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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읽자

[냉장고의 탄생] 더울때 보면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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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의 탄생 - 8점
톰 잭슨 지음, 김희봉 옮김/Mid(엠아이디)

얼마 전 같은 재료를 가지고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법으로 막걸리를 빚은 적이 있습니다. 다른 조건이라면 손으로 빚기 때문에 체온의 차이와 숙성 과정에서 각자 집의 온도의 차이일 뿐입니다. 하지만 2-3일 지나가면서 다르게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뭐 온도의 차이라고 해도 그렇게 큰 차이는 아니었을텐데 말이죠.


그래도 지금은 냉장고나 에어콘, 난방을 위한 건축 등을 통해 안정적인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데 냉장고도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술을 보관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런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어준 것이 냉장고의 탄생(CHILLED)라는 책입니다. 지금은 냉장고가 아니라 정수기에서도 얼음을 만들어주는 시대지만 인공적인 기술로 얼음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었는지 담겨져 있는 책입니다. 단지 과거의 역사 뿐 아니라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도 다루고 있습니다.


...기원전 1400년경으로 추정되는 무덤 벽화에는 단지를 얹은 선반을 향해 열심히 부채질을 하는 노예들이 나온다. 이것은 단지 속에 든 와인을 차갑게 하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집트에서는 와인을 토기에 보관했고, 나중에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와인을 넣는 단지를 암포라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와인을 담은 암포라는 진흙으로 단열한 지하 저장고에 보관했을것이다. 와인은 그 지하 저장고에서 이글거리는 태양의 열을 피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더운 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밤이 되면 노예들이 지하실에서 암포라 하나 또는 둘을 지붕 위로 끌고 가서, 시원한 밤바람이 가장 많이 부는 지붕 꼭대기에 둔다. 얕은 물통에 암포라를 넣고, 계속 물을 뿌려서, 밤 동안 내내 암포라가 젖어 있게 한다. 토기는 다공질이어서 표면에서 많은 물을 흡수한다. 밤바람이 몰아치면 암포라 벽에 스며들었던 물이 증발하고, 암포라 속 와인은 아주 천천히 차가워진다. 바람이 충분하지 않으면 노예들은 부채로 기류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나중에 무덤 벽화로 기록되었다. 이집트의 왕이 시원한 와인 한 잔을 마시려면 노예 여러 명이 물을 계속 뿌리고 미친 듯이 부채질을 해야 했던 것이다...


토기와 물을 이용하는 방식은 지금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겹오가리 항아리같은 경우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는 방식입니다. 항아리 입구에 좁은 고랑(?)같은 홈이 있어 그곳에 물을 채우면 항아리 전체를 감싸면서 물을 흘려보내 냉각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노예 대신 선풍기나 자연풍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말이죠.



* 암포라 실물이 공금하시다면 충주 리쿼리움에 전시된 유물이 있습니다.

http://www.liquorium.com/


유럽에서는 오랜 기간동안 깨끗한 물 대신 맥주나 와인을 음료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알코올 때문에 세균이 살 수 없어 나름 위생적인 방법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이슬람에서는 알코올 음료를 율법으로 금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그 배경에는 냉장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알코올 음료를 대체할 수 있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죠.


...페르시아의 냉각 기술은 바지르, 카나트, 야크찰이라는 세 부분을 바탕으로 한다. 야크찰은 말 그대로 '얼으 구덩이'를 뜻하며, 현대의 페르시아에서 냉장고라는 뜻으로 쓰인다. 카나트는 일종의 지하 관개수로이며, 바지르는 '바람을 잡는다'는 뜻으로,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통풍 설비이다...


첫 번째 장인 '석빙고의 시대'에는 조선 시대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동빙고에는 얼음덩이를 15,000개를 저장할 수 있고, 한 덩어리는 대략 관의 길이와 비슷하다. 왕이 봄에 죽었다면, 가을에 왕을 묻을 때가 되면 동빙고는 텅 비게 된다...


이 글을 읽고 작가가 자료를 잘못 읽은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얼음덩이 15,000개를 저장한다니... 의심을 가지고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이와 관련된 기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음. 작가가 자료를 잘못 읽은 것이 맞긴 한가 봅니다. 15,000개가 아니라 150,000개라고 하네요 (이 부분은 정확한 자료를 찾지 못해 누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대단히 많은 건 맞습니다).


왕의 시신이 썩으면 어찌하오리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21628

...조선시대 냉동고인 동빙고의 얼음 저장량은 서빙고보다 1/10 이하로 적었다. 국상이 한 번 나면 동빙고와 서빙고의 약 15만 정에 이르는 얼음이 고갈될 정도였다. 그래서 왕이나 왕비가 병이 나서 위태하거나, 연로할 때는 국상을 대비해서 평년 두 배 정도 얼음을 미리 비축하기까지 했다...


