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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번째 찾아가는 양조장은 충주 중원당입니다. 중원당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양조장 이름으로는 좀 어색하다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국순당, 조술당 등 OO당으로 끝나는 이름이 많더군요. 그리고 얼마 전부터 시작한 일일드라마 '우리집 꿀단지'에서 배경이 되는 주류 회사 이름도 '풍길당'이라고 합니다. 중원이라는 이름은 충주의 옛 이름이라 합니다. 신라 시대에 중원이라고 불렸다가 고려 태조 때 충주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하네요. 1900년대 들어오면서 충주군-> 중원군, 충주읍->충주시로 바뀌었고 1995년 충주시와 중원군이 통합해 지금의 충주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구려 비석인 국보 205호 중원 고구려비도 공식 명칭은 충주고구려비(忠州 高句麗碑)라고 합니다. '중원고구려비'로 검색해보면 교과서랑 참고서랑 명칭이 달라요~ 라는 질문도 있더군요. 예전에는 중원고구려비라고 배웠던 것 같은 기억이 ^^


탄금대

양조장을 가기 전에 충주 탄금대를 방문했습니다. 작년에 자전거 타면서 지나간 것 같은데 그때는 탄금대 올라가는 길옆을 지나간 것이더군요. 아마 알았더라도 힘들어서 탄금대는 올라가지 못했을 겁니다.



탄금대는 우륵 선생이 가야금을 연주한 곳이라고 잘 알려졌는데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공원 내 흘러나오는 음악이라도 가야금 연주로 설정하면 좋았을 것 같은데 말이죠. 다른 공원에 비해 멋진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잘 살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충주 탄금대에는 우륵 선생의 이야기와 신립장군, 충혼탑 등의 이야기가 한 곳에 몰리면서 일관성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못하는 것도 아쉬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륵이 등장한 소설가 김훈의 '현의 노래'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중 중단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재개한다는 소식이 없으니 기대하기는 힘들 듯한데요. 영화가 제대로 완성이 되었다면 우륵 선생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이 알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요.


http://movie.naver.com/

청금산장

독특하게 양조장 바로 앞에 식당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흥미로운 것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호 충주 가금면 창동리 오층석탑과 마애 여래상이 식당 입구 쪽에 있습니다. 오층석탑은 고려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민가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놓았다고 합니다.



청금산장은 민물 매운탕, 장어구이가 주메뉴입니다. 식사 메뉴도 좋지만, 같이 나오는 찬이 정말 깔끔합니다. 더덕 무침만 가지고도 밥을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더군요. 나름 '공력'이 많이 들어가는 찬이라 합니다. 청금산장이라는 이름은 중원당 선대께서 직접 지어주셨다 합니다.

원래 사찰이 있던 자리에 들어왔기 때문에 사찰터의 흔적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고 하네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발아래에 있는 돌도 왠지 뭔가 사연을 가진 듯 보입니다.




청금산장 앞으로는 자전거길이 있습니다. 국토종주 길은 아니지만, 평일임에도 자전거가 자주 지나가더군요. 충주 탄금호 자전거길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015년 아름다운 자전거 여행길 30선에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탄금호 자전거 길은 조정경기장에서 충주댐까지 탄금호 둘레를 한 바퀴 도는 코스입니다. 그 코스를 따라가면 술 박물관인 리쿼리움에서 출발해서 탄금대 공원을 지나 청금산장과 중원당에 들려 맛있는 식사를 하고 다시 리쿼리움으로 돌아가는 술여행도 할 수 있습니다.


2015/11/03 - [먹을거리/인사이드전통주] - 술의 역사와 문화의 향기, 리쿼리움


참고: 아름다운 자전거 여행길 - 탄금호 자전거길

https://www.ajagil.or.kr/course/course_14.php

아름다운 자전거여행길 [탄금호 자전거길과 충주 명품 갈대숲 길]

http://blog.naver.com/goodchungju/220500764859



청금산장에서 탄금대 공원 쪽으로 조금만 걷다 보면 '창동리 마애불상'이라는 표지판이 보입니다. 암벽 위에 부조로 조각된 마애불이라고 하는데 사유지 안에 있어 간혹 문이 잠겨있는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표지판을 따라 올라가 보면 독특한 모양의 불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가운데 부분이 붉은색을 띠고 있는데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 장군의 피눈물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물론 과학적인 사실은 철 성분이 많아 녹이 슨 흔적이라고 하구요.



