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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은 동의보감에 대한 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로는 글쓰기에 대한 영감을 얻었습니다. 저자가 풀어준 동의보감의 편찬 방식에 대한 설명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동의보감 본문에 대해서는 몇몇 지식의 습득 정도로 ^^


다산의 책에서도 언급된 부분인듯 합니다. 특히 동의보감처럼 실용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면 그 분류 체계 자체가 무척 중요해지겠죠. 특히 동의보감의 경우 이전 다른 유사한 책들과 다르게 독창성을 발휘해서 자신만의 분류 체계를 만들었다는 점을 이 책에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언어로 소통을 하기 위해선 분류학적 체계를 잡아야 하고 담론적 배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다양한 어휘력과 고도의 문장력이 필요한 건 말할 나위도 없다. 임상의 노하우와 과정을 그대로 옮긴다고 해서 책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문제는 ‘이것들을 어떻게 배열할 것인가?’에 있다. 독창성이란 그때 발휘되는 법이다. 허준은 방대한 내용을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분류, 배열해 냈다.


목차가 너무 길어서 질릴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 목차만 대략 훑어봐도 충분히 내용을 가늠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말하자면 목차는 이 방대한 저서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요즘에는 검색이 있어서 모든 정보를 다 찾을 수 있다고 하지만, 검색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키워드를 찾지 못하면 원하는 정보에 다가가지 못합니다. 아~ 그거 있잖아~ 라고만 해도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시절이 온다면 모를까~

뿐만 아니라 『동의보감』은 다양한 방식으로 검색이 가능하도록 배열했다. 즉, 질병을 통해 처방을 알 수도 있고 처방을 통해 병증을 알 수도 있는 다중적인 참조방식을 취했다. 한마디로 다양한 검색창을 설치한 것이다. 후대의 학자들은 이것을 쓸데없는 중복이라고 비판했지만 그것은 이 책의 용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온 편견이다. 즉, 『동의보감』 같은 의서는 처음부터 차례차례 읽는 책이 아니라, 전체의 지도를 훑어본 다음, 필요한 항목을 바로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매뉴얼과 그 이상이라는 점이 요즘 고민하고 있던 부분입니다. 대중적인 영향력이라고 표현했지만, 결국에는 얼마나 실용적인가의 문제거든요. 사용자들이 매뉴얼을 잘 읽지 않아요~ 라는 고민에 대한 해결책이 숨겨져 있는 것이지요. 이 책에서 정답을 알려주지 않지만, 배치라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는 것은 얻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와 결합하지 않으면 아무리 대단한 정보가 있다 한들 매뉴얼 이상이 되기 어렵다. 그리고 매뉴얼 상태로는 결코 대중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그만큼 텍스트의 가치를 규정하는 데 있어 글쓰기라는 배치는 의미심장하다.


과다한 정보가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언급도 있습니다. 정보 사이에 숨겨진 의미를 알아야 하는데, 검색에만 의존하면서 그런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겠지요.

정보가 누적된다는 건 그만큼 시선이 산포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정보의 양이 아니라, 핵심을 간파하는 안목이다


이제 정보의 양이 진실 여부를 결정짓는 시대는 끝났다. 정보들 사이의 관계와 배치를 파악하는 능력, 그것이 바로 통찰력이자 직관력일 터, 현대인은 이 능력을 거의 망실해버렸다. 그래서 늘 정보에 휘둘린다. 정보를 재구성하는 힘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글이란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성찰과 수렴 능력을 키우는 데는 최고라 할 수 있다. 유럽의 귀족들이나 조선의 선비들이 왜 문장력으로 인재를 선발했는가를 환기해 보라. 언어를 창조하고 조직하는 능력 없이 지성의 근육은 결코 자라지 않는다.


Photo by Tim Chow on Unsplash



이건 참고서적~

허준, 『동의보감』, 김형준・윤석희 외 옮김, 대한형상의학회・정행규 외 감수, 동의보감출판사, 2005

신동원・김남일・여인석, 『한권으로 읽는 동의보감』, 들녘, 1999

샤론 모알렘, 『아파야 산다』, 김소영 옮김, 김영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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