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선생님 1 - 8점
다케토미 겐지 지음, 홍성필 옮김/세미콜론

80년대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뭔가 절대적이었습니다. 권위주의적인 사회 분위기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 이후에도 이런 계층 구조는 여전했습니다. 학생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야기 역시 이런 구조를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모습이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지 않을 뿐이죠.


그런 점에서 스즈키 선생님이라는 만화는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뭔가 대단한 사건도 없는데 이 선생님의 행동 하나하나가 안쓰러워 보일 정도입니다. GTO 같은 시원시원한 선생님을 원했다면 이 만화는 무척 불편할 겁니다. Great가 없어서 그랬을까요.



스즈키 선생님(鈴木先生)은 일본에서는 2005년 망가아쿠숀(漫畵アクション)에 연재되었고 단행본뿐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국내에서는 2011년 세미콜론에서 1권을 펴낸 후 후속 작업이 진행되지 못하다가 4년이 지난 2015년 다시 11권까지 완결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1편과 2, 3편, 4편의 옮긴이가 다릅니다.


작가를 소개하는 방식도 독특합니다. 보통 시리즈로 출판되는 경우에는 작가 소개는 1편에만 나오고 이후에는 작가의 말처럼 작가의 이야기가 담기는데 스즈키 선생님은 작가 소개를 여러 가지 시각에서 풀어가고 있습니다. 1편에서는 일반적인 작가소개가 나옵니다. 언제 태어났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뭐 그런 이야기 말이죠.


작가 소개 중 '문예 만화'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문예 만화에 대해 박인하 교수님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르 만화가 아닌 만화가 문예 만화라니. 뭔가 잘 이해되지는 않지만, 스즈키 선생님이 기존 학원물과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알 것 같습니다.


http://www.komacon.kr/dmk/manhwazine/zine_view.asp?CateCode=3300001&Seq=2157

...제일 쉬운 구분은 이거다. 장르만화를 제외한 만화들. 이게 바로 문예만화에 대한 가장 쉬운 설명이다. 여기에 장르만화에 대한 설명이 추가되면 되는데, 장르만화란 ‘장르의 틀’을 통해 창작-소비가 이루어지는 만화들을 포괄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장르만화는 반복되는 구조, 이를테면 인물, 사건 등을 통해 독자들에게 기대감을 갖게 한다. 예측가능성 같은 그런 것. 하지만 문예만화는 장르만화의 구조적인 틀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더 자료를 찾아보니 2011년 스즈키 선생님이 처음 번역되어 소개되었을 때 박인하 교수님 블로그에 문예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쓰셨더군요.


http://comixpark.pe.kr/130119474875

...그래서 <스즈키 선생님>은 나에게 큰 충격을 준 작품이다. 이야기적 측면에서 기타 장르만화와 차별된다. 학교가 배경이다. 학교가 배경인 학원물은 보통 학생들이 주인공이다. 선생님이 주인공이어도 멋진 선생의 문제아 해결 이야기 정도의 고정화된 스토리텔링 구조가 있다. 그런데 이 만화의 스즈키 선생은 지나치게 진지하고, 또 학생들의 문제로 고민을 하지만, 자기 반 여학생에 대한 이상한 마음을 품기도 하는 선생이다. 전통적인 장르만화 학원물의 호랑이 선생이나 쿨한 선생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고, 그렇다고 해서 아에 문제 선생도 아니다. 뭔가 묘하다. 그래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이런 분위기를 도대체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기존 장르에서 좀 벗어난 지점의 만화들을, 작가가 무언가를 강하게 설명하려고 하는 만화들을 문예만화라 부르자...



1편의 에피소드는 3가지입니다. '설사된장', '탕수육', '교육적 지도' 


- 설사된장

이즈미 다다시와 나카무라 카나가 맞은 편 자리에 앉으면서 점심시간에 '설사된장'이라는 표현을 쓰며 나카무라 카나를 괴롭히는데.. 뭐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이 정도 문제로 학부모가 학교에 올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어찌 되었든 학교에 온 이즈미 아버지의 입을 통해서 작가는 화두를 던집니다.


...자유로운 토론이 항상 최선의 방법일까요?

이 문제는 민감하고 뿌리가 깊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부모들의... 나아가 그 부모들이 받아왔던 교육이나 경험까지도 짊어지고 싸우게 됩니다. 고집이나 체면을 배제한 유익한 대화가 가능하리라고 도저히 생각되지 않습니다. '대화'가 상대방을 이기고 자기 고집을 관철시키기 위한 싸움... '토론'이 되었을 때... 그와 같은 체험만이 쌓여간다면 내면의 갈등을 극복해 가는 소중한 성장의 기회를 잃고 말 것입니다.