청명주('淸明酒)

5~6대 전부터 이 고장에서 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일대가 모두 기와집이었는데 지금은 한 채만 남아있다고 하네요. 청명주는 1995년 충청북도 시도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청명주 제조법은 4대째 이어지고 있는데 2대째 맥이 끊어진 것을 3대째 집안에 내려오는 향전록(鄕傳錄)이라는 책을 보고 복원했다고 합니다. 향전록에는 청명주 제조와 누룩 제조법이 담겨 있습니다.

김영섭 대표는 2007년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무형문화재와 비교해서 상당히 나이가 젊은 편입니다. 



양조장 내에 방문자들이 간단한 설명을 들으며 시음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찾아가는 양조장 선정 이후 새로 준비된 공간이라고 합니다. 청명주의 계보와 특징, 다른 기록물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청명주가 다른 전통주와 뚜렷하게 다른 부분은 누룩 반죽입니다. 물로 반죽하는 일반적인 누룩 제조 방식과 달리 술로 반죽합니다. 이날 체험에서는 누룩 만드는 시연은 생략되었는데 문화재청 자료에는 누룩 만드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물이 아니라 짙은 색을 지닌 액체를 사용하는데 그것이 바로 청명주입니다. 청명주로 누룩을 반죽하고 그 누룩으로 청명주를 만들고. 그렇게 따지면 최초의 청명주를 만든 누룩은 어떻게 만든 거지 라는 쓸데없는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http://www.cha.go.kr/


간단한 시연 후에는 준비된 약주, 막걸리, 소주 순으로 시음했습니다. 약주의 숙성기간은 발효 15일, 후 발효 30일이 필요한데 기온에 따라 조금씩 달라집니다. 겨울에는 100일, 여름에는 30일 정도라고 합니다. 시중에 판매되는 건 살균약주입니다. 생주는 양조장에서만 맛볼 수 있다고 하네요. 이날 시음한 약주는 숙성기간이 조금 모자란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끝 맛이 애매하게 남는 느낌이더군요.



막걸리는 판매하지는 않지만, 시음용으로 조금씩만 걸러낸다고 하네요. 막걸리 역시 뭔가 독특한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3대째에는 막걸리도 판매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대표님 부부가 운영하고 있으므로 막걸리까지 걸러내 판매할 여력은 되지 않고요. 하지만 막걸리뿐 아니라 증류주도 틈틈이 준비하시는 모습입니다. 청명주는 찹쌀을 사용하는데 주로 노은면에서 생산하는 찹쌀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청명주는 홈페이지 또는 우체국 쇼핑 등을 통해 구매할 수 있는데 신세계 우리술방에도 입점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공용병도 나쁘지 않지만, 호리병은 적당한 굴곡이 있어서 술을 따를 때 잡는 느낌이 좋은 편입니다. 개인적으로 도자기 형태의 병은 좀 부담스러운데 호리병 모양은 맘에 들더군요.




눈에 잘 보이는 곳에 판매 시음장이 위치해있습니다. 단체로 방문한 경우에는 시연도 보고 설명을 들으며 시음을 할 수 있을 듯하고 개인적으로 찾아간 경우에는 판매 시음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양조장에 이런 공간이 있으면 아무래도 처음 방문하는 고객이 부담스럽지 않겠죠. 




양조장 앞에 있는 한옥은 지금은 도자기 공방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양조장 체험과 도자기 체험을 같이 해볼 수 있다고 합니다. 아직 프로그램이 딱 나오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소식이 들리지 않을까 싶네요.




