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의 어려움을 고하자, 임금(高宗)은 대궐이나 사대부 집이나 할 것 없이 잡곡을 섞어 먹고, 반찬 가지 수도 줄이라 했다. 당연히 수라상에도 술이나 유과, 식혜, 수정과, 떡은 올라올 수 없었다. 이렇게 되자 임금이 반주조차 못 드시게 된 것이 죄스러웠다. 그래서 약주가 아닌 몸에 이로운 도수가 낮아 음료에 가까운 술을 빚어 임금께 올렸다. 그것이 대궐 연엽주(蓮葉酒)였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약주"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꽤 많은 이야기가 검색됩니다. 태종실록 17권에는 "의정부에서 약주(藥酒)를 올리니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임금이 말하였다. "내가 술을 그친 것은 오직 가뭄을 근심하는 것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굶주림을 염려하기 때문이었다."라는 기록이 등장합니다. 술이라는 것이 곡식을 빚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백성들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데 약주를 진상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겠지요.

http://sillok.history.go.kr/id/kca_10904126_004


연엽주를 처음 마셔보면 시큼한 맛이 강하게 치고 올라옵니다. 참판댁 안에서는 시음으로 마셨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집에 와서 차분하게 마셔보니 여러 가지 향이 가득하게 올라오면서 시큼한 맛이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약간 차게 마시면 시큼한 맛이 좀 줄어들긴 하지만 왠지 매력이 줄어드는 것 같아 상온에서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충남 아산 외암민속마을 내 연엽주를 빚는 곳이 있습니다. 제주(祭酒)로 빚던 술이 충청남도 무형문화재가 되면서 조금씩 빚어 판매하거나 방문자들이 시음할 수 있도록 나누고 있습니다. 외암민속마을 입구 식당에서도 연엽주 간판을 내건 것을 보면 참판댁에서 조금씩 가져다 판매하고 있는 듯합니다.



고종에게 연엽주를 드린 인물은 퇴호거사(退湖居士)라는 사호를 받은 이정렬(李貞烈, 1868~1950)이라는 분입니다. 비서감승(秘書監承)으로 있을때 연엽주를 임금께 드리면서 집에서도 술을 담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비서감은 왕명의 출납을 담당한 승정원(承政院)이 갑오개혁(甲午改革) 이후 바뀐 것입니다. 일부 다른 기록에는 이원집(5대조)이라는 기록도 있는데 일단 예안이씨대종회 웹사이트 기록을 기준으로 보면 이정렬(3대조)이 맞는 듯합니다.

http://www.yeanyi.or.kr/


이원집(李元集, 1829~1879)은 영농지침서인 치농(治農)을 저술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연엽주의 제조법도 이 책에 담겨 있던 것이라 합니다. 지난 2008년 대한민국농업박람회에서 150년 된 간장이 공개되었는데 그 숙성 간장을 이원집이 창작한 것이라 합니다. 여전히 종손을 통해 이어져 내려온다고 합니다. 외암민속마을 방문 전에 간장에 대한 이야기는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는데 정말 대단한 일인 듯합니다. 2009년에 서울신문에서 "대한민국 극과 극"이라는 주제로 예산 이씨 종가 전통 간장과 샘표 간장을 비교하는 흥미로운 기사를 남겼네요.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0309010001



집 뒷편에 장고(醬庫)는 창덕궁 내에 있는 형태를 그대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참판댁(參判宅)은 고종에게 하사받아 창덕궁 낙선재를 본 떠 지었다고 합니다.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19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드라마 대장금에도 장 담그는 장면에 살짝 등장했다고 합니다.

http://bit.ly/2d8nRed


종가 간장은 종손(宗孫)을 통해 전해지는데 제주인 연엽주는 종부(宗婦)에게 전달된다고 합니다. 술을 종손에게 맡기면 제사에 올리기도 전에 없어질까 두려워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손님맞이는 이득선 장인이 직접 하지만 연엽주는 종부 최황규 장인이 빚는다고 합니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제조법은 멥쌀 7.2kg, 찹쌀 1.8kg으로 술밥을 만들고 누룩 4.5kg을 버무립니다. 항아리에 연잎 500mg을 넣고 술밥을 넣은 다음 지하수 18L를 붓습니다. 술을 빚은 후 30일이 지나 용수를 박아 술을 뜬다고 합니다. 누룩을 만들 때 옥수수, 감초, 밀, 녹두를 사용하고 연잎은 4~5장 정도, 겨울에는 연잎 대신 연뿌리를 넣습니다.


누룩은 직접 만들어 사용합니다. 누룩틀을 원래 사용했는데 틀이 망가져서 비료 포대로 뭉쳐서 누룩을 만듭니다. 누룩은 누룩틀을 써야 한다는 편견을 가볍게 날려주시네요. 다음 방문지였던 계룡 백일주 역시 생각지도 못한 누틀틀을 사용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만든 누룩은 집 옆에 있는 비닐하우스 내에서 보관합니다.


