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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읽자

[조선 왕들, 금주령을 내리다] 술은 좋은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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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들, 금주령을 내리다 - 6점
정구선 지음/팬덤북스

소재 자체가 흥미로운 이야기라 잘 꾸몄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구성이 나왔을텐데... 호기심 가득 불러내는 표지와 달리 내용은 좀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실록과 다른 자료를 기반으로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어 스토리가 중간중간 아쉽게 끊어지는 부분이 많았고 뭔가 역동적인 부분이 적었습니다.


실록의 구성 자체가 어떤 정형화된 형식 내에서 서술되고 있어 다른 에피소드를 풀어내면서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다보니 반복되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그럼에도 조선 시대의 술 문화에 대한 단면을 잘 정리해준 책이라 가볍게 읽기를 권할만 합니다.


책의 뒷부분에는 술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근본적으로 술은 음식의 하나였는데 점점 그 의미가 변질되어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입니다.

술은 약이나 음식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일종의 기호음료이기도 했다. 요즈음 각종 모임에서 차나 커피를 마시듯이 당시에는 일이 끝나면 으레 술을 마시곤 했다. 대궐에서도 조회 등의 회의를 마치고 나면 임금이 참석한 중신들에게 술자리를 베푸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관례였다. 신하들은 임금의 건강을 위하여 항상 술을 드시라고 청하였다. 반대로 임금들은 신하들에게 늘 술을 약으로 마시라고 권하였다. 이런 사례는 허다하게 찾아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한약은 적절한 술과 함께 먹어야 하는데 한약을 먹을 때 무조건 술을 금지하는 것은 좋지 않은 현상이 아닌가 싶네요. 물론 적절한 술을 권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죠.

조선 시대 사람들에게 술은 몸이 좋지 않을 때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먹는 약이요, 약을 먹으면서 반드시 같이 마셔야 하는 일종의 음식이었다. 술은 오곡의 정기가 들어 있어 적당하게만 마시면 참으로 좋은 약이었다.


술마시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당시 사람들은 술을 숭상한다는 의미의 숭음(崇飮)이라고까지 일컬었다.


세종의 계주교서는 뒷날 '서경'의 '주고'편과 표리를 이루었다는 칭송을 받았다. 교서에서 세종은 먼저 술과 음주의 본뜻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계주교서의 내용이 궁금해 따로 찾아보았습니다. 아래 내용은 고전번역원 DB 에 올라와 있는 내용을 옮겨 적었습니다. 따로 찾아가기는 힘들 것 같아서 ㅠㅠ


대개 들으니 예적에 술을 만든 것은 그저 마시려고만 만든 것이 아니라, 신명(神明)을 받들고, 빈객(賓客)을 대접하고, 늙은이를 봉양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었다. 그러므로 제사로 인해서 마실 때는 헌수(獻酬)를 절차로 삼고, 활을 쏨으로 인해서 마실 때에는 읍하고 사양하는 것을 예로 삼았다. 향음(鄕飮)의 예는 친목(親睦)을 가르치는 것이요, 양로(養老)의 예는 치덕(齒德)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말하기를, “손과 주인이 백 번 절하고 술은 세 순배를 돌린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종일토록 술을 마시어도 취하게 하지는 않는다.” 하였으니, 선왕(先王)이 술에 관한 예를 제정하여 술의 화를 방비한 것이 지극하였다.

후세로 내려오매 풍속과 습속이 옛날과 달라서 오직 술에 빠지기만을 일삼으므로, 금주(禁酒)하는 법이 비록 엄하나 마침내 그 화를 면하지 못하였으니, 얼마나 한탄스러운 일인가. 대개 술이 화가 됨은 심히 크다. 어찌 곡식을 없애고 재물만 허비할 뿐이겠는가. 안으로는 심지(心志)를 어지럽히고 밖으로는 위의(威儀)를 잃어서, 부모의 봉양을 폐하고, 남녀의 분별을 문란하게 하며, 크게는 나라를 잃고 집을 망치고, 작게는 성품을 해치고 생명을 잃어버리게 하는바, 강상(綱常)을 더럽히고 풍속을 무너뜨리는 것은 이루 다 말하기 어렵다.

우선 경계가 될 만하고 법이 될 만한 것을 한두 가지 지적하여 말하고자 한다. 은(殷) 나라의 주(紂)와 주(周) 나라의 여왕(厲王)이 이것으로 자신의 나라를 망쳤고, 동진(東晉)의 유유(劉裕)가 이것으로 남의 나라를 망쳤다. 정(鄭) 나라 대부(大夫)백유(伯有)가 굴속의 집에서 밤에 마시다가 마침내 자철(子哲)이 불에 타서 죽었고, 전한(前漢)의 교위(校尉) 진준(陳遵)이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매양 손님을 대접할 적에는 문득 문을 잠그고 손님의 수레바퀴의 비녀장을 우물에 던지곤 하였는데, 흉노(匈奴)에게 사신으로 갔다가 술에 취하여 해를 입었다. 후한(後漢)의 사예교위(司隸校尉) 정충(丁冲)이 자주 여러 장수에게 들려서 술을 많이 마시다가 창자가 썩어서 죽었고, 진(晉) 나라의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주의(周顗)가 능히 한 섬의 술을 마셨는데, 우연히 옛날 상대자가 오자 흔연히 함께 마시고 대취하였다가 술이 깨어서 살펴보니, 손님이 이미 옆구리가 썩어 죽어 있었다. 후위(後魏)의 하후사(夏侯史)는 성품이 술을 좋아하여 상중(喪中)에 있으면서도 슬퍼하지 않으면서 막걸리가 입에서 떠나지 않았는데 아우와 누이는 기한(飢寒)을 면치 못하였으며, 그 역시 술에 취하여 죽었으니, 이것이 참으로 경계할 일이다.

