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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읽자

[위스키 성지여행]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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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 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윤정 옮김, 무라카미 요오코 사진/문학사상사

이 책은 1999년에 나온 책이고 번역되어 출판된 것도 2009년의 일입니다. 멋진 제목과는 다르게 편집이 좀 아쉬울 수 있는데 확실하게 요즘 스타일은 아닙니다. 위스키라는 테마를 정하고 여행을 다녀온 하루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는 장점을 뺀다면 편집 자체로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원래는 휴가로 아일랜드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마침 위스키 원고 청탁이 들어와서 목적을 정하고 여행을 즐겼다고 합니다. 여행은 즐거웠다고 하니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보다는 여행을 즐기면서 사람들과의 만남을 정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두편의 글은 잡지(산토리 홍보지)에 발표됐는데 사진과 함께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고 하네요. 원래는 다른 여행기에 포함할 생각이었는데 위스키라는 주제 자체가 독특해서 따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책 자체도 얇고 (140여페이지) 편집도 듬성듬성합니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침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언어는 그저 언어일 뿐이고, 우리는 언어 이상도 언어 이하도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온갖 일들을 술에 취하지 않은 맨 정신의 다른 무엇인가로 바꾸어 놓고 이야기하고, 그 한정된 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아주 드물게 주어지는 행복한 순간에 우리의 언어는 진짜로 위스키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적어도 나는-늘 그러한 순간을 꿈꾸며 살아간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하고...


일본어판 제목은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이랍니다. 한국어판는 다른 느낌이네요. 역자는 설명을 덧붙여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한국어판 제목을 바꾸었다고 하는데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싶긴 합니다.


<もし僕らのことばがウィスキーであったなら>

일본어판 표지에 등장하는 사진은 '로스크레아'의 바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개의 이름은 '기네스'라고 하네요. 책 본문에 등장하는 사진이죠.



...맛 좋은 아일레이 싱글 몰트가 코앞에 있는데, 왜 일부러 블렌디드 위스키 같은 걸 마신단 말이오? 그건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려는 순간에 텔레비전 재방송 프로그램을 트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사실 싱글 몰트를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어서 이 책에 소개되는 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글로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라도 아일레이의 싱글 몰트를 만나면 이 글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아일레이에서는 보모어와 라프로익 증류소를 견학합니다. 일본인이 아일레이의 증류소에 방문한다는 것이 이국적인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보모어는 1994년에 산토리에서 인수했고 라프로익은 2014년 산토리에서 미국의 빔을 인수하면서 자연스럽게 산토리에게 넘어갔습니다.


<일본은 어떻게 위스키 강국이 되었나>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9660.html

...지난해 벽두에 세계 주류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짐빔과 메이커스마크, 캐나디안클럽 등 유수의 브랜드를 자랑하는 미국의 주류회사 빔 그룹이 일본의 산토리 위스키로 160억달러에 넘어갔다는 뉴스가 발표된 것이다. 스코틀랜드에 보모어, 글렌갤리오크 등 두 증류소를 확보하며 교두보를 구축했던 산토리는 빔의 매수를 통해 그 산하에 있던 라프로익, 아드모어, 오첸토샨 등 세 증류소를 더해 위스키의 원산지에서도 무시 못할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미 세계 5대 위스키 산지의 하나로 손꼽히는 일본 위스키의 저력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뭐 그래도 주인이 바뀌었을 뿐 이국적인 풍경은 여전히 글 속에 남아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만들고 있는 위스키가 세상에 나올 무렵, 어쩌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그러나 그건 내가 만든 위스키거든. 정말이지 멋진 일 아니겠어?...


...10년 된 위스키에는 그것만이 가지는 완고한 맛이 있고, 15년 된 위스키에는 15년 동안 숙성된 완고한 맛이 있었다. 모두 다 나름대로 개성이 있고,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려는 경박한 알랑거림 따윈 느껴지지 않는다. 문장으로 치자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초기작에서 볼 수 있는, 예리하고 절제된 문체와도 같다. 화려한 문체도 아니고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지도 않지만, 진실의 한 측면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다. 누구의 흉내도 내지 않는다. 술을 만든 사람의 얼굴이 또렷이 드러난다...


...술이라는 건 그게 어떤 술이든 산지에서 마셔야 가장 제 맛이 나는 것 같다. 그 술이 만들어진 장소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좋다. 물론 와인이나 정종도 마찬가지다. 맥주 역시 그러하다. 산지에서 멀어질수로고 그 술을 구성하고 있는 무언가가 조금씩 바래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흔히 말하듯이, "좋은 술은 여행을 하지 않는" 법이다...


* 직접 아일레이에 가보지 못해도 가상의 투어를 즐길 수 있습니다.

http://www.bowmore.com/tours/the-front-g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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