얼마 전 해외 언론을 통해 페트병 에어컨이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공기의 흐름을 이용해 자연적으로 공기를 냉각하는 방식이라는 것이죠. 몇몇 사람들이 실제로 실험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떠돌면서 국내 언론에서 검증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현상을 설명하면서 베르누이, 줄, 톰슨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그들의 이야기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팩트체크] '페트병 에어컨' 과학적으로 검증해보니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263628

...보통 추울 때 지금 보시는 화면처럼 입을 벌리고 바람을 하, 하고 불면 더운 공기가 나오지만, 오므리고 불면 시원한 바람이 세게 나오지 않습니까? 이와 비슷한 효과라고 보면 되는데 여기엔 이제 몇 가지 물리법칙이 있습니다. 일단 '베르누이의 원리'에 의해 페트병같이 넓은 통로를 지나던 공기가 좁은 통로를 만나면 흐름이 빨라지면서 압력에 변화가 생깁니다. 그러다가 이 좁은 통로를 빠져 나오게 되면은 갑자기 팽창되면서 공기 온도가 내려가게 되는데 이걸 '줄-톰슨 효과'라고 하는거죠. 실제로 에어컨이나 냉장고에서 공기를 냉각시키는 것도 기본적으로 이런 원리를 이용한 겁니다....


줄과 톰슨의 만남은 우연한 일이었습니다. 1847년 옥스퍼드에서 줄이 강연을 했는데 그 자리에 윌리엄 톰슨이 참여하면서 줄의 실험이 가진 의미를 알아보았다고 합니다.


...윌리엄 톰슨과 제임스 프레스콧 줄은 1850년대 중반에 힘을 합혔다. 이때는 톰슨도 지난 10년 동안 줄이 줄기차게 주장하던 운동론을 받아들였다. 톰슨은 수학을 좋아하고 개성이 강한 학자였고, 줄은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고 조용한 신사 과학자였다. 그는 죽을 때까지 세 개의 학위를 받았지만 모두 명예 학위였다. 줄과 톰슨이 직접 만나는 일은 드물었고, 주로 편지로 주고받았다. 줄은 실험을 하고, 톰슨은 결과를 분석하는 무거운 부담을 졌다...


...줄은 거의 이렇게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는 온도가 아주 조금 떨어지는 것을 알아챘고, 왜 그런지 알고 싶었다. 여기에 얽힌 수학은 상당히 복잡했지만, 톰슨이 해결할 수 있었다...


베르누이는 이 책에서는 살짝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워낙 등장하는 인물이 많다보니 그럴 수도 있죠. ^^


...베르누이는 기체가 통 속에서 돌아다니는 알갱이들이라고 가정하고 압력을 계산하는 수학적인 체계를 고안했다. 이 체계에서는 열이 가설적인 알갱이들의 속도를 높이는 것으로 보았다. 수학자인 베르누이는 기체가 알갱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해서 머뭇댈 사람이 아니었다...


6장까지는 냉장고의 원리를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었다면 7장부터는 얼음을 사업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 겨울왕국을 보셨다면 처음에 등장하는 얼음장수 이야기가 떠오를겁니다. 바로 그 이야기죠. 뭔가 낭만적으로 보이는 영화와는 다를 수 있지만 말이죠.



얼음 산업은 무한하게 성장할 것 같았지만 자연적으로 생기는 얼음은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오염이라는 문제죠.


...1880년대에 미국에서만 500만 톤 이상의 얼음이 소비되었고, 이 숫자는 더 늘어났다. 얼음 소비가 늘어나면서 장티푸스와 이질도 함께 유행했고, 자연에서 얻는 얼음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 확실했졌다...


...가정용 냉장고는 프랑스의 수도사 아베 마르셀 오디프렌이 발명했다. 그는 와인을 시원하게 보관하는 기계를 만지작거렸고, 1903년에 이산화황을 사용하는 동작 가능한 모델을 만들었다...


음. 또 역시 술이군요. 냉장 기술의 발전은 술과 떨어질 수 없나 봅니다. 물론 전기를 이용하는 냉장고는 제너럴일레트릭사가 1911년에 특허를 얻었다고 합니다.


뒷 부분으로 가면 극저온에 대한 이야기와 양자컴퓨터 이야기까지 등장합니다. 사실 이 정도가 되면 냉장고라는 개념을 넘어가긴 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냉장고를 기준으로 차가움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흥미롭게 끝까지 책을 읽어내려갈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중간 중간 좀 깊이 있는 부분까지 들어가기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말이죠.


* MID 출판사 이벤트로 참여한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www.bookmid.com/bbs/board.php?bo_table=midevent&wr_id=1929


* 참고문헌으로 몇몇 책과 TV 시리즈를 추천해주었는데 그 중 TV 시리즈와 관련된 사이트가 있어 소개해드립니다. 한장으로 이 책을 다 소개해주는 느낌이네요 ^^


http://www.secretlifeofmachines.com/secret_life_of_the_refrigerator.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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