주 무왕(周武王)이 주고(酒誥)란 글을 지어서 은(殷) 나라 백성을 훈계하였고, 위 무공(衛武公)이 빈연(賓筵)의 시를 지어서 스스로 경책(警責)하였다. 진 원제(晉元帝)가 가끔 술 때문에 정사를 폐하므로 왕도(王導)가 간절히 말하였더니 원제가 술잔을 엎어버리고 드디어 술을 끊었고, 원 태종(元太宗)이 날마다 대신들과 더불어 취하도록 마시매 야율초재(耶律楚材)가 술 거르는 틀에 달린 금구(金口)를 가지고 태종의 앞에 나아가서 말하기를, “이 쇠도 술에 상하여 이렇게 되었는데, 하물며 사람의 오장이야 손상되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그러자 태종이 곧 신하에게 명령하여 하루에 술 세 종지만 올리라고 하였다. 진(晉) 나라 도간(陶侃)이 항상 술을 마실 때는 정한 한계가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조금 더 마시라고 권하니, 도간은 한참 동안 슬픈 빛을 띠고 있다가 말하기를, “젊었을 때에 술로 실수한 적이 있어서 돌아가신 부모님께 약속을 하였으므로 감히 한계를 넘지 못한다.” 하였다. 유곤(庾袞)은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에 항상 유곤에게 술을 경계하라고 하였는데, 뒤에 매양 술에 취하면 곧 자책하기를, “내가 아버님의 훈계를 폐하였으니 어떻게 남을 훈계할 수 있겠는가.” 하면서 아버지의 묘 앞에서 스스로 매 20대를 맞았다. 이것은 참으로 법받을 만한 일이다.

또 우리 나라의 일로 말하면 옛적에 신라(新羅)가 포석정(鮑石亭)에서 무너졌고, 백제(百濟)가 낙화암(落花岩)에서 망한 것이 모두 술 때문이었고, 고려(高麗)의 말세에 위와 아래가 서로 본떠서 술에 빠져 스스로 방자하다가 마침내 망하는 데에 이르렀다. 이것도 역시 은감(殷鑑)이 멀지 않은 것이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 태조께서 큰 기업을 이룩하시고 태종께서 이어 받아서 정교(政敎)를 닦아 밝히어 법을 만세에 남기셨는데, 떼를 지어 술을 마시는 것을 법령으로 금하여 지난날의 물든 풍속을 고치고, 새로운 교화를 이루게 하였다. 부덕한 내가 외람되게 대통을 이어서 밤이나 낮이나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치안(治安)을 도모하였다. 그러면서 옛날의 엎어진 수레를 거울삼고, 조종의 법을 좇아서 예로써 보이고 법으로써 규명하였으니, 내가 애를 쓰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너희 신민들이 술로써 덕을 잃는 일이 가끔 있다. 이것은 전조(前朝)의 쇠망한 풍습이 아직도 다 없어지지 않은 까닭으로, 내가 심히 민망히 여기는 바다.

아, 술이 화를 빚어내는 것이 이렇게 비참한데 아직도 깨닫지 못하니, 이 또한 무슨 심사인가. 비록 국가를 염려하지는 못할망정 자기 한 몸의 성명(性命)조차 돌아보지 못한단 말인가. 조신(朝臣) 중에 유식한 사람도 오히려 이와 같으니, 여항의 백성들이야 무슨 짓은 못하랴. 옥사나 송사도 대부분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시초에 삼가지 않으면 말류의 폐단이 참으로 두려운 것이다. 이 때문에 내가 예와 이제를 들어 여러 번 되풀이하여 알려 주고 깨우쳐 주는 바이다.

너희 안팎 대소 신민들은 나의 지극한 생각을 체득하고 전 시대 사람들의 득실을 보아서 오늘날의 권계(勸戒)로 삼아라. 그리하여 술 마시는 것으로써 일을 폐하지 말고, 지나치게 마시어 병이 되게 하지 말며, 각각 네 행동을 조심하여 무이(無彛)의 훈계를 따르고, 강하게 술을 억제하여 거의 오변(於變)의 풍속을 이루게 하라. 너 예조는 나의 이 지극한 뜻을 본받아서 안팎에 효유하라.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http://www.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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