 쓰키노 가쓰라 술도가는 니고리 사케와 고슈古酒의 대명사 이다. 니고리사케는 혼조식관(本朝食館)이란 문헌을 보고 개발한 13대 마스다 도쿠베 부친께서 직접 개발한 막걸리와 같은 사케이다. 혼조식관이란 고서는 사케, 간 장, 된장 등의 발효식품에 대한 정통 교과서 같은 책이다. 13대 장인 마스다 도쿠베 부친은 일본에서 사케박사로 유명한 명장인 사카구치 긴이치로라는 주조 발효균 연구자와 주조 발효 연구소에서 니고리 사케를 함께 개발했다...



한국의 전통주를 이야기할 때 전통주의 맥이 끊긴 이유 중 하나가 일제의 주세법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일본 내에서도 가양주를 금지했다는 이야기는 이 책에서도 등장하지만 같은 조건은 아니었다는거죠.


<조선주조사, 우리 술이 흐린 피의 잔혹사>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556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 가양주 방식의 영세업장들이 소멸되는 것이 필연적인 결과라 하더라도,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를 하며 자국의 술이 그리웠는지는 몰라도, 일본 사케와 비교해 조선의 술에 의도적으로 높은 세율을 부과하고 그 과정에서 조선전통주를 생산하던 11만여 곳 이상의 영세 주막과 주조소가 파산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도부로쿠'라는 말은 '도쿠로(탁한 술)'의 음이 변화한 것이라 전해지지만, 사실은 어떨지. 지금도 산골 마을 어딘가에서 비밀 탁주 공장이 남몰래 양조를 계속하고 있을 게 뻔하다. 내가 어렸을 적에도 시골에 있는 집 대부분이 자가 밀조를 했다. 술을 대접받을 때면 당연히 그 집에서 만든 탁주를 얻어먹었다. 병에 든 시판 술이나 맥주, 위스키가 산골 마을까지 고루 퍼진 것은 최근에 와서다...


이 책은 1983년에 출판된 책이고 글은 그 이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음식을 일본에 간다고 해서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닐겁니다. 그래도 아키타현에 가서 기리탄포(きりたんぽ)를 맛본다면 이 책이 생각날 겁니다. 표지에 등장하는 음식이기도 하죠 ~



저자는 열살 무렵에 어린 여동생과 요리와는 거리가 먼 아버지 덕분에 나의 요리 만들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불행하게 바라볼 수 도 있는 사건이지만, 저자는 이런 환경을 즐기고 스스로의 행복으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즐기지 않았다면 소설가로서 요리 선생님이라 불리는 것을 무척 불행한 일로 여겼겠죠 ^^

...이때부터 나의 요리 만들기는 시작됐다. 아니 그보다 '자기가 먹을 음식은 자기 스스로 만드는' 요리 인생이 열렸다. 그랬더니 이토록 맘 편하고 이토록 유쾌하며 이토록 확실히 끼니를 챙겨 먹을 수 있는 생활이 없었다. 산에 나는 고사리, 백합 뿌리, 버섯, 참마... 산속을 조금 서성거리면 갖가지 맛난 식재료가 땅에 그득하다는 사실도 배웠다. 이런 생활은 타고난 내 방랑벽으로 인해 더욱 견고해졌고, 또 거꾸로 그 생활이 내 방랑벽을 더욱더 부추겼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