연잎도 직접 1년에 100포기 정도를 농사지어 사용합니다. 연잎은 처서(處暑)를 지나 상강(霜降)까지 살아남은 것 중에서 연잎을 따서 말린 후에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살아남은 연잎이라야 약효가 뛰어나기 때문이랍니다.


다른 고문서에 등장하는 연엽주는 연잎에 싸서 술을 빚는 방식과 연잎을 깔고 술을 빚는 방식으로 나누어집니다. 외암리에서 만나는 연엽주는 후자인데 이원집의 치농에서 언급된 내용은 다른 참고자료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2012년 온양신문에 실린 '연엽주와 이원집'이라는 기사에서는 이원집과 관련된 항간의 소문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한국 역사상 음식에 관한 한 최고의 남성 실력자"이었음에도 그 기록을 찾기 힘든 것 좀 이상한 일이죠.

http://ionyang.com/default/index_view_page.php?part_idx=148&idx=30261


산림경제(山林經濟) 2권 중 치선(治膳)이라는 장에서 연엽주 제조법이 언급됩니다. 이원집의 치농은 필사본으로 알려져 있는데 제조법으로 비교해보면 산림경제에 등장한 제조법이 가장 유사한듯 합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같은 자료를 근거로 쓰여진 글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연엽주(蓮葉酒 연잎에 담는 술)는, 매 씻은 찹쌀을 하룻밤 물에 담갔다가 폭 찐다. 이튿날 찹쌀 1말에 누룩 가루 7홉 정도를 섞고, 물 2병을 끓여 지에밥과 물을 다른 그릇에서 식혔다가 섞는다. 먼저 독 밑에 연잎을 깔고, 그 위에 지에밥과 누룩을 켜켜이 놓아 깔되, 절대로 날물을 들이지 말 것이다. 날이 더우면 시어지니 반드시 서리내리기 전, 잎이 채 마르지 않았을 때 담가야 향기와 맛이 기이하며 비록 봄ㆍ여름을 지나더라도 변하지 않으니, 독을 기울여 따라 쓴 뒤에는 좋은 술을 대신 넣더라도 그 향기와 맛은 여전하다...

http://db.itkc.or.kr/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MK&seojiId=kc_mk_g003&gunchaId=av002&muncheId=05&finId=083





연엽주를 소줏고리에서 증류해 만든 술도 소량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연엽주은 신맛이 강한데 증류된 술은 신맛은 어디로 갔는지 부드럽게 넘어갑니다. 전통 증류주 중에서 소줏고리로 생산하는 술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데 이곳에 오면 그 귀한 술도 만날 수 있습니다. 소줏고리로 직접 가열해 증류한 술은 탄내가 강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술은 거의 그런 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외암마을은 드라마 촬영지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평일인데도 단체 방문객으로 아침 일찍부터 북적거리더군요. 외암민속마을은 중요민속문화재 236호로 지정되어 있고 조선시대 양반촌의 모습을 볼 수 있음. 넓은 마당과 정원이 특징입니다. 외암마을은 입장료를 따로 받습니다. 최근에는 외부인이 고택을 구입해 별장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일부 고택은 관람할 수 없다고 하네요. 이곳저곳에서 공사가 진행되느라 길을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차가 없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수원역에서 온양온천역까지 약 1시간 20분 정도, 온양온천역에서 마을 입구까지 버스로 약 30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매주 주말에 문화공연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고 민박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http://oeam.co.kr/


아산 지역 관광을 더 하고 싶다면 시티투어를 이용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요일마다 이용할 수 있는 코스가 다르니 미리 코스는 확인하셔야 합니다.

http://citytour.asan.go.kr/


입구에 '연엽주 팝니다'라는 소박한 간판이 있지만, 이득선 장인의 맘에 들지 않는 방문객에게는 술을 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반바지 같은 거 입고 덜렁덜렁 들어오는..이라는 말씀을 하셔서 뜨끔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연엽주 한 병을 데리고 올 수 있었습니다. 집에서 마시는 연엽주는 과하지 않습니다. 한잔 마시는 동안 취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번쩍 들면서 온몸에 기운이 퍼지는 느낌입니다. 임금에게 드릴 때는 약주 대신이라고 했지만, 연엽주 그 자체가 약주가 아닌가 싶네요.



* 이득선 장인 이야기 중 "시묘살이"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데 조용헌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교수와 인터뷰 기사가 올려진 내용이 있어서 참고로 남깁니다. 

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200104/nd2001040930.html


* 이번 여행은 "충남 맛기행 술기행" 프로그램에 참여해 다녀왔습니다.

충남문화산업진흥원, (사)한국술문화연구소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http://cafe.naver.com/urisoolschool/10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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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열이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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