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장인 - 10점
리차드 세넷 지음, 김홍식 옮김/21세기북스


책이 두껍긴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읽어야 하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처음 책을 펼친 것이 1월달이니 6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을 끌어와서 앞부분에서 얻은 교훈을 뒷부분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메모했던 내용을 다시 살피면서 책 읽는 습관에 대해 후회할 뿐입니다. 기회가 되면 한번 더 읽고 싶은 책이네요.


그나마 앞부분에 메모해놓았던 것은 왜 이 단락을 남겨놓았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음부터는 "왜?"였는지를 남겨놓아야 겠습니다.


...그녀(한나 아렌트)는 우리 인간이 두 가지 차원에서 살고 있다고 본다. 하나는 우리가 물건을 만들며 사는 차원이다. 이런 상태에 있는 우리는 그저 일에 함몰된 채 도덕이나 윤리를 모른다. 동시에 우리는 이보다 높은 다른 차원에서도 살고 있다. 이 차원에서는 만드는 일을 멈추고, 서로 어울려 토론과 판단을 시도한다. 아니말 라보란스는 "어떻게?"라는 질문밖에 하지 않는 반면, 호모 파베르는 "왜?"를 묻는다...


...문화적 물질주의자들은 물건 그 자체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들여다보면서, 물건들이 어떻게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다시 말해 물건을 만드는 아니말 라보란스가 호모 파베르를 안내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다른 텍스트에서는 서구에서는 기술 장인을 어느 정도 인정해주었기 때문에 산업혁명을 거쳐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라고 하는데 다른 분야와 비교해서는 여전히 천대받는 직종이었나 봅니다.


...실제적인 일은 서구 역사에서 시시때때로 천대받았고, 세상이 인정해주는 고상한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술적인 솜씨는 창의적인 일로 쳐주지 않았다. 종교적 가치에서 보면 세속의 현실은 무상한 것이요,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은 허영인 양 취급됐다. 장인이 일에 몰입하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특수한 예이긴 하지만, 장인의 열망과 시련은 이처럼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폭넓은 문제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품질이라는 것을 개념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물론 누구나 인지할 수 있는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이 글에서 최고의 경지로서 품질은 좀 더 높은 수준을 이야기합니다.


...품질을 추구하는 사람은 전부 장인인 것이다. 플라톤은 어느 일이든 그 이면에는 추구하는 품질 목표가 있다고 보고, 그 최고의 경지를 아레테(arete)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 어느 일에서든 장인은 품질을 추구하는 열망 때문에 적당히 마무리하지 못하고 더 낫게 만들려고 애쓰며, 높은 경지를 향해 달려간다...


코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하게 보여지는 오류를 풀어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오류를 찾고 이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쉽지 않은 일이죠. 또한 코드 유입으로 생겨날 수 있는 오류까지 생각한다면 전체 코드의 품질 문제는 다루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코드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이지, 마무리돼서 고정되는 대상이 아니다. 리눅스 세계에서는 문제를 푸는 일과 문제를 찾는 일이 거의 순간적으로 이어진다...


영어 학습에서도 언급되고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해보면 저런 순간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반복 연습의 부족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연습의 강도나 방법이 잘못된 것이겠지요.


...기량이 늘면서, 반복 연습을 견딜 수 있는 능력도 늘어난다. 음악에서는 이를 '이삭 스턴(Isaac Stern) 규칙'이라고 부르는데, 위대한 바이올린 연주가인 스턴은 기법이 좋아질수록 반복 연주를 지루해하지 않고 연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습할 때마다 꽉 잠긴 자물쇠처럼 매번 막히는 대목이 "바로 이거야!" 하면서 확 뚫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은 반복 과정을 통해서만 나타난다...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새 지평이 열리는(또 새로운 지평에서 다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되풀이되지 않으면, 기능은 늘지 않는다...


건축은 지금 보아도 경이롭습니다. 훨씬 더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과거의 건축물을 재현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지요.


...건축가들은 어떻게 이 놀라운 건축물을 지어 올릴 수 있었을까? 구조물 전체를 총괄하는 한 사람의 건축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석공들에게 청사진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와는 달리 건물이 모습을 갖춰 가는 과정은 처음부터 진화 원리를 따랐고 세 세대에 걸쳐 집단적으로 관리됐다. 건축 작업 중에 생기는 모든 일은 다음 세대 작업자들을 지휘하고 조절하는 집단적 기억 속으로 흡수됐다...