지금은 중원당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중원 청명주가 공식적인 이름이긴 한데 '중원'이라는 지명을 더는 사용하지 않아서 좀 더 익숙한 '충주'라는 이름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아직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충주 청명주'로 이름이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 시음장에도 '충주 청명주'라고 표기가 되어 있습니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는 '청명주양미사'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2007년 즈음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보면 '청명주양미사(醸味舍)'라는 간판을 볼 수 있습니다. 2008년에 찍은 사진을 담은 블로그에는 '중원청명주제조장'이라는 간판으로 바뀌어있습니다. 디지털충주문화대전 웹사이트에 소개된 사진을 보면 '청명주양미사'라는 간판이 내려져 있고 '중원청명주제조장'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양미사'라는 표현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데 아마 평소에 시를 즐기시던 3대에서 직접 지은 것이 아닌가 싶네요.


http://chungju.grandculture.net/



참조: 창동5층석탁 창동 미륵 중원 청명주

http://blog.daum.net/koreasan/11441218

장미산 충주

http://blog.daum.net/fo290568/15952511


성호사설 / 오주연문장전산고

성호사설(星湖僿說)은 실학자 성호 이익(李瀷)의 문답집을 엮은 저술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백과사전 같은 것이죠. 지금 전해지는 것은 제자인 안정복이 중복된 내용 등을 정리해 편찬한 성호사설유선(星湖僿說類選)이라고 합니다. 내용 중 제5권 만물문(萬物門)에 오재,삼주(五齊三酒)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내용을 인용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http://db.itkc.or.kr/

...나는 평생 청명주(淸明酒)를 가장 좋아한다. 이 청명주를 만드는 방법은 봄철 청명(淸明) 때에 찹쌀 두 말을 여러 번 깨끗이 씻어서 사흘 동안 물에 담가 둔다. 또 딴 찹쌀 두 되를 물에 담가 두었다가 불은 후에 먼저 건져서 가루로 만든 다음, 두 말쯤 되는 물에 타서 누그름하게 죽을 끓인다. 이 죽이 식은 후에 좋은 누룩가루 한 되와 밀가루 두 되를 넣고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가지로 휘휘 저어서 사흘 동안을 덮어 둔다. 그리고 술이 된 후에는 체로 걸러서 찌꺼기는 버리고 독에 넣는데 겉물은 보태지 않는다. 전일에 담가 둔 두 말 쌀을 건져서 술밥을 만들어 식기 전에 함께 독에 넣어서 시원한 곳에 덮어 둔다. 그러나 너무 춥거나 또는 햇빛이 비치는 곳만은 피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스무 하루를 지나면 비로소 술이 익게 되는데 맛이 매우 감렬하다. 비록 더운 여름철이라도 또한 만들 수 있으나 다만 술밥이 식은 후에 독에 넣어야 한다. 만약 술마시기를 즐겨하는 자가 맛이 단 것을 싫어한다면 비록 빚는다 하더라도 술밥을 식힌 후에 물 두 되를 더 넣으면 단맛은 오재라는 것과 비슷하고 독하기는 삼주라는 것과 흡사하다. 이 청명주 만드는 방법은 양계 처사(良溪處士)에게 배운 것인데 혹 잊어버릴까 두려운 까닭에 기록해 둔다...


성호사설에 등장한 청명주 만드는 방법은 중국의 모 사이트에 소개된 내용과 유사합니다. 청명주라는 술 자체가 특정 지역보다는 절기에 만들어 마시는 술이기 때문에 비슷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http://kr.hujiang.com/new/p363752/

...清明前后人们酿造清明酒(也称“春酒”),将糯米磨碎后熬成粥,再将三合酒母与一合面粉加入后进行发酵。大概酿造7天后就能捞去上面浮着的渣滓,留下清酒来饮用。

이 무렵을 전후해‘청명주(淸明酒)’를 담아 먹었는데 ‘춘주(春酒)’라고도 합니다. 찹쌀을 갈아 죽을 쑤어 식힌 다음, 누룩 세 홉과 밀가루 한 홉을 넣어 술을 빚습니다. 담근 지 7일 뒤 위에 뜬 것을 걷어내고 맑은 것을 마신다...



