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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읽자

[음식의 언어] 음식이 지나온 길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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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언어 - 6점
댄 주래프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어크로스

이 책의 나쁜 점은 언어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꼭 그런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미국 독자를 대상으로 쓴 이야기라서 이 정도 이야기는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음식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다르겠지만 일반 독자가 술술 읽기에는 쉽지 않은 책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의 매력은 기록된 언어의 흔적을 따라 음식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에 있습니다.


음. 일반적인 상식에서는 오늘의 요리는 중국집에서 제공하는 요일별 식사를 생각하는데 여기서는 값비싼 레스토랑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중국집이 없나?

...우리는 연구 과정에서 경제적 함의를 띤 다른 여러 가지 언어적 특성을 발견했다. 예컨대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손님이 무엇을 먹을지를 레스토랑이 정해주는 경향은 세종처럼 미슐랭 별표를 받은 사치스러운 레스토랑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휠씬 더 값비싼 레스토랑은 일품요리 메뉴에서도 '정식 메뉴prix fixe'를 제공할 확률이 더 크다. 아니면 다음의 보기처럼 개별 요리가 '주방장의 선택chefs chice'이나 '주방장 추천chefs selection'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도 빅데이터라는 기술의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아마도) 구글이 가지고 있는 방대한 데이터 베이스에서 뽑아낼 수 있는 도서 자료와 각 연구기관에서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된 자료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1800년대 메뉴에 대한 연구는 예전같으면 생각하기도 어려웠을겁니다. 물론 하나하나 손으로 기록해서 처리할 수 있었겠지만 말이죠.

...신선한, 풍부한, 자극성 있는, 바삭바삭한, 오독오독한, 짜릿한, 즙이 풍부한, 자극적인, 두툼한, 훈제한 맛의, 짭짤한, 치즈 맛이 나는, 포슬포슬한, 종잇장처럼 파삭한, 버터 맛이 도는 같은 묘사적 형용사는 이런 중간 가격대 레스토랑의 메뉴에 상당 정도 더 자주 나온다...


...값비싼 레스토랑은 잘 익은(ripe)이라는 단어(또는 신선한이나 바삭바삭한)를 쓰지 않는다. 잘 익어야 하는 음식은 당연히 잘 익었으리라고, 또 모든 식재료가 당연히 신선하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중간 가격대의 레스토랑은 그곳이 충분히 근사한 곳이 아니어서 손님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봐 걱정한다. 그래서 거듭 확신시키려고 애쓰는 것이다. 변명이 너무 많다...


...손님들이 그냥 빈 식탁만 봐서는 어떤 음식을 대접받을지 알 수 없으므로, 앞으로 나올 음식 이름을 적은 작은 목록표가 각 좌석 앞에 놓이게 되었다. 이 목록의 이름은 '작고, 세심하게 나뉘었다가 자세한'이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minūtus)의 축약형에서 빌려온(처음에는 프랑스어에, 다음에는 영어에) 것이었다. 그것이 메뉴(menu)라 불렸다...


음식 언어의 이동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원조가 어디였는지 따지기보다는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동했는지 추적하는 행위 자체가 역사적인 배경이나 문화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1750년께 이 요리는 일본어로 덴푸라라 불리게 된다. 일본 음식 연구자 에릭 래스는 그 명칭이 1639년의 '남만인 요리책'에 실린 친척뻘 음식 이름인 텐포라리(tenporari)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텐포라리는 닭고기에 여섯 가지 양념(검은 후추, 계핏가루, 클로브, 생강, 마늘, 양파)를 뿌려서 튀긴 다음 국물을 부어 내는 음식이다...


...홍주도 화교들의 손에서 아락(arrack)으로 변신했다. 발효된 쌀술에 당밀과 종려술을 함께 섞어 증류해서 럼주의 고대 선조라 할 술로 바꾼것이다. 아락이라는 단어는 아랍어의 '아라크(araq)/땀'에서 왔는데, 아니스(anise) 맛이 나는 레반트의 술 아락(arak)와 크로아티아의 자두 브랜디 라키아(rakia)등을 가리키는 단어와도 연결된다. 아락은 그 고대적인 본성에 걸맞게 약간 입에 불이 붙는 듯한 느낌이며 거칠다. 바타비아산 아락(반 오스텐 van Oosten)이 지금도 수입되기 때문에 여러분이 직접 맛볼 수 있다...


케첩이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건 이미 많이 알려진 내용이더군요. 하지만 그 이름에서 풍겨지는 느낌때문에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다면 대부분은 모르고 넘어갔을겁니다.

...아시아 상품을 수입하는 비용이 비쌌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에서도 조리법을 개발하게 되었고, 미국의 요리책들도 값비싼 수입품 원조 케첩의 맛을 모방하여 각자 나름의 케첩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사치스러운 아시아 수입품을 위조하려는 시도는 케첩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더 나중인 19세기에 우스터 소스가 만들어진 것은 벵갈에서 수입해오는 소스를 모방하기 위해서였고, 아락의 값싼 대용품은 카리브 해의 토산물인 설탕을 사용해 개발되었다. 이 모방품 아락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것이 무엇인지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럼' 말이다...


국내에서도 증류주가 어떻게 넘어왔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단어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이 책에서 밝힌 증류주 이야기를 참고해도 좋을 듯 합니다.

...단어에는 이 모든 역사가 담겨 있다. 라키아(rakia)라는 단어는 아랍어로 '땀'이라는 뜻의 아라크에서 왔는데, 이는 증류기 주둥이에서 알코올이 응결되어 방울지는 모습을 생생하게 은유한다. 아라크의 다른 후손들은 전 세계에서 사용되면서 각 지역 토산 증류주의 이름이 되었다...


요즘.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있는데 첫 문장이 여기저기서 많이 인용되더군요. 책을 읽을 때는 딱히 와닿은 문장은 아닌데 다시 보니 무척 인상적입니다.

...긍정적이 되기보다는 부정적이 되는 방식이 더 다양하다는 이런 일반화의 가장 유명한 표현은 '안나 카레니나'의 첫머리에 실린 톨스토이의 발언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하겐다즈'라는 브랜드명에는 아무런 뜻이 없다. 창립자인 루벤 메투스가 자신들이 파는 아이스크림을 유럽에서 만든 고급 아이스크림처럼 인식시키고자 '유럽풍의 고급스러운' 발음들을 조합해 만든 국적불명의 이름이라고 한다...


음식에 관심이 많다면 흥미로운 이야기일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좀 반복적으로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저자가 살고 있는 동네 중심적인 이야기라..낯선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궁금하다면 앞부분 살짝 보시고 책을 선택하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이처럼 전 세계의 음식들 중에서 아주 생뚱맞고 너무나 먼 거리를 뛰어넘어 연결되는 것들이 많다. 그런 연결과 변형의 관계에 대한 힌트는 그 음식과 관련된 언어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음식의 이름을 분석해보면 그런 음식이 지나온 길의 흔적이 발견된다.

이 책은 바로 그 흔적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음식 이름 분석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음식의 변천사를 이야기하고, 그 음식을 먹고 또 다른 곳에 전파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음식의 역사가 아니라 음식에 관련된 언어가 우리에게 그 음식, 그리고 그것을 먹는 사람들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말해주는가를 다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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