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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그대로 살아도 괜찮아 - 10점
표철민 지음/링거스그룹

2011년에 나온 책이고 새 책은 11번가에서만 판매하고 있습니다. 알라딘 중고 같은 곳에서 더 저렴하게 구할 수는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별 5개를 주는 책이 거의 없는데 이 책은 정말 별이 아깝지 않네요.


표철민님이 워낙 다양하게 활동했기 때문에 몇 차례 강의도 들어보았는데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정말 누구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입니다. 하나 둘 줄을 치면서 읽었는데 꽤 많은 내용이 담겼습니다.


위젯의 정의부터 역사, 종류와 성공사례 등 해외에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은 자료를 끙끙대며 모았고, 이를 매번 무료로 대중에게 공개했다. IT 관련 컨퍼런스에서는 꼭 한 세션씩 끼어들어가 위젯의 가능성을 설파하고, 그 다음날이면 내가 몇 주를 연구해 작성한 자료를 블로그를 통해 무료로 배포하는 식이었다. 지방의 중소 IT 업체에서 위젯을 다루는 사내 세미나를 한다고 하면 사비를 들여 강의를 하러 다니기도 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사람들이 정말로 위젯이 가능성이 있다고 믿어야 우리 회사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반젤리스트라는 개념이 국내에 정착하기 전에(물론 아직도 좀 모호하긴 하지만) 표철민님의 활동은 정말 독보적이었죠. 특히 위젯이라는 아이템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습니다. 저도 RIA 라는 아이템을 선택한 계기 중 하나는 위자드 팩토리의 영향도 없지 않았습니다. 2007년에는 이런 글도 남겼더군요. ㅎ

2007/10/11 - [인사이드Dev] - RIA 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가지 것들을 위자드닷컴에서 만나보세요


W위젯은 창업 이후 모든 것을 바쳤던 위자드닷컴을 과감히 포기하고 완전히 방향을 선회한 뒤 내놓은 첫 작품이었다. 우리의 모든 운명은 여기에 걸려 있었다. 그동안 사람들의 관심은 많이 받았을지언정 실제 돈을 번 것은 삼성그룹 용역 한 번 외에는 없었다. 당시 사람들은 몰랐지만 우리는 몇 년째 라면만 먹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절박하게 W위젯을 개발했다.

위자드닷컴이 새롭긴 했지만 RSS라는 개념 자체가 일반 사용자에게는 어려웠고 포털 사이트가 워낙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어서 힘든 시기였을 겁니다. 일부에서는 위자드닷컴처럼 언젠가는 사용자가 포털의 영향에서 벗어나 다양한 콘텐츠를 컨트롤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라고 했는데 사용자보다 한 발 앞서 나가는 포털 덕에 그런 시절은 아직 오지 않고 있습니다.

W위젯에 대한 글도 남긴 것이 있네요.

2008/03/24 - [인사이드블로그] - 블로그에 W 입양하기


내부적으로는 '위젯 1등이 어떻게 위젯을 버릴 수 있느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나 역시 이 문제를 가지고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결론은 '일부러라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위젯 1등인 것은 분명하나, 시장 크기가 여전히 너무 작다. 물론 위젯도 이제 시작이라 지금보다는 더 키울 수 있겠지만 그래도 스마트폰 시장과 같이 엄청난 성장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등이 자신의 자리를 포기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밀어내기 전에 스스로 자리를 내려오는 것은 쉬운일은 아닙니다.


우리 사업이 끊임없이 바뀌어온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인터넷 서비스 회사'라는 정체성을 항상 고수하고 있다. 우리는 '이번에는 어떤 서비스가 사람들에게 필요할까?'를 생각하고, 그 시대에 맞는 유용함과 즐거움이 있는 서비스를 고민한다.