기술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단순히 절차에 따라 할 수 있는 작업은 글로도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기술자의 직관이나 다른 요소를 필요로 하는 경우에은 이를 글로 표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비유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학습자가 알 수 있는 비슷한 경험을 비유로 설명하면서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물론 그 순간을 경험하는 것은 학습자의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얻을 수 있을겁니다.


...신참 인력이 실험실에 들어가면 이미 갖춰진 절차대로 따라 하면 그만이겠지만, 이미 있는 문제를 풀어가는 와중에도 새 문제를 짚어보는 과학자의 능력은 전수하기 어렵다. 또 어느 문제가 끝내 풀리지 않을 것 같다는 직관력은 경험에서 생기는데, 이것 역시 남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요리는 문화란 영역을 만들어낸다. 즉 자연(날것)이 변형되는 과정이다. 문화가 생산되는 과정에서 음식은 '먹기 좋은(bonne a manger)'것이기도 하고, '생각하기 좋은(bonne a penser)'것이기도 하다고 했던 레비스트로스의 설명은 아주 유명하다...


...작업상 손을 많이 쓰는 사람들에게 생기는 굳은살은 국부적 촉감의 아주 특수한 사례로 들 수 있다. 원리적으로 보자면 굳은살이 박여서 피부가 두꺼워지면서 감각은 당연히 둔화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정반대의 일이 나타난다. 굳은살은 손에 퍼져 있는 신경 말단을 보호함으로써 탐색 행위의 머뭇거림을 줄여준다. 이런 일이 타나나는 생리학적 근거는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타난 결과로만 보면, 굳은살은 미세한 물리적 공간을 파악하는 손의 감각을 예민하게 하고 손가락 끝의 감각을 더욱 자극한다. 굳은살이 손에 하는 역할이 볼록렌즈가 카메라에 하는 역할과 같다고 상상해볼 수 있겠다...


...올니는 보여주는 게 아니라 말로 일러주고 있다. 이 설명서를 접한 독자가 이미 뼈를 발라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상기하는 데는 도움이 될 만하다. 하지만 초보자가 볼 때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초보자가 이걸 읽고 따라 한다면, 험한 꼴로 만신창이가 될 닭들이 여러 마리를 헤아릴 것이다...


...비유가 느슨한 데는 이유가 있다. 닭의 힘줄을 자르는 것은 기술적으로 끈을 자르는 것과 비슷한데, 그렇다고 자를 때 느낌이 아주 비슷한 것도 아니다. 이렇게 느슨한 비유를 쓰면, 읽는 이들에게 배움의 순간을 열어준다. '똑같다'가 아니라 '비슷하다'고 하면, 힘줄을 자르는 바로 그 행위에 신경을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조리할 사람의 손과 뇌가 활발히 교류할 장이 열린다...


인공지능이니 뭐니 해서 말이 많습니다. 사람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들것이라는 이야기도 많지요. 절차적으로 처리할 수 있거나 계산으로 풀 수 있는 문제들은 인공지능이 많은 부분을 대체할 것입니다. 하지만 텍스트로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 부분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습니다. 얼마전 학습곡선이 높은 기술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뉴스(?)를 본적이 있습니다. 학습곡선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동화된 영역이 넓어진다는 것인데 그런 영역은 인공지능이 채울 수 있다는 것이지요.


...양질의 육체노동에서 익힌 통제력은 새로운 일을 배우는 데도 유용하게 쓰인다. 또 인간 관계가 많이 개입되고 변화가 많은 일보다 구체적인 문제를 주목하는 태도도 그들의 장점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새로 배우는 재훈련에서 세일즈맨보다 배관공이 더 잘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배관공이 가지고 있는 실기 습관과 대상 집중력은 재훈련에 유익하게 쓰인다. 고용주들은 반복적인 육체노동을 머리를 쓰지 않는 일로 보는 탓에 이런 기회를 보지 못한다...


...깊이는 제쳐두고 많은 문제를 처리하는 개인의 능력을 측정하는 검사는 신속한 연구와 얄팍한 지식을 높게 쳐주는 경제 체제가 원하는 편리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와 같이 신속하고 얄팍한 지식은 이 기관에서 저 회사로 몰려다니는 컨설턴트들에게서 자주 눈에 뜨인다. 깊이 파고 들어가는 장인의 능력은 이런 유형으로 전개되는 잠재적 능력과는 정반대편에 있다...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