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궤에서 만나는 비즈니스 사용자 경험의 지혜

투비통 2014년 9월 http://tobetong.com/?p=3335


청계천을 따라 걷다 보면 광교(廣橋)에서 장통교(長通橋)를 지나 삼일교(三一橋)까지 벽을 따라 길게 그려진 그림을 만날 수 있다. 광교 쪽에서 시작하는 그림이라서 삼일교 방면에서 거꾸로 올라왔다면 자세한 설명을 읽기 위해서는 그림이 시작한 지점까지 계속 걸어가야 한다. 이 벽화는 조선 시대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기려 아버지 사도세자 무덤이 있는 화성(지금의 수원) 현륭원에 행차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을 벽화로 재현한 것이다. 길이 186m, 높이 2.4m의 공간을 세라믹 자기 타일 4,960장을 사용해 구성했다. 타일은 조선 시대 백자 형식으로 만들어졌고 채색하고 굽는 모든 작업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타일 벽화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아직 청계천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면 네이버나 다음 지도 서비스에서 ‘장통교’를 검색하고 거리 모습을 볼 수 있는 기능을 사용하면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벽화를그림을 살펴볼 수 있다.


지도서비스를 사용해 검색한 장통교 거리 뷰


정조의 화성 행차와 관련된 모든 기록은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라는 책으로 정리되었고 이동하는 행렬의 모습은 63쪽에 걸쳐 반차도 형식의 그림으로 기록했다. 화성 행차는 정조의 집권 20년을 맞아 왕권을 강화하고 대화합을 이루어내기 위한 정치적인 이벤트였으며 대규모 국가 행사였다. 이 행사를 기록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특히 반차도와 같이 의궤에 삽입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단원 김홍도의 지휘 아래 일류 화원들이 대거 참여했다.


의궤(儀軌)는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이라는 의미로 나라의 중요한 행사를 진행하면서 후대에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록물이다. 국가의 행사, 건축, 왕실의 혼인이나 국장 등의 행사를 기록하고 있다. 조선 시대 600여 년의 주요 의식을 많은 양의 그림과 글로 체계적으로 담고 있어 매우 뛰어난 기록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중에서 반차도는 행사의 주요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지금의 영상물이나 사진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반차도를 보면 행사의 참여 인원, 배치, 복장, 사용한 물품 등 당시의 모습을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다. 다른 기록과 달리 반차도는 행사를 추진하기 전에 미리 그려놓아 일종의 설계도와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전체적인 시스템 구조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각 담당자는 명확하게 자신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전체 관리자 역시 각 시스템의 잘못된 점을 비교해가면서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의궤에 담긴 행사를 시스템에 비유한다면 대규모 공공 프로젝트에 가깝다. 행사의 모든 진행 과정은 시스템에 입력하듯이 글과 그림으로 기록된다. 생성된 데이터는 정리 과정을 거쳐 의궤라는 통합 데이터로 모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데이터는 한 번 쓰고 창고에 모아놓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행사가 진행될 때 이를 참고한다. 지금처럼 온라인으로 중앙 정부의 데이터를 열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같은 내용을 사본으로 관련업무를 담당하는 관서에 만들어 배포한다.

의궤는 국왕이 열람하고 규장각에 보관하는 어람용과 실무 담당자들이 볼 수 있는 분상용으로 나뉜다. ‘원행을묘정리의궤’는 금속활자와 목판화를 사용해 어람용과 분상용이 같은 내용으로 만들어졌지만 직접 그린 의궤는 어람용은 화려한 채색과 다양한 표정까지 묘사해 실감 나게 현장의 분위기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그렸다. 분상용에는 미리 만들어놓은 도장 틀을 사용해 반복적으로 그려야 하는 인물이나 사물을 표현했다. 생산성을 높이면서 간략하지만, 내용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형식을 사용했다.


어람용과 분상용 의궤 비교

 

기업 시스템 구축 시에도 마찬가지다. 같은 데이터를 다루지만, 화면을 보는 사용자에 따라 다른 형식으로 구현한 시스템을 사용한다. 의사결정이 필요한 임원들이 보는 화면과 현장 실무자들이 보는 화면을 다르게 만드는 이유는 같은 데이터라도 다른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와 달리 모든 시스템이 시스템 개발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임원들이 사용하는 시스템이라고 해서 금으로 도금된 키보드로 개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임원들이 사용하는 시스템은 같은 업무를 반복하기보다는 데이터를 쉽게 인지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개발된다. UX 컨설팅 과정에서도 업무 생산성보다는 사용하는 기기라든지 개별적인 요구사항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에 현장 담당자의 업무 시스템은 업무의 흐름 자체에 관심을 가진다. 인터뷰 과정을 거치면서 사용자가 어떤 패턴으로 일하고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파악한다. 사용자의 업무 수행 동선에 따라 어떤 패턴을 활용하는 것이 좋은지 고려해 뷰 패턴(View Pattern)을 구성한다.

