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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읽자

[아사히야마 동물원 이야기] 서울대공원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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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야마 동물원 이야기 - 8점
오세웅 지음/새로운제안

항상 동물원에 가면 언제부터 붙어있었는지 모르는 안내판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작년 가을쯤에 서울대공원에 갔었는데 동물 안내판이 칠판으로 바뀌었더군요. 뭐 평균키가 어떻고 사는 곳은 어디고 그런 이야기말고 오늘 이 친구가 어떤 상태고 어떤 모습을 볼 수 있는지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육사들이 지정된 시간에 설명해주는 자리도 많아졌더군요.


이 책을 읽고 많은 면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어느 정도는 벤치마킹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사육사들은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장벽에 막혀 시도해보지 못했던 것들이 아사히야마 동물원 사례를 통해 통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냥 추측입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꽤 오래전부터 변화해온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동물원 이야기와 저자의 교훈적인 가르침(?)이 같이 있어서 읽는데 불편할 수도 있을듯 합니다. 그냥 동물원 이야기만 담담하게 전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훌륭한 경영은 비언어다. 훌륭한 경영은 언어로 된 경영 매뉴얼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경영의 노하우는 시행착오를 거쳐 스스로 만들어진다. 자기몸처럼 제품을 아끼므로 광고, 마케팅 전략의 부차적인 힘을 빌리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이 이야기가 무척 맘에 들었는데 저자가 직접 만든 이야기였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자료를 찾아보면 시세이도 초대 사장이었던 후쿠하라 신조가 남긴 말이라고도 하네요.

...예술가이시기도 했던 후쿠하라 신조(福原信三) 시세이도 초대 사장의 영향이 기업 문화에 크게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모든 제품은 리치(rich)해야 하며, 제품 스스로 소비자에게 메시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분의 철학은 지금도 매우 중요합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7/24/2009072401010.html


제품은 제품 스스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동물원에 대한 인식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많은 동물원이 사람 중심입니다. 얼마전 '에버랜드 동물원이 아니라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야 하는 7가지 이유'라는 글이 주목을 받았는데 사람들에게 불편한 동물원이 왜 필요한지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동물원이 위락과 여가를 맡았던 시절의 기준으로는 에버랜드가 더 뛰어난 동물원이었다. 꾸준한 투자로 현대화에 성공했고 사람들을 감탄하게 할 만큼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동물원을 평가하는 기준은, 동물 복지에 얼마나 신경을 쓰느냐와 종 보전(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의 전시와 존속을 위한 조치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느냐이다. 선진국 동물원들은 홈페이지에 ‘종 보전(Conservation)’ 카테고리를 두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서울대공원이 압도적이다. 사람의 기준으로 평가하면 에버랜드 동물원이 우월하지만, 동물의 기준으로 살 만한 곳은 서울대공원이라는 얘기다...

https://www.facebook.com/kojaeyoul/posts/903920206305475


사육사가 훈련시키지 않는 한 원숭이(원숭이도 야생동물이다. 이처럼 지극히 당연한 사실도 우리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도 굴렁쇠 타기 같은 재주를 부리지 않는다. 원숭이가 굴렁쇠를 타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원숭이는 원숭이 나름대로의 삶이 따로 존재한다.


유럽에서는 희귀한 동물이 결코 '희귀한' 대접을 받지 않는다. 너구리나 판다나 똑같다. 판다라고 더 좋은 사료나 더 쾌적한 환경이 주어지지 않는다. 인간이 평등하듯 동물도 평등해야 옳다. 유럽인들은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다. 동물원은 동물을 가두고 전시하는 쇼케이스가 아니다. 동물원은 사람과 동물이 만나는 장소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용자에게 정당성을 이유로 불편함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거죠.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지 배워 가는 과정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인식은 '왜 그럴까'에서 '그럴 수도 있다'고 사고방식의 패턴을 바꾸는 것이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경우에는 관람객들이 '왜 이해를 못할까'에서 '이해를 못할 수도 있다'는 관점으로 바뀌었다. 이 깨달음 끝에 비로소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소비자의 인식이나 이해를 넘어서는 선 밖에 존재하면, 그 제품은 환영받기 어렵다. 하나는 알지만(一知) 반밖에 이해하지 못하는(半解) 것은 이른바 전문가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의 큰 약점이다.


http://www.asahikawafc.jp/


사육사만 알고 있는 특정하고 전문적인 지식은 일반인에게 약초와 비슷하다. 혀에 쓰고 입맛에 괴롭다. 몸에 좋은 약처럼 달여서 먹기 좋은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의 체질이 각기 다르듯 약초도 사람들의 혀에 안성맞춤인 약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육사들은 동물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했지만, 일반 관람객과의 소통은 미숙했다. 사육사들에게 일반 관람객에게 소통을 하라는 건 마치 도자기를 굽는 장인이 직접 도자기를 팔려고 장터에 나와 호객행위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고객의 행복이라는 미션을 충분히 이해하고 완수하기에 디즈니랜드라는 거대한 조직이 하나처럼 매끄럽게 돌아간다. 정사원이 아닌 아르바이트만으로도 충분히 디즈니랜드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조직의 힘이 아닌 가치관이라는 축이다. 수많은 아르바이트생을 디즈니랜드의 가치관이라는 꼬치에 꿰면 '고객의 행복'이라는 요리가 완성된다.


틀이란 우리가 오랜 세월 시행착오를 거쳐 바람직하다고 다수가 동의한 합의체다. 그래서 그 틀을 부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틀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다수가 그 틀을 개선하려는 노력과 열정만 있다면 일시적인 시대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길을 잡을 수 있다. 그 방법은 다름 아닌 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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