학생들 각자가 마음 속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그런 선택도... 교사로서 절대 책임회피가 아닙니다.

교육은 '시의적절' 아닐까요?...


* 일본에서는 밥공기를 왼손에 들고 먹는 습관이 있는데 카레나 스파게티 같은 경우에는 손으로 들고 먹지 않기에 왼손은 딱히 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도 왼손을 상 아래에 내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일본에 살다 온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면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는데 스즈키 역시 학생 때는 민감했던 것에 점점 무신경해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 탕수육

가바야마가 좋아하는 탕수육이 급식 메뉴에서 없어진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탕수육을 먹지 못하는 아이가 많으면 폐지... 적으면 유지... 

전혀 불공평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마음 한 구석이 무거운 이유는 무엇일까?...


...잠깐만요. 탕수육을 먹지 못 한다는 아이가 '적으면' 폐지를 보류한다... 그런 거였죠?

...그래요. 숫자가 나왔잖아요! 더 이상 하실 말씀이 있나요!?

분명... 탕수육을 먹을 수 있는 아이들과 '비교하면'... 도저히 먹지 못하는 아이들의 숫자는 '적습니다' 전교생 427명 중 51명... 한 반에 평균 4명 정도... 고작 4명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한 반에 4명이라는 게... 정말 '적은'걸까요?...


...왠지 씁쓸하게 끝나버렸네요. 어쩔 수 없죠. 뭔가를 싫어한다는 이유가 다른 사람이나 사회를 마음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네요!

하지만... 싫어하는 쪽도 마음 편하진 않을 거예요. 뭔가를 싫어하는 것도 나약함의 일부죠. 그런 나약함을 들켜버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고 폭발해버릴 거예요...


이번 에피소드는 뭔가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별 대단한 사건도 아니고 그냥 숫자로만 평가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집니다.


- 교육적 지도

미사키 유키가 도노 료스케의 초등학교 4학년 여동생을 강제로 '해버렸다는' 이야기가 어머니를 통해 전해지면서...


...성교육에 있어서 교사나 학교가 어디까지 지도할 수 있을지... 사실 가장 애매한 분야다...


...잡지나 인터넷, TV에서도 첫경험 평균은 16세라고 하는데... 거기에다 학교 같은 '공식적인 곳'에서 중학생도 암묵적으로 해도 된다고 하면... 첫경험인 여자애를 사귀고 싶은 놈이라면 몰래 초등학교 4학년짜리한테 손 댈 수도 있는 거잖아요!!...


...좀처럼 가망 없는 아이들이라면 모를까... 우리가 나서서 어린 사랑을 못하도록 하는 건... 교육적으로 좋지 않겠죠?...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오가와 소미가 선생님의 꿈속에 등장하면서 좀 더 이해하기 힘든 구성이 만들어집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가 담담하게 등장하니깐 좀 당황스럽긴 합니다.


* 첫 경험 평균은 일반적으로 조사대상자 중 성관계 경험이 있는 표본을 대상으로 첫 경험 평균을 구한 것이라고 합니다. 경험이 없는 경우에는 통계 대상에서 빠지는 것이죠. 자극적인 기사를 원하는 매체에서 그런 구질구질한 설명을 하지는 않겠죠.



* 컷마다 다르긴 하지만 다케토미 겐지의 작화 스타일은 거친 편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다니구치 지로와 비교하면 전체적인 구성부터 시작해서 동작을 표현하는 것까지 뭔가 많이 어색합니다. 마치 막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친구가 그린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감정의 표현을 극적으로 그려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니구치 지로의 그림은 전체적인 조화를 중요시합니다. 인물을 강조하기보다는 사실적인 표현 속에서 그 인물이 감당하는 감정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죠.


1권에는 장자크 루소의 '에밀'에 나온 문구가 소개됩니다. 18세기 프랑스 사상가였던 장자크 루소는 교육은 기존 사회의 가치나 사상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획일화된 사상을 원하는 지금의 어른은 문제가 있다는 건 18세기 때 이미 이야기하던 것이었군요.

Sois homme sensible, mais sois homme sage ; si tu n'es que l'un des deux, tu n'es rien.

다정다감한 사람이든, 현명한 사람이든 단지 이 둘 중 하나일 뿐이라면 당신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인간이다.

- Jean-Jacques ROUSSEAU, Ém. IV


1권부터 이렇게 읽기가 힘들줄 몰랐습니다. 그냥 심심풀이로 읽기에는 부담스러운 작품입니다.


* 이 글은 출판사 세미콜론에서 모집한 '스즈키 선생님' 출간기념 서평단에 참여해 작성했습니다.

서평을 작성하기 위한 도서는 출판사 세미콜론에서 지원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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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열이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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