도장을 찍는 것처럼 비슷한 화면으로 구성된 시스템은 단조로울 수 있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약간의 학습만으로 구현된 패턴을 따라 어떤 식으로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새로운 업무를 담당하더라도 시스템만 보고 어떤 식으로 업무가 흘러가는지 확인할 수 있다.


업무나 직책에 따라 달라지는 UI 환경


의궤에 담긴 정보는 매우 세부적이다. 행사에 참여한 노비에게 지급된 일당이나 그들의 이름 하나하나까지 기록되어 있다. KBS에서 작년 10월 방영한 ‘의궤 8일간의 축제’ 제작 담당자는 인터뷰에서 다른 사극이나 다큐멘터리는 어느 정도의 상상력이 들어갈 수 있어서 유연하게 만들 수 있는데 의궤의 기록은 작은 소품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어 대충 넘어갈 수 없었다고 했다. 이렇게 상세한 정보는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뿐 아니라 건축, 음식, 의상 등 다양한 분야에 연구 자료로 쓰이고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80m 길이 크로마키로 구현한 한강주교환어도

의궤 자체에 대한 연구 역시 다양한 분야에서 접근하고 있다. 청계천에 그려진 반차도를 보면서 어디선가 많이 보던 이미지가 떠올랐을 수도 있다. 언론사에서 복잡한 이슈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도구인 인포그래픽이다. 정보디자인의 역사는 고대 동굴벽화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 점에서 의궤와 정보디자인을 연결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궤는 그림과 글이 분리되어 특정 페이지를 점유하며 완결성을 갖으면서도 그림 안에 문자 정보를 포함하고 있어 도구나 담당자의 역할을 기록하고 있다. 관련된 연구를 살펴보면 정보의 체계화, 효과적인 상징화, 정확한 표상화라는 점에서 현재의 인포그래픽과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1866년 병인양요 중 약탈당한 강화도 외규장각의궤는 145년이 지나고 2011년 돌아왔다. 퇴각하는 프랑스군이 유독 의궤를 집중적으로 약탈한 것은 의궤의 예술적인 가치와 정교함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참전한 프랑스 해군 장교는 이를 기록한 글에서 ‘이곳에서 감탄하면서 볼 수밖에 없고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또 한 가지는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는 것이다. 글을 해독할 수 없는 사람은 아주 드물고 문맹자는 다른 사람에게 멸시당한다.’라고 묘사한 장면에서 지식과 정보에 대한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를 알 수 있다.

시각언어로 이루어진 콘텐츠는 다중언어권의 글로벌 문화에서 언어가 가지는 한계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투비소프트에서 제시하는 비즈니스 사용자 경험은 풍부한 인터페이스로 구현한 시스템을 넘어 비즈니스 환경에 최적화된 사용자 경험을 통해 다양한 문화권에서 환영받고 관심을 끌고 있다. 의궤에서 만날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정교함은 비즈니스 사용자 경험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다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 / 김문식, 신병주 / 돌베개 / 2005

다양한 천연색 도판과 함께 다양한 형식의 의궤를 설명하고 있다. 

- 조선왕실의궤의 비밀 / 아마가와 에미꼬 / 기파랑 / 2012

일본 NHK 특별취재팀이 2년간 취재를 통해 일본이 식민지 정책에서 의궤를 어떻게 활용하려 했는지 숨은 의도를 찾아내고 있다.

- 인포그래픽으로서의 의궤그림 연구 / 하준수, 민지애 / 기초조형학연구 / 2011

영국 대영도서관이 소장 중인 기사진표리진찬의궤(己巳進表裏進饌儀軌)를 분석하면서 의궤의 인포그래픽적인 성격을 재조명하고 있다.

- 의궤 8일간의 축제 / KBS / 2013

2013년 10월 3부작으로 방영되었고 다양한 특수촬영 기법을 사용해 실감 나게 의궤에 담긴 모습을 재현했다. 2014년 4월 3D로 재편집되어 극장판으로 상영했다.

- 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 http://uigwe.museum.go.kr/

의궤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함께 반차도를 가상체험하거나 의궤 상세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 투비소프트 BUX 컨설팅 그룹 블로그 http://bux.tobesoft.co.kr/

투비소프트 UX 방법론에 대한 설명과 다양한 비즈니스 사용자 경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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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열이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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