우리 회사의 설립 모토는 "사람을 밝혀 세상을 밝힌다"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얻고, 그로 인해 남는 시간을 가족이나 사랑 등 보다 가치 있는 데 쓰길 바란다. 우리의 목적인 항상 같다. 다만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고 때때로 선도하며 그 수단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책의 구성은 사업적으로 본인의 경험담을 앞부분에서 이야기하고 뒷부분에서는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물론 나이든 청년(?)들도 배울만한 내용이 가득합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내가 무엇을 잘하는가? 내가 왜 그것을 좋아하는가? 내가 왜 그것을 잘하는가? 내가 왜 지금 이것들을 해야 하는가? 내가 왜 지금 여기서 이걸 하고 있는가? 끊임없는 와이 퀘스천이야말로 대학생 시절 시간이 많을 때라야 할 수 있는 것이고, 이후에 진행될 삶을 설게하는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할 질문들이다. 방향이 잘 설계되어 있으면 출발이 조금 늦었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길을 역전하고 끝내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다.


'스펙을 쌓아야 한단 말이에요.'

그거 한두 개 당장 포기한다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했듯, 스펙은 모두가 갖고 있는 것이니 나 하나쯤 없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그리고 결코 내가 무너지지도 않는다).


물론 오랜 시간 이 같은 탐구를 해보고 나서 비로소 '이 길이 아닌가 보다'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지금까지 한 게 아까워서라도 더해보자'란 생각으로 지속해서는 안된다.

나는 이런 생각을 '기득권'이라고 부른다. 이런 기득권을 많이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쓸수록 변화의 폭은 좁아진다.

언제든 내가 가진 그 숱한 기득권들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그래야 그 안에서 끊임없이 재미를 찾고 순수한 관심과 노력으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영수는 졸업 후 중소기업에 들어가더니 특유의 친화력으로 10년 만에 이사를 달았다. 회사 생활 중에도 꾸준히 여러 나라 술을 수집하고 연구한 영수는 끝내 다 늦은 나이에 결심을 하고 유학을 떠났다. 지금은 귀국해 지방의 한 막걸리 양조장을 인수했고 자기 이름을 단 막걸리를 만든다. 일년에 한 번씩 친구들을 초대해 진탕 마시며 옛 추억에 빠진다.


'뒤처진다'는 의미는 나와 같은 처지와 상황,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해야만 하는 일들을 열심히 이행하고 있는 동안 나만 다른 일에 시간을 쏟았기 때문에 그들과 진도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기득권에 대한 이야기는 좀 뜨끔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열정이 생기지 않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뭔가 모르는 기득권에 대한 게으름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물론 청년때와 지금 기득권이라는 것에 대해 느끼는 것이 다를 수 있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아마 그래서 꼰대가 만들어지나봅니다.

기득권은 눈과 귀를 막고, 보이고 들리는 일들을 안 보이고 안 들린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나들과 다른 일을 할 수 있고 그걸 충분히 잘해서 성공할 수 있는데도, 지금껏 해온 그 알량한 것들이 아까워서 기득권을 끼고 보니까 내가 이것 외에는 잘 하는 것이 없는 것 같다. 지금 이걸 포기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성공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드는 것이다.

그런 쓸데없는 불안감을 갖게 하는 색안경을 없애고 자신감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일부러라도 그룹으로부터 뒤처져 더 이상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없다는 완벽한 포기 상태가 되어야 한다. 성공하기 위해 일부러 포기한다. 매우 아이러니한가? 그러나 사실이다.


정보가 공공재가 되었다는 것은 남보다 앞서 가려면 다른 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똑같이 주어진 정보를 각자 어떻게 해석해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할 것인가 하는 통찰의 문제가 곡 모든 것이 되었다는 의미다.


그들이 말주변이 대단히 좋거나 무대 매너가 재미있어 감동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그 주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이를 진짜 이해시키고 싶은 선생님의 마음으로 아주 쉽게 풀어 설명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나온 이야기인데 가장 인상적이어서 다른 색으로 ㅎ

아무리 어려워도 항상 맨 처음의 아무것도 없던 내 모습보다는 낫다.


가지 않은 길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Robert Frost (1874–1963) / 피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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