실학자 이규경(李圭景) 역시 성호사설과 비슷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그 중 청명주변증설(淸明酒辨證說)이라는 항목에 청명주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성호사설은 모두 번역이 되었는데 오주연문장전산고는 워낙 분량이 많아 일부만 번역되었다고 합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는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중국과 비교하며 정리한 책입니다. 천문, 지리, 역사, 음운, 서화, 풍속 등과 함께 음식 관련 자료가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의 많은 내용이 성호사설을 인용하고 있는데 청명주와 관련된 항목은 그 내용을 검증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용 중 "청명주는 금천 사람만이 만들 수 있으니(我東金遷人能之) 금탄의 물이 아니면 이룰 수 없으며(若非金灘水) 다른 지방에서는 모방해도 이와 같지 않다(他方或倣而不如)"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현재 이름은 창동(창동리)인데 옛 이름이 금탄이라고 하네요. (새 주소는 청금로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참고: 조선시대 민간음식 고문헌 / 오주연문장전산고

http://archive.hansik.org/bibliography/folk/item/chosun_folk_book__type/29/7258/


오주연문장전산고는 현재 원본이 없다고 하네요.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일부 내용을 잃어버린 원본을 필사한 것을 기준으로 한다고 합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0222110285&code=990100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지식인, 국어학자였던 권보상(權輔相)은 광교 근처에서 군밤을 사다가 포장지를 유심히 보았다. 뭔가 한자가 빽빽이 적혀 있었다. 심상한 종이쪽이 아닌 것 같았다. 군밤장수에게 돈을 치르고 포장지를 모두 사서 당시 조선의 고전을 간행하던 광문회(光文會)로 가져갔다. 광문회는 1910년 최남선이 민족의 고전을 수집하여 간행하고 염가로 보급하기 위해서 세운 단체였다. 당연히 광문회에는 고전에 해박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검토한 결과 군밤 포장지가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책의 상당 부분은 이미 망실되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 귀중한 책은 광문회에 보관되어 있다가 광문회 해산 때 최남선의 차지가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의 가치를 알아본 경성제국대학 도서관 쪽에서 한 벌을 베껴 소장했으니,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오주연문장전산고>다...


앞에서 중국 이야기도 했지만, 이규경이나 이익이 이야기한 청명주가 충주 청명주를 언급하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청명주라는 것 이규경이 언급한 감홍로, 소국주 등도 큰 범주에서는 포함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문화재로 인정받은 것은 향전록(鄕傳錄)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고 하네요.


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9/07/2008090700706.html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청명주변증설(淸明酒辨證說)에서 조선 각지의 명주 넷을 들고 있다. "대저 동방의 군읍들에 명주가 있으니 평양의 감홍로(紺紅露)와 충청도 한산의 소국주(小麴酒)와 강원도 홍천의 백주(白酒)와 전라도 여산(礪山)의 호산춘(壺山春)이 일국의 이름난 명주"라는 것이다...


수살매기

청명주를 만들 때 예전에는 수살매기에서 채수한 물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물이 오염돼 상수도를 사용한다고 하네요. 기술적으로는 고문헌을 검증하고 연구하면서 재현할 수 있지만, 물이나 균과 같은 자연적인 자원은 어떻게 재현하기 힘드니 옛맛을 그대로 느낀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전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분이 있어 다행인 거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09281605431&code=900341

...청명주는 원래 남한강의 지류인 달래강과 창골에서 흘러나오는 산수(山水), 그리고 한강 본류의 3지류가 합수되는 탄금대와 청금내 중간의 수살매기(수구막이)에서 채수해 사용돼 왔다. 그러나 지금은 조정지댐으로 인해 침전물이 생기는 등 오염돼 샘을 파서 사용하고 있다...


참고: http://blog.naver.com/eoklsh/59701425 / 한옥의 풍수 용어

수구막이에서 수고라는 것은 두 물이 만나 밖으로 나가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는 수구가 탁 트이면 좋지 않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것을 적당히 막아주는 것을 수구막이나 수구장문 또는 수살매기라고 합니다. 선돌을 세워놓기도 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수살매기는 특정 지명이 아니라 특정 현상이 나타나는 위치를 나타내는 듯합니다.


관련기사: 찬 바람 부는 쌀쌀한 날엔 '청명주' 한 잔과 뜨끈한 메기 매운탕

http://danmee.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1/04/2015110403571.html

[우리술 시음기] 봄을 한 가득 담은 우리술, 청명주

http://danmee.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1/03/20151103035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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